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진한 소비, 보난자와 리사르
보난자 커피의 다양한 디저트_출처 : 바이브랜드
2022년 가장 핫한 티 브랜드로 떠오른 독일의 보난자 커피와 여유가 깃든 에스프레소 전문점 리사르 커피. 향긋한 이야기를 잔에 담아 봤습니다.
한국인 1인당 연평균 커피 소비량은 약 350잔대로 알려졌습니다. 커피는 문화를 넘어 일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종교시설과 치킨 프랜차이즈를 뛰어넘는 게 카페니까요. 2년 전부터 배달앱을 통한 커피 주문도 활성화됐지만 최근엔 발품을 팔아 차별화된 카페를 방문하는 게 인기입니다. 맛집 탐방과 비슷하죠.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보난자 커피의 베이커리_출처 : 바이브랜드
‘월간커피’의 홍준기 마케팅 차장은 “갈수록 SNS의 활용도가 높아지며 기호에 맞는 카페 찾기가 수월해졌습니다”라며 작은 정보도 공유하는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했습니다. 덧붙여 “몇 년간, 비대면 서비스만 즐긴 이들이 거리 해제로 교외 지역이나 트렌디한 카페를 선호하는 것도 눈여겨볼 것”이라면서 “브랜드를 초월한 콘셉트가 확실한 카페가 어필되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7월 기준,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커피음료점 사업자 수는 약 7만9000곳 입니다. 옥석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지천에 널린 게 카페인 세상입니다.
그의 말처럼 ‘위치와 콘셉트’의 카페 두 곳이 수도권에서 인기몰이 중입니다. 보난자 커피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커피집 25’에 꼽힐 정도로 글로벌한 인지도를 자랑합니다. 지난 4월 서울 중구의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5월엔 광진구 군자동에 2호점을 오픈했습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입니다. 2006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문을 연 뒤로 현지 매장은 현재까지 단 두 곳이거든요.
예기치 않은 행운
“10년 넘게 독일에서 세계인을 사로잡은 서비스와 맛을 국내 소비자에게도 전하고 싶었죠. 개장일에 맞춰 현지 헤드 바리스타와 바리스타 리더, 헤드로스터를 초청해 1~2주간 고객과의 스킨십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보난자 커피 군자점에서 만난 정성윤 헤드로스터는 보난자 커피(이하 보난자)의 론칭 이벤트가 많은 이와 교감을 이뤄냈다고 평가합니다. 출범 당시 보난자는 커피 불모지인 베를린에서 스폐셜티로 천천히 세계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는 보난자 대표 키득(Kiduk)의 힘이 컸습니다.
평일 오전에도 수많은 고객이 방문하는 군자점 보난자 커피_출처 : 바이브랜드
소문난 커피 덕후 키득은 10년 넘게 매장의 원두 머신만 4번이나 바꿀 정도로 티를 향한 애정이 깊었습니다. 특히 세계 농가를 다니며 가격이 높더라도 품질이 월등한 원두라면 기꺼이 손잡았다고 하죠. “농부들은 자유경제의 중심입니다. 비즈니스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고 그 대가는 이곳의 고객에게 맛으로 되돌아옵니다.”
오전 11시,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이가 야외 벤치에서 커피와 식사를 즐길 정도로 내부는 만석이었죠.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난자 2호점이 자리한 이곳은 대형 상권이 자리한 동네가 아닙니다. 많은 브랜드가 강남 및 용산구에 기틀을 잡는 추세니까요.
정성윤 헤드로스터는 웃으며 “원래 (제가)경기도에 보난자 첫 매장을 열자고 했습니다. 대표 입장은 기왕이면 광화문이나 이태원 및 성수동에 문을 열자고 하더군요. 몇 개월간 직원들과 서울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로스터기’가 들어갈 높은 층고의 1층을 찾는 일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보난자 커피의 바리스타들_출처 : 바이브랜드
머지않아 그들의 노력은 보상이 됩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층고도 높고 바로 옆 건물과 연결돼 카페 운영까지 용이한 물건이 떴거든요. 코리아 보난자 직원들은 바로 군자동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이날은 보난자의 운명이 갈린 날로 꼽힙니다. 긴 시간 장소 확보에 난항을 겪은 키득 대표가 ‘서울은 장소 찾기가 여의찮으니 경기도로 가자’라며 공표하려고 한 날이었습니다. 참고로 보난자의 뜻은 예기치 못한 행운입니다. 브랜드 네이밍대로 이뤄진거죠.
