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면 온전히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그리워집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고향집처럼요. 노력해도 자꾸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은 팍팍한 삶에, 혜원은 ‘집’으로 향했습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시골집에서 농사 짓고 밥 해먹는 이야기’일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은 ‘힐링 무비’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건 다들 혜원처럼 자신을 돌볼 시간과 공간이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숲 근처에 자리 잡은 ‘밑미홈’은 혜원의 고향집 같은 곳입니다. 조용히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성수동엔 소위 말하는 ‘힙한’ 가게들이 많지만 여긴 좀 다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보다는, 오래 머물며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2층엔 ‘밑미밀’(구 ‘위로하는 부엌’)이란 이름의 식사 공간이, 3층엔 리추얼 도구와 시간 이용권을 파는 ‘시간을 파는 상점’이, 4층엔 요가와 명상 수업을 진행하는 ‘들숨날숨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심심한 옥상’이라 명명된 꼭대기는 이용권을 구매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용자들에겐 ‘나를 알아가기 위한 질문 리스트’가 주어지고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출처 : 밑미
밑미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밑미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밑미가 보낸 첫 뉴스레터를 보면 손하빈 밑미 대표가 어떤 마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에어비앤비 마케터 출신인 손 대표는 누구보다 자기 일에 열심이고 일을 좋아했다고 해요.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번아웃’을 겪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 누군가 “네가 진짜 원하는 걸 잘 들여다봐”라고 말해줬다면 칠흑 같은 터널을 지혜롭게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든 게 ‘진짜 나’를 만나는 자아 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입니다.
밑미는 각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공합니다. 주된 프로그램은 리추얼(ritual)입니다.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공하고 커뮤니티를 구성해줍니다.
출처 : 밑미
리추얼이라고 해서 대단하고 특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달리기, 명상, 집 가꾸기, 음악 듣기 등 내가 좋아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사실 어려운 건 꾸준히 시간을 내는 일이죠. 바쁜 와중에 글을 쓰거나 달리기를 하기 위해 매일 단 10분이라도 꾸준히 시간을 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이 리추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사는 거죠.
리추얼을 신청하면 리추얼 메이커(각 리추얼을 진행하는 사람) 안내에 따라 메이트들(리추얼을 신청한 사람)과 함께 리추얼을 수행합니다. 네이버 밴드를 통해 수행 내역을 공유하죠. 진행 중인 온라인 리추얼을 보면 ‘콘텐츠 소비 일기’ ‘다섯 줄 일기X아침 식사’ ‘하루 10분 필사 명상’ ‘1주 12㎞ 달리기’ 등으로 다양합니다.
시간을 판다는 것의 의미
출처 : 밑미
밑미홈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공간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리추얼을 전하고 있지만, 낯선 개념이라 선뜻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은 문턱을 낮춰줄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을 가져보니 좋네?’ ‘나도 한번 꾸준히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도록 시선이 가는 곳들을 구성했습니다.
2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문을 열 때는 ‘위로하는 부엌’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음식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엄마의 밥상에서 착안해 두 명의 어머니가 팝업 식당을 운영했죠. 원래 식당을 운영하시던 분들이 아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 남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라는 결론에 도달해 참여하신 분들입니다. ‘자아 실현’이라는 밑미의 가치와 결이 맞죠.
지금은 ‘밑미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비건 음식을 선보이는 ‘홀썸’과 함께 꾸려가는 공간입니다. 신선한 제철 재료로 만든 브런치와 식물성 재료로 만든 디저트를 선보입니다.
출처 : 밑미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층계 벽에는, 누군가의 리추얼 기록과 오늘 마음이 어떤지 안부를 묻는 글,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라고 토닥여주는 글 등이 붙어있습니다. 그렇게 3층에 가면 ‘시간을 파는 상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리추얼 관련 물건을 팔고, 실제 리추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죠.
