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닷(Red Dot)하면 이거죠.
지금은 유물이 되어버린 MP3 플레이어. 시작은 한국이었습니다. 1998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MP3 플레이어를 새한정보통신에서 만들었거든요. 이보다 1년 앞서 디지털 캐스트에서 선보인 엠피맨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만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PC 오디오 파일로 사용되던 MP3 파일이 공간을 초월하게 된 거죠. 라이카가 스튜디오 밖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던 것처럼요.
One camera, Different points of view
M10_출처 : Leica Camera
현대백화점 판교점 라이카 스토어_출처 : Leica Camera
평일 오전 찾은 분당의 한 백화점. 최근 리뉴얼을 거쳐 이전과 달라진 풍경은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라이카의 새로운 매장도 마찬가지. 열쇠 구멍이 사라지고 전자키가 도입되면서 매끄러워진 진열장 때문인지 ‘판매’보단 ‘전시’의 느낌이 강합니다. 혹은 따로 마련된 갤러리 때문일지도.
매장에 물어보니 ‘전시만 보러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요. 이곳에선 ECM 음악과 함께 안웅철 사진작가가 라이카로 담은 일상적이지만 다채로운 제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 생소했던 이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라이카의 전시는 매장 밖에서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오 라이카(O! Leica)’. 2017년부터 매년 진행되는 사진전입니다. 올해는 일상이 되어버린 팬데믹이라는 주제로 기업인 박용만(전 두산그룹 회장), 배우 류준열, 패션 디자이너 윤 안(앰부쉬) 등 6명의 아티스트가 각자 바라본 세상을 공유했었죠.
키아나 하예리와 그녀의 작품_출처 : Leica Camera
‘Celebration of Photography’로 불리는 시상식도 있습니다. 라이카 본사가 있는 독일 베츨라에 위치한 라이츠 파크에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전 세계 사진가들의 노고를 기리는데요, 권위 있는 사진상 중 하나인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Leica Oskar Barnak Award, LOBA)’의 수상자를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1979년부터 시작된 LOBA는 1914년 라이카 최초의 카메라를 만든 ‘오스카 바르낙’의 탄생을 기념함과 동시에 한 해를 대표하는 사진을 선정하죠.
올해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키아나 하예리의 ‘얼음 위에 새긴 약속, 햇빛에 녹아내리다’입니다. 지난해 미군이 철수한 후 탈레반에 의해 빼앗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자유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New face, New phase
라이카 0 시리즈_출처 : Leica Camera
194억 원. 약 100년 전 만들어진 카메라에 매겨진 가치입니다. 지난 6월 독일 베츨라에서 진행된 ‘라이츠 포토그래피 옥션(Leitz Photography Auction)’에서 라이카 0시리즈 N.105 프로토타입이 1440만 유로(당시 194억 원)에 낙찰되면서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었죠. 라이카 0시리즈 N.105는 1923년에서 1924년 사이에 만들어진 35mm 카메라 23개 모델 중 하나입니다. 이 제품의 뷰파인더 오스카 바르낙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요.
오스카 바르낙은 ‘옵티컬 인스티튜트 오브 에른스트 라이츠’의 기술자로 라이카의 창시자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1911년 입사해 현미경과 망원경 그리고 영상기 등 광학 장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회사에서 처음으로 소형 카메라를 만들었으니까요.
바르낙은 사진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지만 지금과 달리 크고 무거웠던 카메라는 천식 때문에 병약했던 그에겐 큰 부담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형 카메라를 원했고 그 꿈을 직접 현실화시킵니다. 1914년 탄생한 우르라이카는 영화 촬영용 필름을 사용하는 스틸 카메라로,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소형 카메라를 양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표준형 필름이 없던 시절 기준을 제시한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오스카 바르낙_출처 : Leica Camera
이에 못지않게 라이카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이도 있습니다. 바로 막스 베렉. 그는 카메라 렌즈를 설계하며 라이카가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 올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렌즈 없이 카메라를 논할 수는 없잖아요. 베렉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렌즈는 1925년 선보인 ‘라이카Ⅰ’에 장착됩니다.
‘애너스티그마트’로 불리던 렌즈는 회사명과 베렉의 이름을 합쳐 ‘엘막스’로 바뀝니다. 뛰어난 성능만큼 높았던 생산 비용으로 접근성이 떨어졌던 엘막스에 이어 막스 베렉은 새로운 재료에 기반한 새로운 렌즈 ‘엘마’도 선보이며 브랜드의 성장을 견인합니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렌즈의 재료들을 세심하게 다룰 수 있는 라이카의 기술력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렇다고 기술적 역량만으로 라이카가 성공한 건 아닙니다. 회사 내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꺽이지 않았던 경영자, 에른스트 라이츠 2세의 결정도 중요했으니까요. 우르라이카(1914년) 탄생 이후 상품화된 소형 카메라는 라이카Ⅰ(1925년)입니다.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린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과 전후 뒤따른 혼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경영자의 용기 있는 결단은 바스낙과 베렉의 능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셈이죠. 덕분에 포토저널리즘의 새 장도 열리게 되었고요.
