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쏙 뺀 러쉬코리아 취재기

뷰티가 예술을 말하는 것은 뻔할까요?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겨울, 영국에서 시작한 비건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는 명동에 국내 1호점을 엽니다. 29살의 젊은 대표와 4명의 직원으로 단출하게 시작했죠. ESG 경영 개념이 낯설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친환경 가치를 설파해 왔습니다.

비건 화장품의 대표 주자인 러쉬코리아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전국 매장 수 70여 개, 직원 수는 800명을 훌쩍 넘어섰죠. 올해 매출액(2021년 7월~2022년 6월)은 1234억 원을 기록합니다. 성분뿐만 아니라 이념도 ‘착한’ 브랜드로 탄탄한 팬층을 쌓아온 덕분입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 젠더 관련 캠페인에 적극 참여해왔죠. 이제는 여기에 ‘예술’을 더하겠다고 합니다. 러쉬코리아의 다음 20년을 이끌 핵심 가치라는데요. 왜 예술일까요?

정말 MBTI ‘E’만 뽑나요?

러쉬 아트페어

매장 쇼윈도에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_출처 : 러쉬코리아

경험을 중시하는 MZ 세대 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아트 마케팅은 보편적입니다. 패키지 컬래버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도 개최하죠.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라네즈와 로레알코리아는 각각 올 3월과 9월에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브랜드 철학을 보다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죠. 뷰티와 예술은 아름다움이란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만큼 좋은 파트너입니다.

러쉬코리아가 말하는 예술은 비즈니스 전반에 접목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앞으로 나아갈 20년의 방향성을 ‘아트(Art)’로 선포했습니다. 지난 9월 전국 매장 20곳에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제1회 아트페어’가 시발점인데요. 핵심 프로모션 세션인 쇼윈도에 제품 아닌 작품을 놓았다는 데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죠.

[러쉬코리아] 매장 내부 (1)

출처 : 러쉬코리아

예술에 주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매장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 공간이라고 보기 때문인데요. 형형색색의 배쓰밤과 버블바는 그 자체로 작품 같다고 하여 ‘배쓰아트’라고 불리웁니다. 전방 100m에서도 러쉬 매장의 유무를 알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인 향과 MBTI E(외향형)만 뽑는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활기찬 해피피플(러쉬코리아 전 직원)의 에너지가 모이면 흡사 전시장과 같다는 설명입니다.

러쉬가 예술과 맞닿아 있다는 확신도 한몫합니다. 20주년 쇼케이스를 기획·담당한 김슬기 러쉬코리아 브랜드본부 커뮤니케이션 콜라보(컬래버레이션)팀 팀장은 “예술은 많은 사람과 장벽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라며 “러쉬가 생각하는 편견 없는 평등의 가치를 작품에 담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10월 14일~1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쇼케이스가 다양한 연령층, 젠더, 장애인, 성소수자 아티스트와 협업한 전시와 공연으로 꽉 찬 이유인데요. 현장을 찾아 예술을 어떻게 녹여냈는지 살펴봤습니다.

20주년 생일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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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매장 외관을 재현한 전시장_출처 : 러쉬코리아

쇼케이스는 ‘지난 20년과 앞으로의 20년’으로 구성됩니다. 사람, 동물, 자연의 조화를 꿈꾸는 러쉬답게 친환경을 주제로 한 공간이 먼저 펼쳐지는데요. 국내 1호인 명동 매장 외관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숲길이 나타납니다. 장미나무, 로즈마리 등으로 꾸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참여형 전시가 나옵니다. 발달장애 작가들이 멸종위기 동물을 주제로 그려낸 작품도 벽면 한편을 채우죠.

제품 경험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관람객은 전시를 보며 마음에 드는 성분과 러쉬의 철학 중 가장 공감가는 가치를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취향에 꼭 맞는 제품을 추천받을 수 있죠. 비닐 대신 천을 활용한 ‘낫랩 포장’과 천연 재료만을 사용한 과정도 오감으로 체험 가능합니다.

자연주의를 고집해온 지난 20년을 살피고 나니 다음 20년이 궁금해지는데요. 러쉬코리아는 예술과의 협업에 주력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비티 벽화와 드랙 아티스트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현하는 러쉬의 철학을 찾을 수 있죠. 김민경 국내 1호 아트컬러리스트가 재활용 소재로만 작품을 만들어 전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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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코리아 출범 2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욕심쟁이’ 향수_출처 : 러쉬코리아

