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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을 향해가는 레고랜드의 계절

출처 : LEGOLAND Korea Resort

지난 5월 강원도 춘천에 문을 연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국내 첫 글로벌 프랜차이즈 테마파크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큰 레고랜드입니다. 레고는 디즈니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비해 테마파크 분야에서 영향력은 덜할지라도 이 둘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팬덤이 있습니다. 유적지를 포함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레고랜드가 10년 넘게 강원도의 숙원 사업이었던 이유죠. 100주년을 맞은 어린이날, 화려하게 시작을 알렸던 레고랜드는 여전히 축복일까요?

잔잔한 호수에 이는 파동

롯데월드(호텔롯데)는 테마파크를 막대한 자본과 전문화된 인력이 요구되는 산업으로 정의합니다. 공간 구축에 소요되는 초기 비용부터 추가적인 시설물 도입과 서비스 및 시설물 운영에 필요한 인력 교육·훈련 때문이죠. 삼성물산 또한 에버랜드가 포함된 리조트 부문을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장치 산업’으로 규정합니다.

경기 변동과 계절 변화에 민감하기도 합니다. 삶에 필수적인 소비가 아닌 야외 여가 생활은 날씨 영향을 받을 수밖에요. 불확실성이 큰 만큼 감수할 리스크도 적지 않기에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입니다. 오랜 시간 롯데월드와 에버랜드의 양강 구도가 굳건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 LEGO Korea

롯데월드와 에버랜드는 TEA와 AECOM*이 집계하는 세계 테마파크 20위 안에 들 만큼 경쟁력을 갖춘 곳이지만 스토리텔링이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캐릭터와 세계관 등 강력한 콘텐츠에 기반한 글로벌 프랜차이즈 테마파크에 비하면 말이죠.

많은 이들이 ‘코리아 패싱’을 일삼던 글로벌 프랜차이즈 테마파크를 애타게 기다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로컬 테마파크를 제외하더라도 디즈니랜드 리조트, 유니버설 스튜디오, 레고랜드가 다 모여 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레고랜드는 빅 네임의 참전이 없었던 국내 테마파크 산업에 긴장감을 주며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요,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테마파크 산업 육성을 위해 설립된 국제 비영리 협회 TEA(Themed Entertainment Association)와 컨설팅 업체 AECOM은 매년 세계 테마파크 순위를 발표합니다.

Winter is coming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지난 2014년 부지로 예정된 춘천시 중도 지역에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 유적이 발굴돼 개발이 중단됐었잖아요. 지연된 만큼 공사 비용도 늘어났습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채권을 발행해 추가 자금을 조달했고 강원도는 이에 대한 보증을 섰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지난 9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기 전까지는요.

자금시장은 이를 지자체의 채무불이행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자체 채권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습니다. 김 지사는 보증한 채무를 갚겠다고 말을 바꿨지만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국 어음부도율은 0.2%로 2개월째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완판’ 행진을 이어가던 우량채들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고요. 현재 정부는 50조 원 이상의 유동성을 지원하며 대처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이에 기자는 춘천시에 향후 레고랜드의 거취를 물어봤습니다. 한 관계자는 ‘‘이곳을 담당하는 TF팀이 없어져 담당자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세계적으로 동절기 휴장에 들어간 것도 내부적으론 들은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덧붙여 ‘‘주변(레고랜드)에 상권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도시의 발전이) 안타깝다’’라는 말과 현재 쟁점 중인 춘천시와 레고랜드의 연계성을 묻는 질문엔 시종일관 ‘본인’이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아쉬운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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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코리아 파크맵_출처 : LEGOLAND Korea Resort

개장 7개월을 맞이한 이곳은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강원도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월 말 기준 레고랜드 누적 방문자 수는 70만 명 수준. 당초 연간 200만 명이 찾을 것이라는 추정치의 반 토막에 불과합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비해 접근성이 좋지 않습니다. 스파크랜드를 건설한 이동경 도원투자개발 회장은 “지역 외곽에 위치한 테마파크를 이용하려면 하루를 몽땅 써야 한다”며 도심 한가운데 놀이공원을 세웠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물리적 접근성은 여타 여가시설과 마찬가지로 테마파크 흥행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테니까요. 서울 청량리역에서 춘천역까지 경춘선으로 이동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춘천역에서 레고랜드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지만 그 텀은 45분. 직접 운전해서 가더라도 불편함은 여전합니다. 입장권이 있어도 주차요금이 비싸거든요. 4시간 이상 종일 주차비는 1만 2000원으로 ‘주차비 갑질’ 논란이 일자 1만 8000원에서 인하한 겁니다.

