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전 축구선수 차범근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공통점은? 하리보를 즐겨 먹는다는 점입니다.
심상치 않은 기류입니다. 젤리가 간식 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젤리 먹방이 유튜브 콘텐츠로 인기를 끌면서 성인들까지 젤리에 빠졌는데요. 국내 츄잉푸드(쫄깃한 식감의 간식) 시장에서 껌을 누르고 젤리가 1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심지어 숙취해소제까지 젤리 형태로 출시될 정도인데요.
그중에서 단연코 1위는 하리보입니다. 2016년 정식 수입된 이래로 국내 츄잉푸드 시장 점유율 1위(17.2%)를 놓치지 않습니다. 2위를 차지한 마이쮸(12.5%)를 앞서고 있죠. 올해로 102주년을 맞이한 하리보는 독일 최후의 황제 빌헬름 2세도 사로잡은 유서 깊은 젤리입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빼앗은 비결은 무엇이길래?
세탁실에서 태어난 곰
한스 리겔이 하리보를 시작했던 본인 집 뒷마당 세탁실_출처 : 동아DB
1920년 12월 13일 창업자 한스 리겔은 하리보를 설립합니다. 그는 집 뒷마당에 딸린 작은 세탁실에서 설탕 한 자루, 구리 솥 하나, 의자 하나만 갖고 사업을 시작했죠. 아내 게르트루드가 첫 직원이었습니다. 처음엔 수제 사탕과 젤리 모두 팔았지만 보다 더 인기가 많은 젤리에 집중합니다.
과일 맛의 곰 젤리가 태어난 것은 2년 후입니다. 지금과는 모양이 사뭇 다릅니다. 보다 키가 크고 날씬하며 동물 곰과 유사합니다. 이 젤리의 이름은 댄싱 베어(Dancing Bear). 당시 유럽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춤추는 곰에서 이름을 따왔죠. 세계 최초의 곰 모양 젤리(구미 베어, Gummy bear)의 탄생입니다. 댄싱베어는 두 조각에 단 돈 1페니라는 저렴한 가격과 달콤한 맛에 입소문이 났습니다. 이전까진 게르트루드가 자전거로 배달에 나섰다면 1923년부턴 배송 전용 차량을 쓸 정도였죠.
(위) 곰 젤리의 초기 형태 (아래) 현재는 보다 인형 같은 모양새_출처 : 하리보, 바이브랜드
1925년 출시한 감초맛 젤리가 연이어 히트를 칩니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해외, 특히 미국에서 마니아층이 두터운 효자 상품이죠. 1933년 하리보는 400여 명의 직원을 이끌며 독일 전역에 젤리를 판매합니다. 그 유명한 광고 카피,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도 이때 태어났습니다.
승승장구할 듯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원료가 부족해지고 직원들은 전쟁터로 가야만 했죠. 1945년 전쟁이 끝났지만 창업자 한스는 52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겨우 30명의 직원만 남았죠. 한스의 두 아들이 재건에 나섰고 5년 뒤 1000명을 고용하는 대기업으로 거듭납니다. 1960년대부터 해외 진출을 시도해 현재는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사랑받는 기업이 됐죠. 글로벌 직원만 7000명입니다.
100번째 생일
1960년 최초로 등장한 노란색 곰_출처 : 하리보
하리보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 ‘댄싱베어’는 1960년 ‘골드베렌(Gold Baren)’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보다 통통하고 작아 곰 인형 같은 모습이었죠. 지금 하리보의 상징이 된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맨 노란색 곰도 처음 등장합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죠?
골드베렌은 파인애플, 레몬 등 다섯 가지 과일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캐릭터의 인기도 높아져 하리보는 무려 ‘공식 출생 증명서’를 노란 곰에게 발급해 줬죠. 1967년 독일 특허청은 골드베렌을 등록 상표로 인정합니다.
