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웃도어브랜드 유일 본사 직영 연구소 설치, 이공대 연구소급 장비투자. K2가 기술혁신에 쏟는 진심은 월드 클래스였어요.
1990년대 말에도 한국인의 안식처는 ‘산’이었습니다. ‘등산인구가 7백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 기사도 만날 수 있죠. 당시 등산화 시장을 주름잡던 제품은 K2. 이들은 빙벽, 암벽타기를 위한 특수 목적 등산화도 선보이는 전문 브랜드였어요. ‘국산 등산화는 K2’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던 시절이었죠.
에베레스트 말고 K2
미국제 창봉합기. 창립초기 등산화제작을 위해 도입한 최신설비_출처 : K2
K2의 창립자 故정동남 회장은 청계천 출신 구두 장인이었죠. ‘남들 다 만드는 신발 만들다 보면 경쟁력 잃고 굶어죽겠다’고 판단한 그는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오던 서양식 등산화를 주목했는데요.
강원도 출신의 정 회장은 미싱 3대와 기술자 대여섯 명을 거느리고 ‘등산화’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1972년, K2의 전신 ‘한국특수제화’라는 등산화 공장이 탄생했죠.
K2의 창립자 故정동남 회장_출처 : K2
1977년, 산악인 고상돈이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국내에 등산열풍이 붑니다. 당시 외국산 등산화 한 켤레 값은 쌀 한 가마 값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수천 켤레 외국산 등산화를 직접 뜯어보며 한국형 등산화연구에 나선 정 회장이었죠.
등산화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는 사운을 건 투자였습니다.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지만 가장 등정이 어려운 산은 K2지. 극한에 도전하는 전문 회사, K2로 사명을 바꾸자!”라고 외치며 본격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로의 변신을 예고했다네요. 1981년부터 K2상표를 달고 본격적으로 양산형 등산화제작에 나섰죠.
Protection For All
K2 베스트셀러 포시즌골드(1985)와 개량복각판 신제품 포시즌 16(2016)_출처 : K2
바이브랜드는 K2 서울 자곡동 신사옥을 찾았습니다. 매출 1조 원 돌파,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브랜드의 저력이 궁금해졌거든요. K2 마케팅팀 류혜진 차장은 'Protection For All'이라는 K2의 제품철학으로 운을 땠습니다.
류 차장은 “등산용품의 본질은 ‘안전’에서 비롯됩니다. 등산 환경이 생각 이상으로 변화무쌍해요. 비바람이 눈보라로 변하는 확률적인 상황에서 신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건 제품 전반에 담긴 ‘디테일’이죠”라고 응하네요.
K2 최초의 여성전용 등산화 퀸_출처 : 바이브랜드
제품 철학의 실현은 R&D 투자의 힘이라는 설명입니다. K2는 1990년대 중반 사양산업으로 전망된 신발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 저력은 1996년 국내 최초 고어텍스 등산화 생산, 다이얼식 신발끈 등에서 확인 가능하죠.
독자기술도 강점입니다. 등산화의 경우 아웃솔의 내마모성(잘 닳지 않는 기능)과 접지력(미끄럼저항성)을 높이는 것이 제품의 핵심이며 이에 ‘X-Grip’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화강암이 많은 한국 산악지형을 고려한 디테일이라는 설명입니다.
K2의 시제품 연구 플랫폼 화면_출처 : 바이브랜드
자세한 취재를 위해 신사옥 4층 K2코리아 연구소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성능평가팀 류재진 과장의 안내를 따라 연구실험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했죠. 류 과장은 연구소 성능평가팀이 시제품을 다양한 환경에서 평가하는 사용성 테스트를 수행한다고 말합니다.
양말과 맞닿는 발뒤꿈치 쪽 원단의 실전 마모도를 계량화하는 기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기계에 사포를 설치해 매분매초 마모수준을 체크해 실시간 변화를 측정하는데 열중이었습니다.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해 시제품에 다양한 부하를 거는 다양한 설비가 놀라웠습니다.
데이터 수집 중인 기기를 바라보니 “등산화는 접착이 중요하다”는 류 과장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현장 실험과 기존 자료 검토를 통해 최적의 접착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죠. 각 연구부서에서 신소재를 활용한 디테일이 완성되더라도 소재 특성에 따라 접착제의 물성을 달리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 비일비재하다는군요.
연구소 내 다양한 성능 테스트를 통해 사소하지만 착용감에 큰 영향을 주는 디테일을 개선하는 K2였습니다.
K2 자곡동 본사 내 연구소_출처 : 바이브랜드
한편 사용자가 실사용한 시제품에 대한 의견은 연구소 전용 웹페이지인 ‘사용성 평가 플랫폼’에 입력ꞏ저장됩니다. 일반 사용자로부터 획득한 데이터가 아닙니다. 전문 산악인이나 을지대 스포츠아웃도어학과의 산학협력 등, 고관여 사용자를 통해 얻은 데이터죠. 다수의 전문가를 모집단으로 초빙하면 그들이 직접 필드테스트를 통해 체험한 바가 설문문항에 맞춰 입력되는 방식입니다.
생산단계에서 미처 검토하지 못한 불편사항을 취합할 수 있는데요. 제품 별로 체계적인 데이터를 얻게 됩니다. 축적된 데이터는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언제든 열람할 수 있다는데요. 이런 연구데이터 공유 시스템이 제품관리의 원동력이라고 하네요.