카메라 회사의 시계는요
라이카 워치 L1(좌), L2(우)_출처 : Leica Camera
1100개의 파츠로 만들어진 M11_출처 : Leica Camera
렌즈 교환이 가능한 최초의 RF(Range Finder) 카메라 ‘라이카 Ⅱ(1932년)’부터 렌즈를 바꾸면 그에 맞게 프레임이 변하는 뷰 파인더를 장착한 ‘M3(1954년)’까지 거침없던 라이카는 1970년대 일본 카메라 제조업체의 SLR 카메라가 득세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라이카는 본래 정체성에 집중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수한 품질과 고유한 색감을 지키면서 시대의 흐름에도 빠르게 반응하면서 말이죠. 올해 초 출시된 M 시리즈의 최신작 ‘M11’처럼요.
M11은 라이카 고유의 디자인에 기술적 혁신이 더해져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 특징입니다. 탑재된 BSI CMOS 센서와 UV/IR 필터는 6000만·3600만·1800만 화소로 구분 저장뿐만 아니라 한층 자연스럽고 선명한 색 표현을 지원합니다.
15 스톱의 다이내믹 레인지는 여러 환경에서도 밝기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결과물에 깊이를 더하고요. 전통적인 디자인에 더해진 터치스크린과 USB-C 충전기 등 편의성 고려한 부분도 눈에 띄네요. 참고로 황동이 아닌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블랙 컬러의 M11는 100g 가벼워졌다고 하네요.
세계적으로 사라지다시피 한 RF 카메라로 이루어진 M 시리즈, 전문가에 초점을 맞춘 DSLR 카메라 S 시리즈, 편의성을 증대한 Q 시리즈 등 여러 라인업을 전개하며 전통의 재해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계도 있습니다. 이른바 ‘라이카 워치’. 지난 2월 전 세계 6개 스토어에서만 판매를 시작했던 이 시계는 이제 한국에서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고운 모래로 연마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무브먼트_출처 : Leica Camera
라이카 카메라의 디자인이 반영된 것이 특징이라고는 하나 크게 와닿지 않아 다니엘 블룬시(Daniel Blunschi) 라이카 시계 총괄 책임자에게 직접 묻기로 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며 설명을 시작합니다. 시계의 측면은 카메라와 비슷한 형상이라며 셰이프(Shape)를 가장 먼저 강조하더군요. 업계 최초로 선보인 푸시-크라운은 카메라의 촬영 버튼이 떠오르지 않냐며 크라운에 찍힌 '레드닷'도 가리키면서요. 더불어 렌즈의 조리개가 연상되는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와 흰색과 빨간색으로 활성 여부를 보여주는 모드 인디케이터는 일반 시계와는 차별화되는 대목이라고.
시계 생산의 모든 공정이 독일의 한 공장에 이루어진다며 수작업을 통해 완성되는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10여 년 전 국내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라이카의 공정은 조립보다 검수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방송에서 보여준 100여 가지 생산 공정 중 검수 과정이 60개가 넘었거든요. 무브먼트도 자체 제작하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단순히 상표만 붙여서 팔겠다는 뜻은 아닐 테니.
다만 기본형 모델 기준 천오백만 원이 넘는 가격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하이엔드 명품 시계로 평가받는 랑에 운트 죄네에서 인재를 영입했다고 쳐도 그 가격대에선 무수한 선택권이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카의 새로운 도전은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포르쉐가 카이엔으로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잖아요.
믿음 소망 사랑
출처 : Leica Camera
박찬욱 영화감독은 국내 한 매거진을 통해 ‘올드보이의 성공이 라이카를 갖게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훌륭한 렌즈를 통해 구현되는 품위 있는 색은 가볍지 않다며 선망의 대상에 대한 만족감도 드러내면서요. 덧붙여 박 감독은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믿음’도 언급했는데요,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라이카의 브랜드 가치에도 주목한 것이었겠죠. 신뢰에 기반한 브랜드와 소비자의 유대관계는 비즈니스 성장의 탄탄한 기반이 되니까요.
출처 : Leica Camera
원칙을 지키되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변화는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라이카 카메라 회장. 오랜 시간 동안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변화에도 적극적인 라이카가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에도 여전히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견고한 위상을 지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찰칵.
이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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