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발란사’ 로 불리고 싶어요
출처 : balansa
부산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바다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부터 현존하는 가장 큰 백화점까지. 보고 즐길 거리가 넘치는 이곳엔 먹거리도 넘칩니다. 부산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음식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부산광역시가 만 15세 이상의 관광객 약 2000명(내국인 1000명, 외국인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약 70%(내국인 73.5%, 외국인은 67.6%)가 맛집 탐방 때문에 부산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은 돼지국밥이었고요.
재밌는 건 돼지국밥은 부산 고유의 음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부산 돼지국밥의 시작은 6.25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피란민들이 몰린 부산에서 여러 지역의 국밥과 혼합되면서 탄생했거든요. 전쟁 이후엔 사람들이 몰리는 시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시민들의 솔(Soul) 푸드로 자리매김합니다. 2009년 부산시가 이름도 없던 음식을 ‘돼지국밥’이라 칭하며 향토 음식으로 분류하면서 지역 대표 음식이 된 거고요. 참고로 2019년 기준 전국의 약 27%에 해당하는 돼지국밥 식당(742곳)이 부산에 있었다고 합니다.
뚜렷한 지역적 색채로 외지인에게 색다른 매력을 어필하는 또 다른 ‘부산 것’도 있습니다. 발란사 시작합니다.
Looking for attention?
올여름을 되돌아보면 우영미가 떠오릅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WOOYOUNGMI PARIS’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거든요. 비단 올여름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디자이너의 이름이 등판에 가득 찬, 이른바 백로고 티셔츠는 잇템이었으니까요.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매장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것. 지난 2년간 꾸준히 찾았던 우영미 매장(신세계 백화점 본점)이 럭셔리 브랜드가 즐비한 6층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젊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balansa×maruhiro, balansa×esquire_출처 : balansa
김선영 순천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현대 패션에서 로고가 가지는 의미를 ‘차별화된 취향과 개성 표현’에서 찾았는데요. 로고가 브랜드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취향을 드러내는 통로이기 때문이죠. 1990년대 로고가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과는 다른 양상이죠. 김 교수는 확장된 디지털 공간과 젊은 세대에도 주목합니다. 온갖 종류의 이미지가 가득한 디지털 세상에서 눈에 띄는 방법은 디자인 요소이며 이는 곧 로고로 연결된다는 거죠.
이러한 로고는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차별화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는거고요. 그 이면엔 특정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우월감과 자신감도 있겠죠. 그래서 가격을 떠나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로고에도 환호하는 것이 아닐까요? 발란사를 찾아 부산으로 가는 이들처럼 말이죠.
Who am I?
낯선 것은 새롭습니다. 그런데 낯선 것이 꼭 새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존의 것들로도 충분히 새로움을 전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신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자처럼요. 발란사는 영어 ‘SOUND SHOP BALANSA’와 한자 ‘釜山(부산)’의 조합을 통해 신선함을 보여줍니다. 가수 이효리와 래퍼 쌈디 등 취향이 확고하기로 유명한 연예인들도 발란사의 제품을 착용해 화제가 됐었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김지훈 발란사 대표에게 물었더니 생각보다 단순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직원들의 유니폼에서 시작됐다’고 말이죠. 2008년 부산 서면전포상가에서 빈티지한 취향을 공유하던 발란사는 부산의 한 백화점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습니다. 당시만 해도 발란사는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주로 다루는 스토어였습니다. 직원 유니폼이 관심을 끌게 되자 상품화가 된 거고요. 발란사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버추얼 유튜버 아뽀키가 찾은 발란사_출처 : balansa
버추얼 유튜버 아뽀키가 찾은 발란사_출처 : balansa
버추얼 유튜버 아뽀키가 찾은 발란사_출처 : balansa
“그냥 발란사로 불리고 싶어요” 김지훈 대표는 발란사의 정체성을 정리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듯했습니다. 편집숍이나 브랜드든 어떻게 불리든 중요한 건 아니니까. 발란사는 취향을 한곳에 모아 나누는 공간입니다. 발란사 오리지널 제품은 김 대표의 취향을 사람들과 주고받는 매개체 중 하나인 거죠. 그리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이어진 그 취향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거고요.
김 대표도 구체적인 타깃이나 마케팅 등 특별한 전략 없이도 계속되는 발란사의 원동력은 일관성과 진정성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합니다. 자발성이 결여된 일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취미가 핵심인 셈이죠. 그래서 그는 시몬스, 이마트, 태극당 등 국내 유명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몸값이 상승했음에도 발란사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척 시크하네요.
12년 동안 부산에서만 활동하던 발란사는 2년 전 서울 마포구에 발란사 서울을 오픈했는데요, 당시 지방의 개성 있는 브랜드가 전국구로 인기를 끈다며 많은 이목이 쏠린 바 있습니다. 발란사 서울 스토어 또한 부산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취향이 깊게 베어 있는 공간입니다. 1990년대 미국 유스 컬처의 분위기로 꾸며진 가정집엔 ‘빈티지와 컴포트’가 넘칩니다. ‘釜山(부산)’ 대신 ‘特別市(특별시)’가 새겨진 오리지널 제품들도 시선을 끌고요.
What's next?
내년, 15주년을 맞이하는 발란사는 2019년에 이어 다시 한번 일본에서 이벤트를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팬데믹 이전 부산 스토어 방문 고객의 60%가 일본인일 정도로 발란사는 바다 건너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답니다.
국내 한 디자인 잡지는 발란사를 두고 ‘매력적인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컬처를 국내에 소개한다’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발란사는 희귀 앨범의 성지라 불리는 ‘디스크 유니온’을 비롯해 일본 음악과의 여러 결합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죠. 어쩌면 부산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빛을 발한 대목이 아닐까요. 국내 제1의 무역항으로 외국과 왕래가 예전부터 잦았던 곳이잖아요. 그런 분위기는 우리 것이 아닌 다른 것에도 마음을 쉽게 열고 새로운 조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던 배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balansa×maruhiro, balansa×simmons_출처 : balansa
balansa×maruhiro_출처 : balansa
balansa×simmons_출처 : balansa
오랜 수집 경력에서 비롯된 남다른 선구안으로 미래엔 디자인 에이전시로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싶다는 김지훈 대표. 부산이라는 지역적 색채를 정체성 삼아 해외까지 매료시킨 그의 다음 ‘마이웨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이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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