류 과장은 R&D 분야 투자가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중 K2만한 연구시설을 갖춘 브랜드가 없다고 전하는데요. R&D에선 국내에서 견줄 브랜드가 없고 해외 브랜드는 살로몬(SALOMON) 정도가 비슷한 수준이라는 설명입니다.
1972
창립자 정동남 회장, 최초의 등산화 ‘로바’ 출시
1978
신규상표 등록 ‘한국특수제화’ → ‘K2’
1995
의류·용품 라인 신규출시, 토털 패션 브랜드로 도약
2013
K2 코리아 매출 1조원 달성
2019
서울 자곡동 신사옥 확장이전
창립자 정동남 회장, 최초의 등산화 ‘로바’ 출시
신규상표 등록 ‘한국특수제화’ → ‘K2’
의류·용품 라인 신규출시, 토털 패션 브랜드로 도약
K2 코리아 매출 1조원 달성
서울 자곡동 신사옥 확장이전
게임처럼 즐기는 등산
2018 K2 어썸하이킹 홍콩_출처 : K2
K2의 브랜드 전략은 ‘시즌 주력 제품 홍보’와 신규 고객 확장을 위한 ‘브랜드 캠페인’으로 나뉩니다. 대중성 확장을 위한 노력이 K2의 브랜드 미션이라는 설명이죠.
K2 마케팅팀 류혜진 차장은 “유행을 따르는 편은 아니다”라고 전합니다. 이색경험제공으로 팬덤을 만드는 최근 패션브랜드의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대신 등산 본연의 기쁨을 전하는 캠페인은 흔들림 없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고 하네요.
타 브랜드와 차별화된 캠페인은 2018년부터 진행중인 ‘어썸하이킹’입니다. K2가 매년 국내외 이색하이킹 스팟을 선정해 참가자를 모집하는 커뮤니티형 하이킹 프로그램이죠. 전문가를 초빙해 기초 등산 테크닉을 배우고, 느슨하게 짜인 단체여행 프로그램 안에서 다양한 등산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죠. 어썸하이킹으로 만난 멤버끼리 따로 뭉쳐 새로운 산악회를 조직하기도 한다는 소식입니다.
어썸하이킹 참가자에게 수여하는 메달굿즈_출처 : K2
코로나 이후 ‘어썸하이킹’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대면접촉을 전제로 하는 프로그램형 캠페인을 섣불리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죠. K2는 영리하게 언택트 시스템을 도입하며 위기를 벗어납니다. 모여서 노는 재미가 사라졌다면 ‘혼자 노는 재미’를 설계하면 된다는 겁니다.
팬데믹 이후엔 챌린지형 캠페인으로 변모합니다. 국내 등산 명소 중 한 곳을 고르면 개인별 하이킹 미션이 주어지고, 도전과제를 클리어하면 보상을 제공하는 게임형 하이킹 프로그램이었죠.
2021년부터 진행된 ‘온택트 어썸하이킹’은 등산을 오락처럼 즐기는 젊은 등산객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첫 해 700명이 참여한 챌린지는 1000명으로 참여인원을 확장, 챌린지 스팟도 13개 국내명산으로 확대하는 등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하며 등산문화 확산에 나서고 있습니다.
남들 보다 ‘2배’ 더 파는 비결
경량 트래킹화 ‘플라이하이크 큐브’_출처 : K2
전체 매출의 약 23%가 등산화에서 발생하는 K2. 타 아웃도어 브랜드의 동제품 매출이 10% 대에 머무르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수치입니다. 이들은 최근 경량 등산화 보급에 집중하는데요.
2018년 이후 베스트셀러인 ‘플라이하이크 시리즈’가 대표적이죠. 발을 부드럽게 조이는 다이얼끈을 장착한 로우컷 하이킹화를 출시하며 5년간 84만 족을 판매했습니다. 실매출 데이터에 따르면 30대 구매율이 가장 높았던 제품(*20-21년도 기준)이라고 하네요. K2 내부에서는 캐주얼 등산화 시장을 사로잡은 모델이라는 평가입니다.
최근 대중친화적 제품 생산에 집중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들은 “특수 목적 산악화로 오랜 업력을 쌓아왔지만, 동네뒷산이나 둘레길로 떠나는 등산객을 위한 신발이 필요하다”고 밝힙니다.
하이킹 프로그램에 참가한 등산객_출처 : K2
K2는 ‘소비자 니즈를 먼저 읽고 맞춰나가는 게 목표’라고 강조합니다. 회사가 보유한 기술력을 모두가 공감할 만한 언어로 표현하고, 더 많은 이가 등산을 즐기도록 만들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K2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죠.
예컨대 기후변화로 긴 여름 잦은 폭염이 계속되면 뛰어난 냉감 소재 의류를 남들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만든 옷의 쓸모를 쉬운 단어와 간단한 문장으로 전달하면 브랜드가 대중적인 힘을 얻게 된다는 설명을 보태네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견인하는 기업이 된 K2. 그들의 성장비결은 대중의 기호를 한 발 먼저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기업의 메시지처럼 보다 많은 슈즈 브랜드가 멋이 아닌 착용자의 안전에 기인한 독자적 기술로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하길 바라봅니다.
김정년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