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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코트를 바꿔놓은 유튜버의 손맛

인플루언서들의 레시피를 맛볼 수 있는 AK&홍대의 아웃나우 매장_출처 : 바이브랜드

식음료가 오프라인 유통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은 지상 1층부터 지하 1층까지 연결된 1400평 규모의 식품 전문관을 선보였죠. 백화점 1층은 곧 명품과 코스메틱 브랜드의 자리라는 업계 관행을 최초로 깬 겁니다. 롯데영플라자 명동점도 7개층 모두를 식품관으로 재단장할 계획이고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프라인 쇼핑몰은 더 높은 수준의 미식 경험이란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외부 맛집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플루언서와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고 있죠.

국내 기준으로 ‘더현대 서울(이하 더현대)’과 ‘AK&홍대(이하 AK 홍대)’가 대표적입니다. 각 사의 담당자와 함께 오프라인 쇼핑몰의 달라진 F&B 트렌드를 짚어봤습니다.

브랜드 실험실의 맛집 창업

더현대와 AK 홍대는 각각 현대백화점과 AK플라자의 실험적인 매장입니다. 양희지, 이희오 현대백화점 식품사업부 바이어에 따르면 자사 매장 중 신규 브랜드에 대한 고객 반응이 가장 빠르게 발현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방문객의 메뉴 선택이 보수적인 백화점과 달리 더현대에선 파격적인 브랜드 실험이 가능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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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F&B 브랜드로 구성된 더현대 서울_출처 : 더현대 서울

이색 경험 마니아들의 성지인 만큼 중복 테넌트* 비중을 최소화합니다. 정식 오픈 전 11명의 바이어가 1년간 새로운 내부 콘텐츠를 찾아 헤맸죠. F&B 코너에도 타 채널에 미입점된 업체들을 중점적으로 유치했습니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 뒤에는 모방의 위험이 잇따랐죠. “더현대에 입점한 후 다른 채널에도 진출하는 곳이 많았어요. 업계에서는 흔히 ‘물타기’라고 부릅니다.”

*테넌트: 쇼핑몰에 입점한 브랜드를 뜻함.

2022년 7월 물타기의 대비책으로 박막례 할머니와 협업한 ‘막례스토랑’을 게시합니다. 126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와 함께 더현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을 기획한 건데요. 메뉴는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에 공개됐던 호박 식혜와 떡볶이. 3일 동안 약 1만 5천 명이 방문했고 기존 공간 대비 약 4배 이상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박막례 할머니와 막례스토랑 외관_출처 : 더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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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례스토랑 외관과 박막례 할머니_출처 : 더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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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례스토랑 앞에 이어진 웨이팅_출처 : 더현대 서울

2018년 오픈한 AK 홍대는 전형적인 백화점의 층별 구성을 따랐다고 합니다. 홍대 방문객의 니즈와는 부합하지 않았죠. 심각한 매출 부진을 겪던 중 2021년 대대적인 리뉴얼에 나섭니다. 김영광 AK플라자 NCC(New Contents Creation) 파트장은 “건물이 소규모인 만큼 유니크한 콘텐츠를 밀도 있게 채웠다”고 회상합니다. 2022년 8월 매출액이 2021년 동월 대비 2배 증가했다고요.

유니크함에 사활을 걸고 F&B 분야에서도 자체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2022년 3월 유튜버 히밥과 양수빈, 중식 스타셰프 정지선과 함께 푸드 코너 ‘아웃나우’를 오픈하죠. 각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채널에서 소개했거나 새롭게 개발한 메뉴를 판매하는 매장입니다.

아웃나우에서 판매 중인 인플루언서 레시피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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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나우에서 판매 중인 인플루언서들의 레시피_출처 : 바이브랜드

요리 실력에 팬덤까지

더현대와 AK 홍대는 셰프보다 인플루언서에 주목한 이유로 ‘팬덤’을 꼽습니다. 셰프 이름을 건 타이틀은 기시감이 들 수 있기에 가용 콘텐츠와 팬덤을 지닌 인플루언서에 주목한 겁니다. 예컨대 막례스토랑의 초석은 박막례 할머니의 식당 운영 이력과 검증된 레시피입니다. 이미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구독자들에게 공유됐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브랜딩 재료였죠. 이를 활용해 뉴욕에서 손맛 좋기로 입소문 난 갱(Gang)이 여의도에 진출했다는 세계관을 구상합니다.