당연히 상권 분석은 입주 후 고민거리가 됐지만 오픈하자 마자 퍼진 입소문이 이를 해결합니다. 방문객의 자발적인 바이럴이 이뤄졌죠.
출처 : 바이브랜드
보난자가 매장 크기에 집중한 까닭은 로스터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현지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1963년에 생산된 프로밧(150년이 넘는 역사의 독일 로스터기 회사)의 빈티지 모델이 들어갈 공간은 브랜드의 상징입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에 디지털 기능을 입혀 개조한 뒤 로스터의 손맛과 정교한 기계 공정을 통해 레시피에 어긋나지 않는 커피가 완성됩니다. 정성윤 헤드로스터는 이 기계를 자랑스럽게 어루만지며 ‘클래식 포르쉐를 멋있게 개조한 전기식 자동차’라며 자신감을 어필했습니다.
좋은 것에 대한 집착
보난자의 슬로건은 ‘불필요한 집착, 끝없는 궁금증’입니다. 출범한 지 16년이 흘렀지만 좋은 건 가리지 않고 생기면 무조건 제공한다는 서비스 정신. 보난자 군자점은 다소 애매한(?) 지역에 문을 열었지만 지역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 해외 브랜드 카페가 입점해 기쁘다’며 반겼다고 합니다. 동네의 명소가 된다는 건 지역 사회에선 큰 메리트가 되니까요.
간혹 매체에서 블루보틀과 비교하는 기사에 대한 입장엔 되레 덤덤했죠. “감사할 따름이지만 보난자는 메가 기업이 아닙니다. 소자본으로 어제보다 나은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도와줄 농부를 찾는 데 힘을 쏟죠. 매일 아침 직원끼리 고객에게 선보일 커피를 나눠 마시며 문을 열고 오는 이들에게 최상의 여유를 제공하는 방향성에 집중합니다.”
정성윤 헤드로스터와 이곳의 자랑인 프로밧 빈티지 로스터기_출처 : 바이브랜드
그의 말처럼 보난자 직원들은 고품질 원두에 대한 고집과 친절한 스킨십으로 고객과 함께 ‘GEEK(특정 분야에 열정적인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직원과 손님이 문화의 브랜드가 되는 거죠. 메뉴에 대한 친절도 엿보입니다.
국내 입맛에 맞는 디저트인 마들렌과 식사 대용의 샌드위치를 비롯 브랜드 굿즈 상품으로 친숙함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추후 카페 공간(1~2층)을 활용한 핸드드립 클래스와 고객에게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아주는 콘텐츠도 선보인다고 해요. 언젠가 국내 ‘커피덕후의 성지’가 되길 바라며.
서서 마시는 한 모금
한 때 바쁜 현대인을 위한 서서 먹는 갈비가 유행이었습니다. 커피는 다소 어렵습니다. 양도 많고 앉아서 쉬는 고객 수요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리사르 커피(이하 리사르)는 이 난제를 에스프레소로 해결합니다.
지난 2012년 서울시 성동구의 상왕십리에 문을 연 리사르의 이민섭 대표는 천편일률적인 카페 홍수 속, 경쟁력을 위해 에스프레소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에스프레소만 선보이는 전문점은 아니었죠. 무엇보다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커피의 메인 원료인 에스프레소를 즐기지 않고 고객에게 권하지 않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와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순간을 즐기기 제격인 리사르 커피의 에스프레소_출처 : 바이브랜드
2018년, 이 대표는 중구 약수동으로 매장을 이사하기 전부터 에스프레소를 선보였습니다. 갑자기 뜬 브랜드가 아닌 거죠. 메뉴판에서 아메리카노와 라떼가 사라지자 충성 고객 이탈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기분 나쁘게 매장 문을 닫고 나가는 손님의 뒷 모습을 보며 아쉬움도 컸지만 ‘리사르의 정체성을 잡기 위한 과정’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였죠.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아메리카노 공화국입니다. 다만 에스프레소에 대한 친근감은 다소 떨어집니다. 바리스타와 고객의 교감도 유럽에 비해 부족한 탓도 있고요. 리사르 약수점은 지리적 약점을 고객과의 스킨십과 커피의 질, 가격으로 상쇄합니다.
