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전공이 건축학도였지만, 예능 PD를 꿈꿨습니다. 사실상 이 생뚱맞은 조합이 발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학부 졸업과 동시에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 들어갑니다. 전공과 지망 분야가 어우러지는 뭔가 새로운 일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여기서 창업을 꿈꾸는 개성 있는 대학원생 여러 명과 어울립니다. 바리스타 로봇 등을 만드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라운지랩의 황성재 대표나 이모티콘 콘텐츠 기업 플랫팜의 이효섭 대표, 교육 스타트업인 엔트리연구소를 이끌었던 김지현 대표(현 네이버 커넥트재단) 등이 모두 이곳 출신입니다.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가 석사 논문을 집필하며 얻어낸 통찰은 이랬습니다. “모바일 시대엔 콘텐츠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대로변이 아니라 골목이라도 사람들은 찾아간다.” 학부 수업 때 “과제로 그 공간에 뭐가 들어갈지도 모른 채 디자인(설계) 하라는 말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던 그였습니다. 어반플레이는 그런 문제의식과 창업 열망, 통찰을 원동력 삼아 닻을 올리게 됩니다.
어반플레이는 2013년 서울 연남동에 반지하 방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연남동에 터를 잡았던 건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업에 필요한 동료, 콘텐츠 기획자는 많은데 홍대보다 집세가 쌌기 때문이죠. 홍 대표는 그러면서 여러 전시 기획을 진행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때마침 그해 말, *도시재생법이 시행됐습니다.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게 아니어도 공공과 민간이 동시에 도시 문화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분명, 호재였습니다.
홍대입구역 공항철도(2010년)와 경의선(2012년)이 개통되며 유동인구가 늘기 시작합니다. 2015년 경의선 숲길이 개장하고 나서는 오래된 양옥집을 고쳐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로 만드는 곳들도 늘어납니다. 연남동의 여명기. 홍 대표는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동네 문화 만들기에 빠져듭니다.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 2017년 이후 정부는 이 법을 기반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연남동의 여명기, 어반플레이는?
‘연희 걷다’_출처 : 어반플레이 홈페이지
2014년부터 연남동을 배경으로 한 문화 행사 ‘숨은 연남찾기’ 등을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플리마켓과 갤러리 전시, 인디공연 등을 연남동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문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는 훗날 ‘연희, 걷다(2015년~)’ 프로젝트로 확장합니다. 연희동 ‘맛집’ 음식을 할인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모바일 쿠폰 제공, 문화 공간을 탐방하며 스탬프를 찍는 스탬프투어 등등. 요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탄 ‘연희, 걷다’의 이색적인 문화 체험 서비스는 그 뿌리를 ‘숨은 연남찾기’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5년에는 도시 문화를 전하는 온라인 미디어 ‘아는동네’를 창간합니다. 소재는 동네의 최근 트렌드, 동네 맥주집, 빵집, 독립서점, 복합문화공간 등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운영하는 양조업자, 제빵업자, 셰프, 수공업자, 화가 등을 어반플레이는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수제 맥주를 판매하는 로컬 브랜드의 창업 이야기, 브랜드 스토리 등이 아는동네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출처 : 어반플레이 홈페이지
공공과의 협업도 순조롭게 진행합니다. ‘서울약령시 스토리 아카이브’ 웹페이지를 구축한 것도 이때였죠. 어반플레이는 이 시기 공공에서 만드는 동네 지도 책자를 제작하는 데에도 참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는 것이었죠. 이때 홍 대표는 민간 자본만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동네의 숨어있는 진짜 소식을 전해보자고 결심합니다.
그렇게 해서 출간한 게 ‘아는 동네 아는 연남(2017년 10월)’이었습니다. 그렇게 문화기획에 온라인 미디어, 출판까지 아우러진 도시문화콘텐츠 기획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이 기간 어반플레이는 6억 원 규모의 투자금(네이버-SBA)도 확보합니다.
그때만 해도 어반플레이는 미디어가 접목된 문화기획사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던 것이 2017년, 어반플레이는 비즈니스모델(BM)을 확장합니다. 식음료 편집 상점 ‘연남방앗간’을 오픈한 것입니다. 해외에선 ‘벨류애드(Value-added)’라고 부르는, 유휴 공간을 활용해 가치를 높이는 사업도 추가한 것입니다.
