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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놀이동산 국립중앙박물관

미디어 아트를 관람하는 사람들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귀신을 노래하는 미드나잇 파티, MBTI 응용한 취향테스트까지. 어서 오세요 🙂 여기는 컬처 브랜딩의 최전선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국가대표 박물관의 브랜딩

기자는 최근 ‘굿즈 맛집’이라는 별명을 얻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브랜딩에 큰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려청자 에어팟 케이스, 자개소반 무선 충전기처럼 박물관 소장 유물을 주제로 한 이색 MD유통에 나섰죠. 결과는 대성공.

지난 2015년 1억 5천만 원을 기록했던 온라인 숍 매출액은 2019년 8억 5천만 원으로 매출액을 5배 이상 신장시킵니다. 디자인 퀄리티를 높인 생활용품에 대중이 열광했는데요. 국공립 문화기관의 전례 없는 수익창출과 부가가치를 만들었습니다. 굿즈 덕분에 박물관을 좋아하게 됐다는 증언이 SNS를 부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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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 피규어와 방향제로 재해석한 반가사유상 굿즈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샵

전시 방식도 돋보입니다. 올해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 유품을 소개한 전시는 상반기 내내 화제를 모았습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전시작명부터 살펴볼까요. 고인을 ‘어느 수집가’로 바꿔 대기업 총수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의 초대’라는 이름을 덧붙여 친근한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개인의 미술애호정신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브랜딩 전략으로 인식되네요.

국립과 중앙이 전하는 엄숙하고 꼿꼿한 이미지를 뒤바꾸려는 힘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굿즈 맛집’같은 수식어가 이들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실무자를 만나보니 ‘콘텐츠 맛집’ 으로 변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벌거벗은 박물관

“팬데믹 당시 서너 차례 휴관이 반복됐어요. 박물관의 존재 의미를 재탐색하는 시기였죠. 결론은 새로운 공간가치였어요. 지식과 문화를 전파하는 기존 성격도 중요하지만, 관람객에게 창조적 영감을 색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코로나 이후 박물관의 역할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원래 신정, 추석, 설 당일 휴관을 제외하고 상시 개관 원칙을 고수했었죠. 국립중앙박물관 이현주 문화교류홍보과 홍보전문경력관은 엔데믹 이후 전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학습의 장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박물관을 ‘안식의 장’이라 여기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에서 위안과 평화를 찾아내며 정적인 유희를 찾는다는 것이죠. 백화점이나 테마파크처럼 떠들썩한 놀이공간과 정 반대의 가치를 제공합니다. 오감을 활용한 능동적 유희.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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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방 내부의 미디어 파사드_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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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박물관 측도 관람객을 초대할 명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학예사를 비롯한 기획실무자들은 ‘박물관에 놀러 오면 무언가 하나는 얻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불어넣는 작업이 모든 공간에서 차곡차곡 이뤄지고 있다고 전하는데요. 기자는 적절한 예시를 ‘사유의 방’과 ‘분청사기‧백자실’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침묵에서 건져낸 유희

국립중앙박물관은 2021년 11월 ‘사유의 방’을 공개했습니다. 이곳에는 손님을 환대하는 주인이 없고 특정 행동을 지시하지도 않습니다. 존재는 오직 관람객과 반가사유상 두 점(국보 제 78, 83호) 뿐이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불상을 감상하는 시간은 고요한 유희를 원하는 이들을 매료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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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방_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을 ‘다르게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유물의 스토리텔링 방식이나 감상법을 바꾸는 겁니다. 유리 진열장 앞에 서는 게 아니라 유물을 만나기 위해 여행하듯 걷게 되는 동선을 만들었죠.”

‘사유의 방’ 조성에 참가한 이현숙 디자인팀 디자인전문경력관은 관람객 수요 변화에 발맞춘 혁신이라 합니다. 반가사유상을 위한 특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 전시공간을 탈바꿈 시켰죠. 기존 전시공간의 8배 규모라고 하는데요. 거대한 공간에서 많은 관람객이 ‘여행’하는 기분으로 박물관을 찾으며, 특정 장소를 개인의 감정을 보살피는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는군요.

미소를 띤 채 사색에 잠긴 반가사유상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친다고 하네요. ‘학습’이 아닌 ‘사색’. 타인에 의한 자극이 아니라 내면에서 싹 틔운 자극. 지적 호기심과 미적 쾌감이 한데 뭉치며 관람객에게 독보적인 경험으로 인식됩니다. 이성보다 감성을 강조한 공간기획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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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면개편을 마친 ‘분청사기‧백자실’_출처 : 바이브랜드

“대중은 박물관에서 학습이 아니라 감상에 집중해요. 터치 패드로 도자기 고화질 이미지를 직접 확대할 수 있게 됐고요. 감각 중심 콘텐츠가 늘며 스토리를 입히는 전시에 나서고 있어요. 도자 유물의 공간 메시지는 ‘여백’입니다. 아무나 언제든 와서 가장 편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공예품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죠.”

‘분청사기‧백자실’ 개편을 일임한 이애령 미술부장은 상설전시관도 리노베이션이 한창이란 설명을 보탭니다. 2006년 개관 이후 미처 챙기지 못한 디테일을 바로잡는 시기라는 것이죠. 이전과 대비되는 차이는 ‘기획의도 100% 반영’이란 설명입니다. 올 해 10월 완성을 앞둔 청자관 개편도 마찬가지라네요.