명상이나 식물 기르기, 그날 먹은 것 등을 기록할 수 있는 ‘밑미 노트’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차, 연필 등을 판매합니다. 특별한 물건들을 아니지만 옆에 적힌 문구는 제품에 한번 더 눈길이 가게 합니다.
디깅노트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는 시간’, 연필엔 ‘내 맘속 이야기를 꾹꾹 눌러 써보는 시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모든 제품을 '리추얼의 시간'과 연결해 물건보다는 그 물건을 사용할 시간에 더 초점을 맞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심심한 옥상 이용권_출처 : 밑미
자신에게 집중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실제 시간도 팝니다. 카페처럼 꾸며진 ‘심심한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이용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옥상에선 커피와 차를 원하는 대로 즐기며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표현만 달리했을 뿐, 기존 카페나 스터디룸과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밑미홈은 ‘질문 카드’와 ‘이용 가이드’를 통해 다른 공간과의 차별화를 꾀합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생각거리를 던지는 질문지와 어떤 목적으로 밑미홈을 운영하는 지를 적은 안내문을 제공해, 잠시나마 이용자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스마트폰을 비행기모드로 바꾸라고 권장하기도 하고요.
기분 전환을 위해 비행기 표를 사듯, 잠시 세상과 단절할 때 이곳에서 보낼 시간을 구매하는 거죠.
감정의방_출처 : 밑미
처음에 상담실로 운영되던 방은 지금은 ‘감정의 방’과 ‘영감의 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기도 시간을 구매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감정의 방에선 나의 진짜 감정을 찾고 그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구성돼 있습니다. 영감의 방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 그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운드로만 이뤄져 있습니다.
‘리추얼의 방’은 무료로 운영되는데, 밑미의 온라인 리추얼 전시장 같은 공간입니다. 리추얼 메이커들이 어떻게 리추얼을 하고 있는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원형 테이블을 놓아 사람들이 드로잉, 필사 등 사람들이 다양한 리추얼을 직접 진행해보도록 합니다.
4층엔 요가와 명상 수업을 진행하는 ‘들숨날숨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지금은 밑미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020.8
밑미 창업
리추얼 프로그램 운영
2020.10
일상기록 도구
‘밑미노트’ 출시
2021.5
밑미홈 오픈
2021.12
리추얼 시리즈
첫번째 책 출간
2021.12
위로하는 부엌,
‘밑미밀’로 리뉴얼
밑미 창업
리추얼 프로그램 운영
일상기록 도구
‘밑미노트’ 출시
밑미홈 오픈
리추얼 시리즈
첫번째 책 출간
위로하는 부엌,
‘밑미밀’로 리뉴얼
심리적 안전기지 같은 곳
리추얼의 방_출처 : 밑미
밑미홈을 처음 방문한 건 문을 연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밑미홈을 구성하고 운영을 담당하는 김상아 리드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공간을 소개하며 반복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 ‘눈치 보지 않고 머무르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죠. 그러면서 사람들이 밑미홈을 심리적 안전기지로 느꼈으면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저서 <제3의 장소>를 통해 심리적 안전기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제 3의 장소는 개인이 스스로 정기적으로 찾아가 다양한 사람들과 즐겁게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집과 직장(또는 학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 공간을 말합니다. 유럽의 카페나 선술집 등이 제3의 공간 예인데, 이러한 공간에는 5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밑미는 이러한 특징을 공간에 녹여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출처 : 밑미
1. 누구나 원하는 때 드나들 수 있는 문지방이 낮은 곳
2. 격식과 서열이 없이 모두에게 열린 곳
3.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수수하고 소박한 곳
4. 따뜻한 음식으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
5. 대화가 있는 곳
밑미홈은 핫플의 요소들을 갖췄지만, 그런 곳들과는 다른 것이 분명 있는 곳이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콘셉트에 모든 것이 잘 맞춰져 있기 때문이겠죠. 밑미라는 브랜드가 그간 소통하며 쌓아온 것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두 번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밑미홈에서의 경험을 내 일상으로 가져와 적용해본다면 팍팍한 오늘 하루가 조금은 포근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박은애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