문화전파기지를 구축하다
연남방앗간_출처 : 어반플레이 홈페이지
이후 어반플레이는 연남방앗간을 필두로 동네 곳곳에 문화 전파 기지와 같은 앵커(거점 기지)를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건축과 콘텐츠가 어우러진 윤택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이 아무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어도 모바일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맞는 판단이었습니다. 연남장, 캐비넷클럽, 연희대공원, 기록상점 등 이 빈 공간을 활용한 후속 브랜드 사업이 흥행하자 어반플레이는 벤처캐피털(VC)의 규모 있는 투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건물주와 운영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 등으로 공간 활용권을 얻게 되자 이곳에 무슨 콘텐츠를 채울지, 어떤 편집숍을 차릴지 다양한 선택지가 열립니다. 더불어 F&B와 굿즈 판매, 코워킹스페이스 운영 등 다양한 수익 채널도 마련하게 되죠. 팬데믹 와중이던 지난해만 해도 연 매출은 50억 원. 2019년 뮤렉스파트너스와 SL인베스트먼트, 블루포인트파트너스, 한국벤처투자 등으로부터 총 26억 원의 시리즈A 투자금을 확보합니다. 올해에는 팬데믹 시국임에도 롯데쇼핑 등이 신규 투자자로 참여해 총 85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_출처 : 어반플레이 제공
“어반플레이 매출의 절반은 우리가 운영하는 공간에서 나옵니다. 카페 운영이든 굿즈 판매든 문화 전시든...그런데 나머지 20~30%는 기업간거래(B2B) 사업에서 나옵니다. 어반플레이에서 성공한 콘텐츠 예를들어 성공한 굿즈 전시라면 그런 걸 ‘자사 공간에 마련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동네 문화를 기업 공간에 전파하는 일입니다.”
홍 대표는 도시 활성화로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고민합니다. 이건 딜레마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반플레이 본인들도 정작, 공간을 임차해서 씁니다.
“평당 가격이 오를 때마다 여러 번 집주인이 바뀌었어요. 이걸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좋게 해석하면 그만큼 지역이 활력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집값이 올라 원주민이 떠나는 건) 어찌 보면 자연 발생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런 와중에 좋은 (로컬) 콘텐츠마저 떠나게 되는 것이죠. 그것마저 빠지면 정말 황폐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콘텐츠가, 그걸 만드는 팀이 남아있도록 안정적인 임대료 수준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2014년
어반플레이 설립
2015년
아는동네 창간
2017년
연남방앗간 오픈
2019년
26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유치
2021년
85억원 투자유치
어반플레이 설립
아는동네 창간
연남방앗간 오픈
26억원 규모 투자유치
85억원 투자유치
어반플레이의 OS 가치는?
어반플레이 본사인 연남장_출처 : 어반플레이 홈페이지
“도시에도 OS가 필요하다(어반플레이 슬로건).”
- 뜻풀이: 동네의 유휴 공간을 활용,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와 다양한 콘텐츠적 실험을 하고 이중 성공적인 모델을 확산하는 일종의 콘텐츠 엑셀러레이팅 시스템.
어반플레이는 밸류애드 스타트업 이외에도 어반 디벨로퍼, 도시문화 콘텐츠 플랫폼, 콘텐츠디벨로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직은 낯설면서도 신기한 비즈니스 입니다. 홍 대표는 이중 어반플레이는 도시문화 콘텐츠 플랫폼이라고 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 기존의 부동산, 개발업자들과는 다르다는 걸 눈치채는 사람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85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어반플레이가 확보하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쨌든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것도 ‘시리즈 프리 B.’
라이프스타일 아티스트_출처 : 어반플레이 홈페이지
시장은 어반플레이가 본격적인 매출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는 듯합니다. 그들의 기지는 연희동, 성수동, 강남 일대, 부산 영도 등으로 확산하고 있죠. 기존 F&B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OS도 ‘웰니스(요가, 건강식 크리에이터가 제공하는 문화콘텐츠)’와 ‘리빙(주거특화 커뮤니티 브랜드)’ OS로 고도화 하고 있습니다. 역시 건축과 콘텐츠의 접점을 찾으려는 탐색과정의 일부입니다.
“좋은 콘텐츠 그러니깐 창의적인 사람들의 콘텐츠가 담겨 있는 오프라인 서비스 공간을 만드는 게 어반플레이의 지향점입니다. 그게 빵집, 전시장, 레스토랑일 수도 있겠죠. 지역의 일상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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