코인 대신 ‘테사’? 아트테크 는 왜 뜰까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1년 한국 미술시장 결산’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의 지난해 거래액은 약 9223억 원입니다. 코로나19가 시작한 2020년에는 규모가 13.7% 감소해 3291억 원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2.8배 부풀었죠. 소액 투자가 가능해지고 온라인 판매가 늘면서 MZ세대가 지갑을 연 덕분입니다.
아트테크 열풍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테사를 통해 직접 조각투자를 해봤다_출처 : 테사
6월 3일 기자는 이건용 작가의 ‘Body Drawing(2010)’을 구매했습니다. 무려 4억 5000만 원짜리 작품입니다. 돈이 어디서 났냐고요? 놀랍게도 단돈 1만 원으로 샀답니다. 미술품 소유권을 분할해 여러 투자자가 구매하고 되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공동구매’ 덕분이죠. 45만 개로 분할한 소유권은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테사’에서 개당 1000원에 판매 중입니다.
온라인 공동구매는 미술품 시장의 문턱을 대폭 낮췄습니다. 적은 돈으로도 고가인 미술품의 ‘일부’를 살 수 있게 되면서죠.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신기술을 접목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서울옥션블루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품 공동구매 시장 규모는 501억 원대입니다. 2018년 아트앤가이드가 처음 문을 연 후 테사, 소투, 아트투게더 등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이 잇따라 생겨나며 시장을 키워갔죠.
미국 출신 디지털 아트 작가 비플의 작품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현존 작가 경매가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다_출처 : 크리스티 공식 홈페이지
NFT아트 열풍도 미술시장 확장에 한몫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6930만 달러(약 785억 원)에 낙찰된 비플의 NFT아트 ‘에브리데이즈’는 현존 작가 경매가 순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NFT아트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죠.
NFT아트는 신진작가, 일반인도 얼마든지 거래 플랫폼에 등록·판매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이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세계적인 경매 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판매된 NFT 미술품 거래 규모는 2억3000만달러(약 2818억 6500만 원)입니다.
2022 화랑미술제 모습_출처 : 한국화랑협회
자산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미술품 시장에 대중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아트페어도 호황입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개최된 아트페어는 총 78개로 2019년 49개에서 2년 만에 59.2% 늘어났습니다. 올 4월 열린 제 11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는 오픈런까지 펼쳐졌습니다. 온라인 아트 컬렉팅 플랫폼 플리옥션은 올 6월 감상은 오프라인, 구매는 모바일로 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통합 아트페어를 국내 최초로 개최합니다.
유통가도 미술품의 판매 경로를 확대합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컬처 전담 조직을 신설해 미술품 판매 등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합니다. 지난 4월엔 모바일 라이브커머스에서 작가가 직접 나와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했습니다. SSG닷컴도 같은 달 4월 미술작품과 공예품만을 따로 모아 파는 ‘아트&크래프트 전문관’을 신설했습니다.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지난 5월 국재대구아트페어(iDaf 22)의 시사회 형식의 아트페어를 열어 백화점 내에서 전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했습니다.
왜 미술품에 돈이 몰릴까?
억 소리 나게 오른 부동산, 휘청대는 가상 화폐를 피해 투자자들은 미술품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술품이 투자 자산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안전’해서입니다.
미술품은 타 자산에 비해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냅니다. 씨티은행의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20년까지 장기 투자자산 중 현대미술품이 사모펀드 다음으로 가장 높은 11.5%의 수익을 냈습니다. 미술투자자문사 마스터웍스도 지난 25년간 현대미술품의 수익률(14%)이 S&P500(9.5%)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파악했죠.
시장 변동이나 타 자산의 가격 흐름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집값은 부동산 정책에 따라 휘청거리죠. 세계정세에 따라 주가도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그런데 미술품 가격은 작가가 갑자기 작품 활동을 중단한다거나 윤리적 문제가 크게 발생하지 않은 이상 웬만한 이슈에 영향받지는 않습니다.
다만 워낙 고가이기도 하고 오프라인 아트페어, 경매 및 거래소 등을 통해 폐쇄적으로 거래되다 보니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했습니다. 부자들의 투자 수단으로만 여겨진 까닭이죠. 미술시장이 빗장을 내린 것은 디지털 세상의 활성화와 궤를 같이 합니다. 미술품의 1차 거래 시장은 갤러리입니다. 작품을 알릴 기회가 적은 신진 작가들이 입성하기엔 턱이 높았죠. 그들이 SNS 등 온라인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유통 경로를 모색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6월 10일 서울옥션에서 진행 중인 온라인 경매 화면 캡처_출처 : 서울옥션 홈페이지
온라인 미술시장이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던 중 팬데믹이 기폭제가 됐습니다. 아트바젤과 금융그룹 UBS의 ‘2021 세계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거래 비중이 25%로, 전년도에 비해 2배 수준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서울옥션, 케이옥션 등 메이저 경매사들도 앞다퉈 온라인 경매를 늘리고,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미술품을 살 수 있는 루트가 늘어난 덕입니다.
미술시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MZ세대 투자 열풍도 미술품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실제 서울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가입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30대였습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MZ세대가 미술품을 스니커즈, 포켓몬 빵처럼 ‘리세일’ 관점으로 접근해서 아트테크에 열광한다고 분석합니다. 그는 “작품성, 미술사적 의미보다는 언제 어떻게 팔아야 할지에 더 관심을 둔다”며 “(1억 원 미만의) 중저가 작품이 많이 팔리는 이유다”고 말합니다.
투자 원금 보장 규제는?
모든 재테크가 그렇듯 아트테크 열풍이 ‘반짝’에 불과할지 꾸준히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앞서 2006년~2008년 미술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호황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트펀드(미술품을 사고 되팔아 남긴 수익을 투자자에 배분하는 펀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죠.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시장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아트펀드들도 대부분 원금만 겨우 건지거나 심지어는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양적 팽창은 세계경제 불황 등의 급변적 요소에 따라 언제든 붕괴될 수 있고 실제 2007년에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며 “미술품 유통 관계자들은 건강한 시장 환경 조성을 위해 MZ세대가 미술 애호가로 보다 많이 편입 또는 유입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다른 재테크 수단과 달리 미술품 고유의 특성 때문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거나 판매가 완료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단기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죠. 공동구매의 경우 많게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쪼개 구입한 만큼 집단행동도 어렵습니다.
자본시장법상의 금융상품이 아닌 만큼, 소비자보호 측면에서도 의문이 남습니다. 조각 투자의 메인 고객은 주로 30대로 전해집니다. 그다음은 20대가 차지하죠. 사회 초년생이 많은 셈입니다. 다만 ‘투자 원금 보장’ 규제 등은 없는 상황입니다. 한 소액 투자 업계 관계자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기에 주관적 해석이 들어갈 수 있다”며 “해당 분야에 대한 사전적 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합니다.
다만 지금 미술시장의 양상은 이전 호황기와는 상당히 달라진 만큼 기대를 해봐도 좋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2006년도엔 기존 미술품 수요자, 자산가 사이에서 붐이었다면 지금은 자산 시장에서 미술시장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넣기 시작했다”며 “박수근, 이중섭 등 국민 화가에 대한 수요부터 단색화 열풍,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미술에 대한 학습이 확장됐다. 여기에 경제 규모 자체도 커졌고 가상화폐 등으로 투자 경험까지 확장되면서 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미술시장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이 시장의 성장을 가져올 마중물이 될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죠. 미술품은 우리 시대 새로운 주요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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