최고 속력 56km/h에 불과한 '드래곤코스터', 핀란드 대표 캐릭터 무민을 활용한 테마파크 ‘무민월드’_출처 : LEGOLAND Korea Resort, Moomi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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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속력 56km/h에 불과한 '드래곤코스터'_출처 : LEGOLAND Korea Res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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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대표 캐릭터 무민을 활용한 테마파크 ‘무민월드’_출처 : Moomin World

본사 지침에 따라 만 2~12세 어린이에만 쏠린 구성에도 불만이 나옵니다. 성인 자유이용권(6만 원)은 롯데월드(6만 2000원)나 에버랜드(5만 8000원)와 비슷하지만 성인도 즐길만한 스릴있는 어트랙션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게다가 개장 후 외부에 알려진 ‘멈춤 사고’만 여섯 차례로 안전에 대한 불안 요소도 있고요.

레고랜드 호텔의 유일한 수영장 ‘워터 플레이’도 수심 60cm로 설계되어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열약한 환경입니다. 어린이들만 레고를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1박에 50만 원을 넘는 숙박비를 지불한 보호자를 위한 놀 거리도 풍성했으면 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지역 상권 활성화에 대한 기대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문화시설이 열악했던 곳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서면서 핀란드 ‘난탈리’에 버금가는 춘천을 기대했을 텐데 말이죠. 난탈리는 핀란드 남부의 작은 항구 도시로 ‘무민월드’라는 테마파크가 세워진 이후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한 곳입니다.

레고랜드는 내년 1월부터 동절기 휴장에 들어갑니다. 레고랜드는 겨울철 낮은 기온에선 놀이기구 운영이 어렵다고 설명하며 운영 시스템에 따른 조치라고 말합니다. 장기 휴장에 따른 단기 계약직의 대규모 실직도 우려되는 가운데 연간 이용권 구매자들의 불만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절대적 아름다움은 모두에게 어필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USJ)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 개장한 첫 번째 테마파크입니다. 지난해 USJ의 방문객 수는 약 550만 명. 유니버셜 스튜디오 테마파크 중 가장 높은 수치이자 전 세계 테마파크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입장객 수입니다. 참고로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미국과 일본의 디즈니랜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1년 개장한 USJ가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와 이국적 풍경의 애매한 조화로 오픈 1년 만에 매출 하락을 기록했었거든요. 줄곧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던 이곳이 디즈니랜드의 대항마로 떠오른 데는 기존의 것에서 벗어난 시도가 주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_출처 : Universal Studios Japan

2010년 USJ에 합류해 테마파크를 회생시킨 모리오카 츠요시 전(前) CMO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대척점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모리오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일본 동쪽엔 디즈니랜드, 서쪽엔 유니버설 스튜디오’라는 대립 구도 때문에 USJ가 도쿄 디즈니랜드에 대한 필요 이상의 경쟁의식을 보여줬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차별성이 아닌 보다 대중적인 것에 집중한 이유였습니다. 두 테마파크의 거리는 500km가 넘기 때문에 입장객의 대부분은 해당 지역 주민이라는 판단에서였죠.

변화의 핵심은 일본인을 위한 팔릴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몬스터 헌터와 바이오하자드와 같은 게임과 관련된 이벤트, 이전보다 판을 키운 원피스 프리미어 쇼, 아이돌 그룹 AKB48 라이브 공연 등 대중문화 전반으로 범위를 넓혔죠. 이러한 변화가 없었다면 USJ의 킬러 콘텐츠, 위저딩 월드 오브 해리 포터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해 USJ는 게임 마리오의 세계관으로 완성된 슈퍼 닌텐도 월드를 테마파크에 추가했고 여름부터 일본 만화 주술회전에 기반한 어트랙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중성을 통한 경쟁력 확보. 특정 대상을 노리고 경쟁자와 다른 차별성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브랜딩의 상식과 반대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세계 최대 마케팅 연구 기관, 에렌버그-배스 마케팅 과학 연구소 바이런 샤프 소장도 같은 생각이거든요.

그는 자신의 저서 ‘브랜딩의 과학’을 통해 브랜드는 소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광범위한 도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고전적인 브랜딩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략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브랜드들의 사용자 기반은 비슷하기에 충성 고객과 같은 일부분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소량 혹은 간헐적 구매자에게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이죠. 그들의 머릿속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기억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브랜딩의 핵심이라며.

슈퍼 닌텐도 월드, 주술회전_출처 : Universal Studios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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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닌텐도 월드_출처 : Universal Studios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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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회전_출처 : Universal Studios Japan

테마파크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일상적 경험을 통해 판타지를 선사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레고랜드의 IP 파워는 강력합니다. 레고는 월트 디즈니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콘텐츠만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매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만큼 호환성도 뛰어날뿐더러 브릭 구매층도 다양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테마파크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게다가 큰 부지에 레고 분위기만 입힌 레고랜드가 테마파크를 찾는 이들의 머릿속에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판다기 보다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팔릴만한 것으로 재가공하고, 일부 계층에 집중된 시선도 넓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의 첫 번째 글로벌 프랜차이즈 테마파크가 성공해야 새로운 테마파크도 찾아올 테니까요. 무엇보다 훌륭한 횟감을 가지고 매운탕만 끓이면 너무 아깝잖아요.

제작 이순민·조지윤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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