정성이 초래한 바이럴
맛을 글로 옮기는 건 어렵습니다. 과거 기자는 흑염소 수육에 대하여 ‘입에 넣고 씹어보니 아몬드 향과 수분을 가득 품은 소고기 수육이 입천장을 요동친다’라는 표현으로 간신히 데스크를 통과했습니다. 이날 기자가 리사르 커피에서 맛본 ‘카페 스트라파짜토’는 크레마와 카카오 토핑으로 코팅된 에스프레소로 달달한 첫맛과 쌉쌀한 고급 에스프레소로 가글한듯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었죠.
대중적인 커피 프랜차이즈의 아메리카노에선 경험하기 힘든 또렷한 표현은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1800원. 이 대표는 약수점을 방문 고객을 위해 몇 해 전, 기본 에스프레소 가격을 2000원에서 1500원으로 낮춥니다. 고객 감사에 따른 배려였죠.
평일 점심, 리사르커피 명동점을 이용하는 손님들_출처 : 바이브랜드
“오늘날의 리사르가 있기에 바이럴도 한몫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고요. 초기 약수점을 오픈하며 기본 에스프레소 가격을 내렸습니다. 자발적인 SNS 활동으로 리사르를 널리 알려준 보답이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들을 수 있는 고객의 피드백과 칭찬은 카페 성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SNS를 통한 리사르의 철학과 에스프레소가 인기를 끌자 셀럽들도 찾는 명소가 됩니다.
3시간 동안 1000잔 이상을 팔 정도로 커피 업계의 셀럽이 된 리사르는 강남구 청담동에 2호점을 열고 지난 3월 명동에 문을 엽니다. 청담동은 주요 상권이지만 명동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곳이죠. 재미있는 점은 보난자 커피처럼 이곳도 장소에 대한 마케팅 전략은 없었습니다. 매장 확장 제안 중 명동에 대한 자부심과 전과 다른 콘텐츠를 이식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하며 명동에 3호점을 선보였다고 하네요.
명동 진출의 쾌거
“리사르 3호점은 명동의 메인스트리트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매장 주변의 보도 블록은 유럽과 비슷해요. 평평한 도시의 길과는 사뭇 다르죠. 특히 저녁이나 인파가 없을 때 걷다 보면 설렘마저 느껴지더군요. 마치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온 것처럼(웃음).”
명동이 가진 매력에 일정부분 마음에 끌린 선택이었습니다. 주목할 부분도 있으니 바로 주변인의 인식. 이 대표는 청담동에 2호점을 열 땐 ‘오픈을 축하한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명동만큼은 ‘명동에 진출하는구나’라는 말이 대다수였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태원, 강남역, 신사역 등 카페가 즐비한 상권은 많지만 더 높은 값을 쳐주는 명동의 상징성은 그의 일상에 활력이 됐다고 합니다.
출처 : 리사르 커피 공식 SNS
출처 : 리사르커피 공식 SNS
출처 : 리사르커피 공식 SNS
시류에 편승해 트렌드만 욱여넣은 카페의 생명력은 길지 않습니다. 독일이 지닌 긍정적인 이미지와 현지 스타벅스라고 불리는 메리트에 취하지 않고 더 나은 원두에 대한 욕심으로 레벨업 중인 보난자 커피.
군더더기 없는 커피 본연의 맛과 로스팅에 집중, 에스프레소로 진검승부를 본 리사르 커피.
두 브랜드의 출발과 위치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행위가 차곡차곡 쌓이자 대중이 먼저 소비하는 순수한 전략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객의 사랑을 얻는 건, 순수한 열정 속 스토리가 주는 ‘진정성’이 아닐까요.
유재기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