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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로 힙해진 노포와 스승님

출처 : 역전주

“여기 막걸리 한 병이요.”

이제는 어르신들보다 2030대 소비자가 더 많이 외치는 말이죠.

최근 막걸리 시장을 젊게 만든 주역은 ‘신생 양조장’입니다. 2017년 주세법이 개정되며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됐습니다. 역사 깊은 지역별 막걸리가 젊은 층과 만날 기회가 열렸던 때죠.

이제는 신생 양조장도 성장세를 탔습니다. 서울만 봐도 존재감을 뽐내는 신예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을 만나 브랜드가 된 ‘막걸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요즘 막걸리는 뭐가 다를까?

음식은 알고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죠. 바이브랜드에 소개됐던 고성용 한강주조 CEO를 찾아갔습니다. 서울의 숨은 고수들을 만나기 전에 그와 함께 내공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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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주조 양조장_출처 : 바이브랜드

국내 막걸리 시장은 3가지로 나뉩니다. 대규모 지역 협동주조가 첫 번째. 오랫동안 여러 양조장이 통합 운영되며 각 지역의 대표주자가 된 유형입니다. 서울 막걸리, 인천 소성주가 여기에 속합니다. 두 번째는 역사를 지닌 소규모 양조장입니다. 일반 제품보다 2배가량 비싸지만 막걸리 한 병에 지역 문화와 특산물을 담아 마니아층이 두텁습니다.

세 번째는 트렌디함으로 무장한 신생 양조장입니다. 개성 있는 맛과 패키지가 강점입니다. 트렌디한 이미지와 달리 전통 막걸리 제조법을 고수하는 곳이 많습니다. 아스파탐과 같은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막걸리의 생산 과정을 알아볼까요? 첫 단계는 ‘고두밥 짓기’입니다. 쌀을 40~50분 정도 쩌낸 후 10분간 뜸을 들여 만들죠. 고두밥이 완성되면 누룩과 효모, 물을 섞습니다. ‘누룩과 효모’는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촉매제인데요. 곡류가 지닌 전분에서 당류를 분해하는 것이 누룩의 역할입니다. 당류를 건네받은 효모는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재분해하죠. 발효통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메인 사진

출처: 역전주

발효를 마친 원액을 물과 섞으면 막걸리가 탄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트에 진열된 대부분의 제품에는 감미료가 들어갑니다. 전통 방식은 감미료 대신 쌀의 함량을 늘려 단 맛을 잡죠.

요즘 막걸리들을 보면 ‘이양주, 삼양주’란 타이틀이 돋보입니다. 쌀, 물, 발효제(누룩 및 효모)를 섞어 한 번에 만든 술을 ‘단양주’라고 하는데요. 여기에다 쌀을 한 번 더 넣으면 이양주, 두 번 더하면 삼양주가 됩니다. 쉽죠? 반복할수록 원가 상승은 피할 수 없습니다. 신생 양조장의 막걸리가 비싼 이유입니다.

94년 된 노포의 힙한 막걸리

메인 사진_역전주

출처: 역전주

첫 번째 행선지로 마포역 인근에 위치한 ‘역전회관’을 찾아갔습니다. 1929년 전남 순천에서 시작한 94년 역사의 노포입니다. 바싹불고기를 처음 만든 한식집으로도 유명하죠. 뜬금없이 왜 식당 얘기냐고요? 진짜 주인공은 이곳에서 만든 ‘역전주’입니다.

2019년 빚어진 역전주는 2년이 채 안 돼 ‘대한민국 주류대상’ 막걸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신생 브랜드의 수상은 이례적이었죠. 가격은 1병(600ml)에 1만 원, 역전회관 매장에서만 판매합니다.

“엄마 왜 우리는 소주랑 맥주만 팔아?”

역전주는 3대 사장인 김도영 대표와 그의 딸인 4대 신유정 이사의 작품입니다. 신 이사가 우연히 전통주에 빠진 것이 계기였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죠, 딸의 완강함에 못 이겨 김 대표는 전통주를 시험 삼아 판매합니다. 비싼 탓에 손님들이 찾지 않을 거란 예상과 달리 주문량이 많았다고 하네요.

가능성을 확인한 신 이사는 ‘역전회관만의 술을 만들자’고 다짐합니다. 우연히 1대 사장님도 가양주*를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전통주를 향한 도전이 의미 있겠다는 확신이 섰죠.

