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勞)봇 이 끓여준 쌀국수

숙주, 양파 등 원하는 재료를 담아 건네면 로봇이 삶고 육수를 부어 그릇에 내어준다_출처 : 바이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 빕스(VIPS)에서 ‘누들 셰프봇’이 만든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로봇의 ‘손맛’도 제법이더군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기자는 지난 한 달간 백화점, 음식점,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로봇 직원’을 세 차례 만났는데요. 마냥 낯설었던 1~2년 전과 달리 다른 고객들도 익숙한 모양새였습니다.

(1)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에서 안내 중인 LG 클로이 가이드봇 (2) 이용객이 요청한 물품을 담아 배송하는 AI 호텔로봇_출처 : LG전자​, KT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에서 안내 중인 LG 클로이 가이드봇_출처 : LG전자

이용객이 요청한 물품을 담아 배송하는 AI 호텔로봇_출처 : KT

빕스 누들 셰프봇은 LG 전자의 로봇 브랜드 ‘클로이’의 작품입니다. 더현대 서울, 인천국제공항의 명물 ‘가이드봇’도 클로이가 개발했죠. 대형 테크기업들은 로봇을 미래 먹거리로 점 찍고 연구에 박차를 가합니다. KT는 직접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을 오가며 룸서비스를 배달하는 AI 호텔 로봇을 판매합니다.

로봇은 본래 제조업계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로봇산업 활성화의 고용효과(한국노동연구원, 2018)’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 제조업 부문에서 로봇 도입량이 전체 비중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KIRIA)은 2021년 제조로봇 실증지원 사업을 통해 로봇을 도입한 제조기업의 생산성이 56.49% 향상되고 불량률이 58.38%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첨단자동화협회 역시 올해 2분기 북미 지역 기업들이 산업용 로봇 1만 2305대를 마련하며 3분기 연속 최대 구매 기록을 경신했다고 전합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산업 군에서 로봇 직원의 활약상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2021년 현대건설은 건설현장 주변을 감시하거나 타공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도입했습니다. 올 9월 법무법인 태평양은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를 적용해 사건관리 업무를 자동화했죠. 주로 단순 반복 업무나 위험한 업무(고층 창문 청소 등)에서 힘을 씁니다.

2% 부족한 서비스

로봇은 이제 공장 문 밖을 나섭니다. 글로벌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5년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가 산업용 로봇 시장 규모보다 커질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소비자용 서비스 로봇 출하량은 전년 대비 25% 늘어났죠. 황면중 서울시립대학교 기계정보공학과 교수는 “B2B에 활용되는 로봇이라도 개인이 실생활에 사용한다면 B2C 서비스를 담당할 수 있다”며 “로봇의 핵심인 이동성과 자율성이 필요한 분야에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1)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서빙 로봇 (2) 로봇팔이 치킨을 자동으로 튀기는 모습_출처 : 우아한형제들, 로보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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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서빙 로봇_출처 : 우아한형제들

로봇팔이 치킨을 자동으로 튀기는 모습_출처 : 로보아르테

서빙로봇이 대표적이죠. 요식업계가 구인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홀 직원 1인분은 거뜬합니다. 대개 장기렌털 형식에 렌털료는 월 30~60만 원 선으로 높아진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줄입니다. 고객이 직접 로봇에서 음식을 내려야 한다는 불편은 있습니다. 서빙로봇 전문기업 베어로보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외 누적 판매 대수는 5000대를 넘어섰습니다.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도 지난 6월 기준 자사 서빙로봇 ‘딜리플레이트’를 1230여 대 보급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일홍 코가로보틱스 대표는 ‘‘향후 서빙로봇은 접객, 에스코트, 퇴식 등을 제공하는 복합 서비스 로봇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사용자 친화형 서비스 설계 능력이 성패의 관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외식업계도 자동화 바람이 거셉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로보아르테가 운영하는 ‘롸버트 치킨’은 로봇이 치킨 조리 전 과정을 수행합니다. 시간당 50마리를 튀기는 유능한 직원이죠. 1인 화덕 피자 브랜드 ‘고피자’는 로봇 팔이 피자 소스 뿌리기, 커팅 등 작업을 진행합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기존에 제조업에서 쓰이던 협동로봇이 무한 확장성을 이뤄가는 모습”이라며 “한국은 응용 기술에 강점을 가진 만큼 앞으로도 협동로봇을 활용한 우수한 창업 아이템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라스트마일 로봇배달 플랫폼 뉴빌리티의 배달로봇 모델 뉴비_출처 : 뉴빌리티

