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티(YETI)는 2006년 문을 연 아웃도어 제품 브랜드입니다. 아이스박스를 필두로 텀블러, 캠핑용 의자, 가방 등을 생산하는데 그중 예티의 아이스박스는 아이스박스계의 샤넬, 롤스로이스로 불릴 정도로 아웃도어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기존 아이스박스의 10배에 달하는 가격과 그에 못지않은 보냉 기능, 견고함, 디자인 덕분인데요. 아웃도어 전문가들의 마음을 파고든 니치 마케팅도 한몫했죠. 이젠 캠핑 입문자들마저 진정으로 캠핑을 시작하려면 예티 제품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대중성까지 확보하고 있습니다. 예티는 어떻게 ‘저렴하고 일상적인’ 제품인 아이스박스를 고급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만의 여행 필수품은 무엇이 있나요? 미국에서는 여행을 떠날 때, 꼭 아이스박스를 챙기곤 합니다. 미국은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휴게소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음식과 음료를 시원하게 보관해주는 아이스박스가 필수일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만큼 이미 시장에는 너무 많은 아이스박스들이 나와 있습니다. 물건을 시원하게 보관한다는 기본 기능에만 충실하다면 사람들은 크게 불만 없이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아이스박스에 혁신을 가져온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었죠.
예티는 실용성 외에는 별다른 고려 사항이 없었던 영역인 ‘아이스박스’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진 일상적인 제품을 혁신하고, 아이스박스계의 롤스로이스샤〮넬 등 갖은 명품 수식어를 얻었죠. 사실 그 시작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아이스박스를 자주 사용하던 아웃도어 마니아인 두 형제가 느낀 불편에서 비롯했죠.
아웃도어 마니아의 불편, 혁신으로 이어지다
창업자 세이더스 형제_출처 : 예티
예티의 창업자인 라이언 세이더스와 그의 동생 로이는 어릴 때부터 아웃도어 마니아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며 낚시, 사냥, 캠핑 등을 즐겼죠. 두 형제는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가운데 아이스박스에 대한 불만을 느꼈습니다. 낚시를 하다 보면 아이스박스를 밟고 올라설 때가 잦은데 기존 제품들은 약해서 쉽게 부서졌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살던 텍사스는 매우 더웠는데 아이스박스에 맥주를 넣어두면 금방 미지근해지기 일쑤였습니다. 내구성이 약하고 보냉 능력도 떨어져서 매 분기 아이스박스를 바꿔야 했죠. 물론 아이스박스는 저렴하고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매번 사기도 귀찮고, 당장 필요할 때 부서지는 것이 불편했죠.
출처 : 예티
두 형제는 단지 불만을 터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습니다. 자주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튼튼하고 보냉 능력이 좋은 아이스박스를요. 그들은 카약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플라스틱으로 아이스박스를 만들었습니다. 절대 저절로 풀리지 않는 T자 형태의 잠금장치도 적용해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예티의 아이스박스는 곰 위원회(IGBC)로부터 곰 저항력 인증을 받았습니다. 곰의 공격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견고하다는 것을 보증하죠.
보냉 성능 또한 강화했습니다. 단열 성능이 우수한 폴리우레탄 폼을 두께가 최대 3인치(7.6cm))에 달할 정도로 둘렀습니다. 얼음을 넣고 1주일이 지나도 얼음이 유지될 정도로 강력한 보냉 기능으로 냉장고로 사용될 정도입니다. 브랜드명 ‘예티’는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설 속의 얼음 괴물, 예티가 보여주고 싶은 정체성 그 자체였죠.
출처 : 예티
두 형제는 첫 시제품을 만들었을 때, 아이스박스 하나에 300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시중에 나온 아이스박스는 보통 20~30달러 선이었고, 아이스박스는 저렴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해도 아이스박스를 일상품으로 인식하는 시장에서 경쟁이 될 리 없었죠.