*가양주: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술

김도영 대표, 신유정 이사, 류담 이사_출처: 역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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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대표와 신유정 이사_출처: 역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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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주를 제조 중인 류담 이사_출처: 역전주

두 사람은 여러 막걸리 교육을 수강하며 양조 경험을 쌓았습니다. 역전주를 완성하는 데 들인 시간만 무려 2년. 역전회관의 기존 메뉴들과 어울리는 맛을 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식당을 적극 활용해 손님들께 꾸준히 피드백을 받고 맛을 개선했습니다. 인터뷰 때 본 신 이사의 노트에는 연구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더군요.

역전주는 삼광쌀에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3개월간 저온숙성해 만든 이양주입니다. 제조부터 숙성까지 약 100일을 거쳐야 하죠. “육체적으로 고단한 작업이지만 완성도를 위해 지켜야 해요(웃음).” 신 이사의 남편이자 역전주 생산을 담당하는 류담 이사의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그 셀럽이 맞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보던 유머러스한 모습과 달리 막걸리를 얘기할 땐 진지한 전문가였습니다.

직접 마셔보니 은은한 발효내와 부드러운 목넘김이 훌륭했습니다. 바싹불고기의 단짠과도 어울릴 만한 맛이었죠.

팬덤 모은 디자인

역전주는 맛으로만 승부하지 않았습니다. 런던의 세계 3대 디자인 학교 ‘세인트마틴 예술학교’를 졸업한 신 이사의 브랜딩 감각도 한몫했죠. 심플한 로고와 선물용으로 손색없는 패키지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이천 도자기 마을에서 막걸리 병을 알아보고 트레이 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역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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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전주

막걸리 트레이

출처: 역전주

준비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한 것도 주효했습니다. 역전주 계정을 보면 브랜드를 기획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를 지켜본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역전주를 마시러 왔고, 매장에서 제품을 처음 접한 이들은 SNS를 보며 브랜드 스토리를 이해했습니다.

30여 석을 포기하고 만든 양조장

신 이사의 브랜딩 감각이 가장 빛을 발한 곳은 ‘양조장’입니다. 역전회관 1층 홀 한 켠에 테이블 30여 석을 없애고 만든 공간이죠. 매장에 퍼진 은은한 쌀 내음의 근원지였습니다. 기자가 들어가 보니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를 하기에도 충분한 면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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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양조장 시공 과정_출처: 역전주

좌석을 없애는 것이 우려됐던 김 대표는 지하에 양조장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신 이사의 집념을 꺾기에는 무리였습니다. 제조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손님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습니다.

“쌀을 찌는 냄새와 양조장 안에 생기는 증기를 느끼며 수제 막걸리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접하기를 바랐어요.”

양조장은 역전회관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부지런히 막걸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역전주를 주문하게 됩니다. 특히 대가족 손님들에게 재밌는 콘텐츠입니다. 양조장 앞에서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막걸리를 설명하는 풍경도 펼쳐집니다.

출처: 역전주·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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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양조장 앞에 선 신유정 이사와 류담 이사_출처: 역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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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에서 제조 중인 역전주_출처: 바이브랜드

역전주는 2030대 소비자들이 역전회관을 찾는 이유가 됐습니다. 사업 초반보다 생산량을 2배 이상 늘렸음에도 주문량을 겨우 따라갈 정도죠. 앞으로도 식당 메뉴들과 어울리는 맛들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시즌별 제철 재료를 넣어 만든 ‘월간 역전주’와 ‘전통주 샘플러’를 연구 중인데요. 향후 자체 막걸리 바를 오픈할 계획도 있다고 합니다.

‘미우새’의 그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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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조장의 서울_출처: 서울양조장

2010년 설립된 ‘한국가양주연구소’는 양조장들의 스승님으로 불립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시 운영되는 전통주 관련 전문 인력 양성 기관입니다.

2017년 이곳에서 만든 ‘서울양조장’이 두 번째 행선지입니다. 최근 예능 프로 ‘미운우리새끼’에서 화제가 된 19만 원짜리 막걸리(서울 골드)를 만든 곳이기도 하죠. 2021년 출시한 ‘서울’이 대표 상품입니다. 김제 찹쌀과 보은 맵쌀로 만든 오양주로 1병(500ml)에 1만 5천 원입니다. 서울양조장과 외부 입점 매장에서만 판매하며 양조장 방문 구매 시 1만 2천 원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서울양조장 내부 및 서울 패키지_출처: 바이브랜드·서울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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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조장 내부_출처: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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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패키지_출처: 서울양조장

교육기관이 갑자기 양조장을 설립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자칫 제품 반응이 좋지 않으면 쌓아 온 명성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깐요.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 소장은 ‘책임감’이란 답을 내놓았습니다.

