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해보신 적 있나요? 여기저기 함께 다닌 추억이 많은 물건이자 공간이라 떠나 보낼 때 아쉬움이 남습니다. 모어댄 최이현 대표도 그랬습니다. 영국 유학 중 타고 다니던 중고차를 사고로 폐차해야 했습니다. 아끼던 차라 서운한 마음에 시트 가죽만 벗겨 집으로 가져 왔습니다. 그걸 본 친구가 “가죽 좋은데? 가방 만들어도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공부하던 그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매립 대신 업사이클링해서 가방을 만들면 어떨까
모어댄 최이현 대표_출처 : 바이브랜드
다음해인 2013년 한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버리는 것들을 가져가준다고 하면 고마워할 것 같은데 정반대였습니다. 소재를 구하기 위해 1년 동안 여러 폐차장을 돌아다녔지만 반기는 곳이 없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자꾸 어슬렁거리자 다들 경계했습니다. 그래도 자주 나타나 얼굴을 비추니 마음을 여는 곳이 생겨 제품을 만들 소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최 대표 앞에는 산이 또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이었죠. 버려진 자동차 시트로 가방을 만들겠다는 새내기 사업가에게 창업 멘토들의 모진 말이 이어졌습니다. “새 것도 안 사는데 쓰레기로 만든 걸 누가 가겠느냐”는 거였죠. 누군가는 “가방 한 개라도 파는지 두고 보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카카오메이커스 설명_출처 : 모어댄
잠재 소비자인 지인들도 뜨뜻미지근했습니다. ‘프라이탁이 있는데 왜 또?’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부정적인 피드백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LG가 TV 만든다고 삼성이 만들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재활용 소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6년, 모어댄이 만든 가방 ‘컨티뉴’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하루에 한 개만 팔아보자고 카카오 메이커스에 제품을 올렸습니다. 웬걸? 사흘 만에 목표 수량인 100개가 모두 팔렸습니다. 준비된 가죽이 부족해 대신 지갑을 만들었는데 하루만에 완판됐습니다.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뒤 1년 여 간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2017년 9월 정식 론칭을 했습니다.
소재, 제작과정, 포장.. .모든 게 친환경
출처 : 모어댄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선 가죽 소재 확보와 가죽을 제대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 고안이 필수적입니다. 초기엔 폐차장을 돌며 가죽을 구해야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대자동차 테슬라 등 폐원단을 제공하는 완성차 업체들이 생겼습니다.
소재를 구한 뒤엔 ‘세척’이란 과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상태가 좋은 가죽 겉면만 잘 닦아내면 가방을 만들 수 있을 거래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시제품을 만들어 지인에게 줬는데 가방을 들고 나갈 때면 주변 사람들이 자꾸 담배 냄새가 난단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수거한 차량 주인이 흡연자라 시트에 담배 냄새가 뱄기 때문이었죠.
시행착오 끝에 가죽을 세척하고 가죽이 갈라지지 않게 말리고 향균 과정을 거치는 세탁 과정을 완성했습니다. 세척 시엔 코코넛 오일과 베이킹소다를 주원료로 자체 개발한 친환경 세제를 사용합니다.
출처 : 모어댄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해 “소재만 재활용했지 만드는 데 환경 더 오염시키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죽을 세척한다고 물을 더 많이 쓰고 오염시키면 그냥 매립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요.
모어댄은 제작 과정까지도 친환경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파주에 물발자국제로, 탄소중립을 달성한 생태공장 ‘컨티뉴 제로투원(Continew ZERO TO ONE)’을 2020년 10월에 열었습니다.
우선 빗물을 모아 가죽을 세척합니다. 사용한 빗물은 여과해 한번 더 사용합니다. 이러한 물 재생시스템을 만드는 데만 1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물을 100% 자체 조달하기 때문에 제품 생산과 폐기 과정에 물발자국제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자연채광을 높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필요한 전기를 자체적으로 충당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생태공장_출처 : SK이노베이션
통상 컨티뉴 가방 하나를 만들면 1642리터의 물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가죽을 확보하기 위해 도축할 필요도 없고요. 국내에서 한 해에 매립되는 자동차 폐기물이 400톤에 이르는데, 모어댄에선 일주일에 5톤 정도씩 새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매장 내부_출처 : 모어댄
제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도 환경을 생각합니다. 컨티뉴 오프라인 매장은 90% 이상 자원을 재사용해 탄생했습니다. 폐교에서 교실 바닥 나무를 가져와 바닥을 만들고, 버려진 벽돌을 깎아 벽면을 완성했습니다. 샹들리에 역시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판매 시엔 100% 재생용지와 친환경 잉크로 만든 박스와 쇼핑백을 사용합니다. 박스 테이프까지도 감자로 만든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
2015
회사설립
2016
카카오메이커에서 첫 제품 출시
2017.9
컨티뉴 정식 론칭
2018.9
합정동 쇼룸 오픈
2020.10
생태공장 오픈
회사설립
카카오메이커에서
첫 제품 출시
컨티뉴 정식 론칭
합정동 쇼룸 오픈
생태공장 오픈
취지만 좋고 디자인은 대충? NO
베를린 패션위크에 참여한 컨티뉴_출처 : SK이노베이션
컨티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못지 않게 신경을 쓰는 게 있다면 ‘디자인’입니다. 브랜드로서 오래 가려면 좋은 취지와 스토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제품력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최 대표는 “재활용 제품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도록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가죽 조각으로 가방을 만들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바느질선은 컨티뉴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덕분에 2019년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FW 2019/2020 베를린 패션위크에 참여해 런웨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제작도 아무 데서나 하지 않습니다. 국내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MCM과 금강제화 공장에서 가죽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임가공비가 다른 곳에 비해 1.7~1.8배 수준이지만 고품질로 접근해야 소비자들에게 통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죽을 이어 만든 컨티뉴 가방엔 바느질 선이 많다_출처 : 바이브랜드
사업 초기 자투리 가죽을 들고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최고 품질의 가방을 만들겠단 기준을 낮추지 않고 계속 두드려 초기부터 컨티뉴가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좋은 가방으로 입소문이 날 수 있었습니다.
제품을 오래 쓰도록 하는 것도 환경을 위한 길이기에 테스트를 철저히 합니다. 신제품이 완성되면 제품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매달아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품질을 확인하는 스윙작업을 거칩니다. 통상 1000시간 스윙 테스트를 한다고 합니다.
버려지는 소재를 가지고 만들면서 업사이클링 제품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최 대표 “재활용 가방이지만 품이 많이 들어간 제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컨티뉴의 목표는 가죽 소재 공급 업체
모어댄은 플라스틱으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해양 생태계를 망치는 폐그물과 폐트병을 수거해 새로운 쓰임을 부여한 것입니다. 앞으로 페트병에서 뽑은 원단 외에도 선인장, 파인애플, 버섯 등 식물성 가죽 소재로 넓혀갈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 가죽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이 목표입니다. 폐 자동차 가죽을 얻는게 쉽지 않다 보니 가방을 만드는 걸로 시작했지만, 향후 가공한 재생 가죽을 패션 브랜드에 팔아 더 큰 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모어댄이 그리는 미래 모습입니다.
박은애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