그들은 가격을 낮추는 대신 유통경로를 바꾸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아웃도어 전문 매장에서만 제품을 팔고 야외무역박람회 등 어부, 사냥꾼, 산악인 등 전문가나 프로들의 커뮤니티에 입소문을 내면서 비싸게 사서 오래 쓰는 하드코어 타깃층을 공략했습니다.
두 형제가 직접 느꼈던 불편에서 비롯한 혁신은 이제껏 같은 불편을 느껴온 아웃도어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점차 예티 아이스박스는 전문가라면 꼭 사야 하는 필수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출처 : 예티
예티는 브랜드 출시 3년 만인 2009년 500만 달러(약 61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빠르게 커갔습니다. 2년 뒤인 2011년에는 매출이 6배가량 늘어 2900만 달러(약 354억 5000만 원)를 기록했습니다.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예티가 2013년 브랜드 인지도를 추적했을 때, 주요 아웃도어 이용자의 인지도는 4.4%에 불과했습니다. 예티는 이때부터 낚시, 사냥 전문 브랜드를 넘어 캠핑, 스노보드, 산악자전거 등 모든 종류의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들로까지 고객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예티는 2018년 뉴욕 증시(NYSE)에 상장합니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아웃도어 활동이 제약적인 가운데서도 예티는 꾸준한 실적을 기록합니다. 2020년 매출액은 10억 9000만 달러(약 1조 3327억 원), 영업이익은 2억 1000만 달러(약 2568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20%, 139%씩 늘어난 수준입니다.
2006
예티 브랜드 창립
2008
시그니처 아이스박스 ‘툰드라’ 출시
2014
텀블러 출시
2018
뉴욕 증시(NYSE) 상장
2019
시카고 플래그십 스토어 론칭
예티 브랜드 창립
시그니처 아이스박스
‘툰드라’ 출시
텀블러 출시
뉴욕 증시(NYSE) 상장
시카고 플래그십 스토어 론칭
브랜드에 이야기를 더하자 대중이 응답했다
출처 : 예티
예티는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여겨진 아이스박스의 품질을 눈에 띄게 개선했습니다. 그런데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전문가들이야 예티 아이스박스에 열광했지만 대중들은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다른 제품에 비해 10배 넘게 비싸서죠. 사람들은 이미 부실해도 저렴해서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아이스박스에 길들여져서 흔쾌히 지갑을 열지 않았습니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할 때에 힘을 갖습니다. 예티도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초기엔 보통의 제조업체가 그러하듯 곰이 때려도 안 부서진다, 사슴이 3마리 들어갈 정도로 용량이 크다는 등 기능성을 강조하는 광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려면 다른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예티가 찾아낸 소구점은 ‘로망’이었습니다.
예티는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거칠고 활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냈습니다. 야생에서 사는 자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티 프리젠트’가 대표적이죠. 미국판 ‘나는 자연인이다’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미국 사막에 거주하는 인디언 카우보이, 파도가 좋은 전 세계 섬을 찾아다니는 서퍼 형제를 조명했습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자연스레 예티 제품들을 사용했죠. 예티 프리젠트 시리즈는 100만 회 가량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바이럴 됐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동경했고,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예티의 제품들에 노출됐습니다. 아웃도어 전문가들은 예티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레 녹아들었죠. 예티를 몰랐던 아웃도어 문외한(?)들도 이런 아웃도어 활동을 시작할 때에 예티 제품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예티 앰버서더’라고 불리는 네트워크를 통해 더 강화됐는데요. 예티는 사냥꾼, 낚시꾼, 카우보이 등 다양한 분야의 아웃도어 전문가들을 예티 앰배서더로 임명하고 그들을 인터뷰해 홈페이지에 실었습니다. 지금은 삭막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들처럼 터프한 아웃도어 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한편, 예티는 미국 도시인들이 가슴 한편에 품고 사는 추억도 자극했습니다. 예티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숲에서 몰래 곰을 훔쳐보는 법, 나무 오르는 법 등을 알려주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과정 속에서 예티 제품이 녹아듭니다. 막 잡은 생선을 아이스박스에 신선하게 보관하고, 서핑을 해도 물에 젖지 않는 가방을 보여주는 것이죠. 전문가, 비전문가 모두의 로망을 자극하는 광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예티의 2022 봄 시즌 색상 비미니_출처 : 예티
나아가 예티는 매 시즌 한정판을 출시해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합니다. 자주 사지 않아도 되는 튼튼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곧 이 제품을 어떻게 해야 꾸준히 팔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티는 이미 광고를 통해 보았던 ‘이야기’의 힘을 한 번 더 활용합니다. 매 시즌마다 새로운 색상을 입힌 제품을 출시하는데, 그 색상을 선정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죠.