AK 홍대가 인플루언서들의 기존 레시피를 차용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니까요. 구독자 202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공대생 변승주’의 대왕 칠면조 플레터처럼 궁금하지만 가정에선 시도하기 어려운 메뉴를 구현했죠. 아웃나우 방문객의 약 20%는 팬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해외 손님의 방문율도 높다고요. 139만 명 팬덤을 지닌 유튜버 히밥의 메뉴가 압도적인 판매량 1위입니다.

1) 막례스토랑에서 팬들을 맞이하는 박막례 할머니, 2) 유튜버 공대생 변승주의 대왕 칠면조 플레터_출처 : 더현대 서울,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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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례스토랑에서 팬들을 맞이한 박막례 할머니_출처 : 더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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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공대생 변승주의 대왕칠면조 플래터_출처 : 바이브랜드

셰프와의 협업 가능성에 대한 시각은 엇갈렸습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인물이라면 색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백화점 측의 견해입니다. AK홍대 측은 셰프와 협업한 브랜드가 늘었기에 회의적이라고 하네요.

퍼포먼스도 맛집의 자격요건

메뉴 외에 다른 분야에서 크리에이터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공통점도 보입니다. 막례스토랑의 경우 팝업 스토어를 2곳으로 나눠 한쪽에선 할머니의 명언과 평소 제스처가 반영된 30종 굿즈를 판매했습니다. ‘월급을 다 커피로 조지겄더라’가 적힌 머그컵, ‘그럴 정신 있으면 일이나 해라’가 프린팅된 포스터에서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이 느껴집니다. 할머니의 두터운 팬덤은 완판이란 성과로 귀결됐죠. “인플루언서가 결합된 F&B 매장은 인물 IP 기반의 파생 상품도 기획할 수 있어요.” 손맛의 주인공도 등판. 뉴욕 출신 갱이란 세계관에 맞춰 보스룩을 입은 할머니가 매장에서 팬들과 소통했다고 합니다.

막례스토랑의 굿즈 코너_출처 : 더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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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례스토랑 굿즈 코너_출처 : 더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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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할머니의 명언을 새긴 머그컵_출처 : 더현대 서울

아웃나우 한 켠의 오픈 스튜디오는 팬심을 공략하기 위한 필살기입니다. 인플루언서가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켠 채 팬들과 만납니다. 2022년 4월 히밥이 자신의 메뉴를 모두 테스트하는 먹방이 펼쳐졌을 땐 직관하러 온 팬들로 매장 앞이 인산인해를 이뤘죠.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약 20만 조회 수를 달성했고요. 매장의 포인트인 빨간색 네온사인도 유튜브를 오마주했다고 합니다.

아웃나우의 오픈 스튜디오 및 조리 공간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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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나우의 오픈 스튜디오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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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레드 컬러를 차용한 조리 공간_출처 : 바이브랜드

실무자들을 모셨으니 업계 트렌드도 전망해 볼까요? 막례스토랑과 아웃나우처럼 오프라인 쇼핑몰의 F&B 브랜드 론칭이 지속될 것이란 의견입니다. 이희오 바이어는 “핫한 식당에게 경쟁사보다 빨리 명함을 주는 것만으론 자생하기 어렵다”며 “자체 온리원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영광 파트장도 “참신한 F&B 소재가 고갈된 상황에서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은 비즈니스 모델로 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죠.

맛집 유치에만 편향됐던 오프라인 쇼핑몰의 F&B 경쟁이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대중 브랜드의 난립이 아닌 새롭게 정제된 미각 콘텐츠가 필요한 때입니다. 인플루언서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통사의 노하우가 빚은 맛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쇼핑하러 갈 맛이 더 나겠네요.

이한규

이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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