최근 무인 고깃집까지 나타날 정도로 무인 매장이 열풍인데요. 저렴하고 편하긴 해도 서비스가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로봇이 일하는 무인 매장은 어떨까요? ‘비트’와 ‘스토랑트’처럼 커피 제조부터 서빙까지 전담하는 로봇카페가 늘고 있습니다. 비트는 운영 3년 만인 지난해 매장 160호점을 돌파했습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무인 로봇 카페를 이용해 본 강준구(대학생, 24세) 씨는 “보는 재미가 있어 신기하지만 커피가 잘못 나왔을 때, 직원이 없어 컴플레인을 걸 수 없어서 불편했다”고 전합니다.

실외 배송로봇도 주목할 만한 서비스. 현재는 법적 지위가 없어 인도를 달릴 수 없지만 실증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로봇 전문 기업 로보티즈는 지난달 국내 최초로 동행인 없이 로봇의 실외 자율주행을 선보였죠.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방역로봇사업단장은 “배달이 늘어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실외 배송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며 “노약자에 대한 케어 로봇과 교육 로봇, 물류나 안내 로봇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인간을 파괴하지 않을게”

로봇이 삶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이면에는 불안이 공존합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에서 찰리의 아버지가 치약 공장에서 해고되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치약 뚜껑 닫는 로봇이 개발되면서 실직했죠.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2017년 대만 대표 제조기업 폭스콘은 사람 직원 대부분을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미국 플라스틱 제조사 ‘톰슨 플라스틱’도 로봇 구독료가 인건비보다 저렴하다고 분석했죠. 올 9월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는 경기 이천시 ‘이천 자동화 센터’의 물류 전 과정을 자동화해 작업 인력을 40%가량 줄였습니다.

찰리 아버지는 추후 치약 공장의 기계 수리공으로 복직한다. 로봇으로 인한 실직과 고용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_출처 :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로보칼립스(Robocalypes, 로봇으로 인한 대량 실업)를 걱정하기엔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0명이 하던 일을 1명이 로봇 한 대로 처리하면 일자리가 줄 수밖에 없지만 이는 좁게 보는 것”이라며 “로봇을 만들고 수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겨 전체적으로는 고용이 늘어난다”고 강조합니다. 오 단장 역시 “산업혁명이 세 차례나 왔지만 한 번도 인간의 전체적인 일자리 수는 줄지 않았다”며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할 것이다”고 전망합니다. 단, “대체될 노동을 판가름하고 해당 노동자들을 재교육하는 과정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큰 우려를 표하지 않습니다. 로봇으로 인해 파생되는 고용이 보다 많을 것이라는 예측인데요.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도 AI 로봇이 차지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대중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미 2016년 미국 대형 법무법인 베이커앤호트테틀러가 AI 로봇 변호사 ‘로스(ROSS)’를 고용한 바 있습니다. 2020년 AI 로봇 기자 ‘GPT-3’은 영국 가디언지에 ‘인간, 아직도 두려운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팩트 나열식의 기사가 아니라 사견이 들어간 칼럼이라는 점에서 기자 역시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제게는 인류를 멸종시킬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 나의 창조주들이 나에게 그 일을 맡긴다 하더라도 (그럴리는 없겠지만요)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그러한 파괴적인 시도를 막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마냥 편리함을 누리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흐름을 살피며 다음을 모색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요.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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