예컨대 2022년 봄에는 진한 분홍색의 ‘비미니(Bimini)’ 색상 에디션을 내놓았습니다. 바하마 제도에 위치한 비미니 섬의 열대 지방 특유의 감성과 열정에 영감을 받아서였죠. 예티는 비미니 섬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내, 어떻게 비미니 색상을 뽑아냈는지를 설명합니다. 예티의 한정판 제품은 원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재판매 될 정도입니다.
예티는 필요성이 아닌 욕망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통해 열망 브랜드(aspirational marketing)로 거듭납니다. 비슷한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도 사람들은 예티라는 이름에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한다는 뜻이죠. 예티가 아이스박스계의 명품으로 불리게 된 까닭이기도 합니다.
출처 : 예티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 예티만 노려 매장을 터는 도둑이 잡혔다고 보도했습니다. 훔친 신용카드로 예티 아이스박스만 잔뜩 산 범죄자에 대한 기사도 나면서 예티의 명품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굳이 아이스박스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예티’라는 브랜드 이름값에 주목했죠.
예티가 아이스박스 고객에게 증정하는 용도로 제작한 모자, 스티커, 텀블러 등을 정식으로 출시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친 까닭입니다. 명품 브랜드의 열쇠고리를 사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티 로고가 붙은 티셔츠, 패치를 구매합니다. 특히 예티 특유의 내구성과 보온/보냉 기술을 활용한 텀블러 등 음료병(drinkware)은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덕분에 빠른 속도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예티 매출의 58%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전문 아웃도어 매장에서 비싼 아이스박스를 팔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이미지를 쌓고, D2C(Direct to Consumer, 직접 판매)로는 튼튼하고 보냉력이 우수한 텀블러를 팔면서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 성장을 동시에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도약
출처 : 예티
예티는 그간 아무도 혁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영역인 아이스박스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스토리를 입혔습니다. 아이스박스를 단지 일상적인 제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것이죠. 우스갯소리로 애플의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감성이 있다’라고 평가받는 것처럼 예티를 쓰는 사람은 ‘자유롭고 터프하다’라는 이미지가 더해지죠.
그 덕분에 예티 컬트(YETI Cult, 예티 팬들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예티에 열광하는 팬층은 공고해집니다. 2022년 4월 기준 해시태그 ‘YETI’와 예티를 사용한 경험을 공유하는 해시태그 ‘BuiltForTheWild’는 인스타그램에서 각각 199만 회, 33만 회 이상의 언급량을 기록할 정도죠.
출처 : 예티
다만, 예티 앞에도 놓인 과제가 있습니다. 예티를 모방한 아이스박스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저렴한 아이스박스만 만들던 회사들도 예티가 성공한 것을 보고 고급스럽고 더 튼튼한 아이스박스들을 내놓고 있죠, 게다가 가격은 예티의 절반에 가깝게요! 하지만 예티의 가치는 제품의 품질을 넘어 그들이 16년간 다져온 브랜드 이미지에서 비롯했기에 예티는 견고히 자리를 지킬 예정입니다.
예티는 이제 미국을 넘어 캐나다, 영국, 일본 등 세계로 판매처를 넓혀갑니다.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도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며 해외 직구로 예티를 들여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한동안 정체됐던 아웃도어 활동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예티 역시 더 적극적으로 해외로 뻗어가겠다고 말하는 만큼 조만간 한국에서도 예티를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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