유물마다 조명 색과 각도가 다르고 분청사기 공예품 근처에 도예가가 흙을 굽는 영상이 나란히 배치되는 이유는 명확하다고 전합니다. 다만 해석은 관람객의 몫. 작품해설은 쉬운 언어로 가다듬었습니다. 관람객이 공간 곳곳에 배치된 디지털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감흥을 자유롭게 느끼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죠. 고요한 모험에 나서는 관람객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정원에서 미드나잇 파티 여는 이유

‘모두를 위한 문화공간’이라는 브랜드 미션은 탈권위적인 행사를 열며 달성합니다. 남녀노소가 고르게 방문하는 컬처 브랜드지만 뾰족한 타깃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전략에는 취약하단 점을 아쉽게 여긴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박물관으로 초대하는 브랜드 캠페인을 실험적으로 전개한다는 설명입니다.​

석조물정원과 야외공간을 소개하는「박물관 야외정원을 거닐어 보자」안내도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첫 주인공은 바로 청년. 20대가 놀러 가고 싶은 국립중앙박물관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고 하네요. 글로벌 광고회사 TBWA와 협업해 관람객 체험형 프로그램 <대박쌈박 국중박!>을 전개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내부 대형 복도와 실외정원을 활용해 놀이터를 만드는 것. 20대가 직접 기획한 가을밤 이벤트로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할로윈 시즌에 듣는 전통괴담, 미드나잇 파티가 예고됐죠.

동서양의 만남이 이례적인 탓일까요? 감도 높은 취향을 바탕으로 강력한 문화 확산력을 지닌 20대를 흡수하려는 이들의 브랜드 캠페인은 SNS 상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국립이 이래도 되냐”는 비난이었죠. 실무자들은 정체성을 해치는 게 아니라 박물관이 마땅히 해내야 할 시도라고 말합니다.

1)청년 대상 브랜드 캠페인을 기획한 TBWA 주니어보드팀
2)한국 전통귀신을 주제로 박물관 정원공간을 활용한 할로윈 파티를 기획했다. 행사일은 10.29(토)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왼쪽부터_ 송의현, 박웅현 대표, 신용호, 이화정

청년 대상 브랜드 캠페인을 기획한 TBWA 주니어보드팀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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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귀신을 주제로 박물관 정원공간을 활용한 할로윈 파티를 기획했다. 행사일은 10.29(토)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재미만 추구하면 허무하고, 의미만 추구하면 지치거든요. 콘텐츠 컨버전스가 거세게 진행되는 시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처럼 좋은 콘텐츠를 지닌 곳은 인프라를 매개로 놀이터를 만드는 시도가 효과적일 겁니다.”

협업에 참가한 TBWA 박웅현 대표는 타게팅을 마친 브랜드 캠페인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박물관으로 불러 모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합니다. 브랜드가 특정 세대가 쓰는 문법으로 소통에 나서면, 박물관을 고루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점점 마음을 연다는 것이죠. 가을이면 이태원 할로윈 파티를 기대하는 사람에게 대안을 마련해 주는 것. 박물관 속 정원에서 도깨비와 한바탕 노는 것이 박물관의 매력을 훨씬 효과적으로 전파한다는 의견을 덧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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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자. 사유의 방 공간해설이 담겨있다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측 문화교류홍보과 실무자인 엄채현 학예연구사와 김명숙 사무관은 청년 대상 캠페인이라고 해서 다른 관람객의 참여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번 청년 대상 캠페인이 첫 번째 캠페인이며, 특정 세대만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데요. 브랜드 캠페인의 본질은 방문빈도가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홍보를 고민하는 시행착오라고 하네요.

“방문 비중이 늘고 있는 5,60대 여성도 눈여겨보는 중이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해설 콘텐츠 확대 등 ‘모두의 박물관’이라는 미션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쏟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이라는 컬쳐 브랜드의 정체성을 배신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콘셉트를 바꿔 실험에 나서겠다는 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방침이라는 설명입니다.

포용이 미래다

취재 당일은 정기 야간 개장일로 저녁 9시까지 박물관이 떠들썩했습니다. 특히 중앙통로에서 열린 관객참여형 연극 <살아-잇다>에 100여명의 관객이 몰렸죠. 피곤에 찌든 직장인, 곱게 단장한 연인, 아이를 무등태운 아빠,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는 외국인 등 다양한 인파가 야간개장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연극 '살아-잇다' 관람사진

야간개장시간에 열린 관객참여형 연극 <살아-잇다>를 구경하는 관객들_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은 웅장하고 권위가 있잖아요. 그래서 강자의 공간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약자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모이고 있잖아요. 김홍도 풍속화 속 소시민의 일상을 느끼고 관객들이 손뼉을 쳐요. 이곳이 더 많은 문화콘텐츠를 포용하고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정안나 연출가는 <살아-잇다> 공연을 마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하네요. 배제가 아닌 포용. 국가 최고 문화기관이기에 가능한 너그러움.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전이 시간이 흘러 롤 모델로 자리잡히면, 한국 문화계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습니다.

김정년

김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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