2016년 정부가 전통주를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도심 양조장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소규모 시설에서 만든 전통주도 판매가 허용됐기 때문이죠. 류 소장은 제도 개선을 위해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애초에 막걸리를 판매할 계획은 없었습니다. 양조장도 2년간 수강생들의 실습 공간으로만 쓰였다고 합니다. 일정 기간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양조장 면허가 취소되는 탓에 서울을 출시했죠.

눈꽃을 닮은 누룩

예전부터 교육 때마다 선보이던 레시피가 기반이 됐습니다. 꾸준히 연구하며 만든 누룩이 포인트. 일반적으로 누룩은 효소를 가진 곰팡이를 곡류에 주입해 만듭니다. 서울양조장의 경우 곡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곰팡이를 쓰죠. 쌀 위에 하얀 곰팡이가 핀 모습이 눈꽃과 닮아 ‘설화곡’이라고 표현합니다. 기자가 느꼈던 우유 같은 질감과 곡물의 맛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하네요.

서울 제품을 토대로 개발한 ‘골드, 스파클링, 핑크’ 라인도 있습니다. 19만 원짜리 골드가 눈에 띄더군요. 5월과 10월에 제조한 최상급 설화곡을 쓰며 물을 타지 않은 순수 막걸리입니다. 전통주에 들어가는 정성을 감안해도 비싼 가격인데요. 누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비난받을 것을 감수하고 만든 상품입니다.

“직접 만든 누룩을 쓰지 않는데 10만 원 대에 판매되는 막걸리들이 있어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고품질 누룩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순서대로 서울 골드, 설화곡_출처: 서울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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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드_출처: 서울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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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곡_출처: 서울양조장

열 때도, 마실 때도 색다르게

잘나가는 양조장들의 공통점일까요? 서울양조장은 맛 외에도 차별화된 패키지를 고민했습니다. ‘크라운캡’이라고 불리는 빨간색 병뚜껑이 그 흔적이죠. 전통 문화를 재현하고자 유리병을 선택한 것과 연결됩니다. 아무래도 플라스틱 뚜껑보다는 병뚜껑이 어울리니깐요.

제대로 마시는 방법도 챙겼습니다. 막걸리를 흔들어서 마시거나 침전물을 제외한 맑은 층만 먹는 경우가 많았죠. 서울양조장은 맑은 술만 먼저 따른 뒤 침전물을 따르기를 제안합니다. 서로 섞이며 구름이 피어나는 듯한 모습은 막걸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먹는 방식을 패키지에 새겨 넣고 인스타그램에 영상으로 공유했습니다. 고객들은 레시피를 알게 됐다며 재밌어했죠.

서울의 크라운캡 및 막걸리를 따르는 과정_출처: 서울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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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크라운캡_출처: 서울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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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따르는 과정_출처: 서울양조장

전통주의 범위를 늘려야 할까요?

인기 양조장들을 만난 김에 시장 이슈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최근 전통주 업계의 ‘형평성 논란’이 화두입니다.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전통주의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죠. 현행법상 1) 국가가 지정한 장인 또는 식품 명인이 만든 술 2) 농민이 해당 지역 농산물로 담근 술 3) 양조장과 인접한 시·군·구의 농산물이 주원료인 술만 전통주로 인정됩니다. 이를테면 역전주와 서울막걸리는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하므로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없습니다.

두 양조장은 무분별하게 범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소규모 양조장에게 ‘판로 개척’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 막걸리는 수입쌀과 나라미(재고미)로 만든 제품과 달리 생산 원가가 높습니다. 판매 가격이 비싸고 소량 생산하므로 유통 채널을 확보하기가 어렵죠.

“산속에 위치한 양조장 중에서도 훌륭한 곳이 많지만 고객과의 접점은 부족해요, 역전주도 역전회관이 없었다면 유통이 어려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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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전주

세부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역전회관은 양조장 인근 지역의 농산물만 허용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말합니다. 국내 먼 지역에서도 고품질의 농산물을 조달할 수 있고 농가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양조장은 관련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역성이 짙은 양조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인근 농가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하네요.

두 브랜드는 신생 양조장일수록 ‘맛’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힙한 패키지, 색감 같은 개성으로만 승부한다면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렵겠죠. 한국의 브랜드 ‘막걸리’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맛과 개성을 갖춘 양조장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이한규

이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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