‘퍼퓸 디스플레이룸’을 따로 만들 정도로 향에 집중하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활력, 야망, 침착 등 다양한 테마로 미디어 아트와 향기를 즐길 수 있는데요. 김 팀장은 “팬데믹 이후 향수에 대한 인기가 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만 한정으로 판매되는 러쉬코리아 20주년 향수 ‘욕심쟁이’도 출시했다”고 말합니다. 덧붙여 “러쉬 본사에서 아시아 최초로 오직 러쉬코리아만을 위해 조향했다”고 웃어 보입니다.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첫 번째 테마에서는 지난 20년 간 러쉬코리아가 주력해온 친환경 가치를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모호했죠. 예술에 방점을 찍었다고는 하지만 많은 브랜드가 쇼케이스나 팝업스토어에 미적인 요소를 더하기에 차별점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 팀장은 “러쉬코리아는 스무 살 청춘이다”면서 “특유의 통쾌함을 녹여내고자 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여느 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발랄한 해피피플이 쇼케이스 분위기를 주도하는데요. 관람객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체험을 돕고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보입니다. 기자는 먼저 같이 사진을 찍자던 해피피플과 초면인데도 다정하게 한 컷 남겼습니다. 외부인력 없이 전국에서 지원한 직원들로만 구성된 덕분에 러쉬 고유의 에너제틱함이 그대로 묻어났죠. 다소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예술에 유쾌함을 더한 덕분에 러쉬만의 싱그러움이 살아났습니다.

1995

러쉬 창립

2002

러쉬코리아 설립

2011

코스메틱 브랜드 최초로 콘서트 개최

2021

매출 1000억 원 돌파

2022

20주년 쇼케이스 개최

러쉬 창립

러쉬코리아 설립

코스메틱 브랜드 최초로
콘서트 개최

매출 1000억 원 돌파

20주년 쇼케이스 개최

불모지에서 키워낸 ‘찐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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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금 전액을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 전달하는 보디로션 ‘채러티팟 코인’_출처 : 러쉬코리아

러쉬코리아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배경을 살피지 않을 수 없겠죠. 우 대표는 해외여행 중 러쉬를 처음 접했습니다.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천연 재료를 고집하는 소신에 마음이 끌렸죠. 한국 판권을 노리는 경쟁사만 다섯 곳. 그는 아랑곳 않고 러쉬 본사 매장에서 무급으로 판매 이벤트에 참여하는 등 열의를 보였습니다. 본사가 우 대표를 택한 까닭이죠. 포장도 없이 천연 재료만 사용하는 제품 특성상 유통이 까다로워 큰 회사보다는 필드를 지배할 파트너가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가을, 우 대표는 러쉬 창업자 중 한 명인 로웨너 버드의 집에 머물며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윤리적 소비에 방점을 찍은 브랜드 철학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죠. 같은 해 12월 국내에 첫 매장을 선보인 후에도 가장 주력한 것은 환경보호에 대한 비전 공유. 매장마다 환경보호 활동을 전담하는 직원 ‘캠페이너’를 임명했습니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선진국보다 미약한 한국 시장이기에 행여나 매출에 대한 욕심이 브랜드 이념을 앞설까에 대한 우려였죠.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기 위해 캠페인도 현지화합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활동일지라도 국민 성향과 가치에 맞지 않는다면 퍼포먼스로만 끝날 수 있어서죠. 지난 2014년 위안부 관련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한 ‘화(花)를 내다’가 대표적입니다. ‘플라스틱 줍깅(2019년)’을 통해서 제주도, 강화도, 부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총 1.04톤(t)의 쓰레기를 수거하기도 했습니다.

[러쉬코리아] 제품 콘셉트 사진 (1)

출처 : 러쉬코리아

지난해를 기점으로 미닝아웃(Meaning Out·소비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을 표출하는 것)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러쉬의 ‘찐팬’도 많이 늘어났는데요. 윤예진 러쉬코리아 브랜드본부 홍보팀 팀장은 “성분의 원산지나 동물 실험 여부에 관심을 갖는 윤리적 소비자가 늘고 있다”면서 “이제 ‘비건 뷰티’라는 말도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20년, 브랜드로서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그동안 자연주의에 대한 진정성을 탄탄히 다져왔는데요. 여전히 수줍은 소비자들에게 러쉬의 문턱은 높습니다. 매장 내 직원과 하이파이브를 해야 나올 수 있다는 등 친화력이 좋은 사람만 갈 수 있다고 알려졌거든요.

마냥 거짓은 아니지만 그 저변에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기반돼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셨을까요? 부담을 내려놓고 문을 한 번만 열어보시면 재기발랄한 해피피플들이 활짝 반겨줄 것입니다. 지구를 지키려는 건강한 걸음에 동참하려는 마음을 응원하면서요!

조지윤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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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랜드 22.10.16 승인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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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허문 소통 위해 예술을 핵심 브랜드 가치로 채택
마케팅 아닌 비즈니스 전반에 예술을 활용한다는 진정성
미닝아웃 트렌드보다 앞서 추구한 가치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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