1978년 변형된 곰이 포장지에 등장했다_출처 : 하리보
노란 곰이 잠깐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하리보는 소비자들의 미적 감각이 변했다고 판단해 젤리와 캐릭터 모양을 변주했죠. 넓게 바깥쪽을 향하던 발을 좁혀 현재와 같은 젤리 모양을 갖췄습니다. 포장지의 캐릭터도 주황색 몸통에 하얀색 리본을 매고 나타났습니다.
1989년 리뉴얼된 골드베렌 포장지_출처 : 하리보
1989년이 되어서야 우리가 아는 하리보 곰 젤리가 출시됩니다. 곰돌이 푸를 닮은 노란 하리보 곰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죠. 과일 농축물을 사용해 젤리 색상도 보다 투명해졌습니다. 2007년 여섯 번째 맛인 사과 맛이 추가되면서 지금과 구성까지 똑같아졌죠. 골드베렌은 지금도 하리보 제품 라인에서 매출 1위로 매일 1억 6000개가 생산됩니다.
출처 : 하리보
오는 10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세계 최초로 골드베렌 100주년 기념전이 열립니다. 본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피플리 관계자는 “작품과 히스토리, 미디어아트까지 함께 담을 전시를 기획하던 중 하리보의 디자인 역사와 색감이 전시 콘텐츠로써 볼거리가 풍부하다고 생각했다”며 “기획안을 만들어 직접 독일 본사로 찾아가 설득했다”고 말합니다.
1920
하리보 창립
1922
댄싱베어 탄생
1960
골드베렌 제품 출시
1978
현재의 젤리 형태 완성
2007
골드베렌 포장 리뉴얼
2020
창립 100주년
하리보 창립
댄싱베어 탄생
골드베렌 제품 출시
현재의 젤리 형태 완성
골드베렌 포장 리뉴얼
창립 100주년
‘착한’ 젤리가 될 수 있을까
영국 광고에는 경찰관들이 차에서 젤리를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온다_출처 : Ads of the World
하리보는 우직하게 ‘젤리’에만 집중합니다. 카라멜 회사 마오암(1986년), 마시멜로 회사 돌키아(1996년)을 인수하면서도 젤리에 접목할 뿐이었죠. 예컨대 젤리 아래 마시멜로를 붙이는 식이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만큼 젤리에 한해서는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지역 특색에 맞게 현지화한 제품들이 이목을 끄는데요. 이슬람 국가에선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할랄 젤리를 판매합니다. 유대인들을 겨냥한 코셔(유대교의 음식에 대한 율법) 젤리도 선보이죠.
국가별 특색을 살린 마케팅도 흥미롭습니다. 일본 광고에서는 스모 선수들이 둘러앉아 젤리를 나눠 먹습니다. 미국 광고에서는 샐러리맨들이 회의 시간에 서로 젤리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어른들이 등장하는 젤리 광고, 이색적인가요? 광고 속 등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말투,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하리보와 함께라면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석되죠.
출처 : 하리보
하리보가 아이들과 어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2015년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만 판매하는 얼굴 모양 젤리가 흑인, 아시아인을 비하한다며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입니다. 곧장 제품 생산을 중단했지만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죠. 2018년 독일 제 1공영방송 ARD는 하리보 젤리 원재료인 카나바 왁스가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다고 폭로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강제로 밖에서 잠을 자고 깨끗한 식수도 못 먹는 데 하루 12달러를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하리보는 IRC(The Initiative for Responsible Carnauba. 책임 있는 카나바 왁스를 위한 이니셔티브)에 참여합니다. 현재까지도 공급업체 감사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죠. ESG 경영에 힘 쏟으며 지난 4년간 매립 폐기물 제로를 달성했다고 말합니다. 이미 하리보에 실망을 한 대중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리보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젤리로 계속 남을 수 있을까요? 100년 하고도 2년, 다음 걸음에 관심이 쏠립니다.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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