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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연대기 : 컵볶이에서 킹볶이까지

서울 충정로 철길떡볶이_출처 : 바이브랜드

양념을 버무린 떡에 부재료를 넣고 바짝 졸이니 죽고 싶어도 먹고 싶을 만큼 맛이 근사하더라. 떡볶이를 향한 두 기자의 비장한 각오. 최근 유력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떡볶이 패권이 엎치락뒤치락 순위가 바뀌고 있습니다. 최고의 국민 간식답게 세력의 흥망을 기록해야겠지요.

‘마복림’과 분식강호

현대 떡볶이는 양념을 중시하는 한식의 문법을 통해 발전하죠. 최초의 떡볶이 브랜드는 ‘신당동 마복림’ 떡볶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6년 2월 7일 동아일보 지면기사_출처 : 동아디지털아카이브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서 노점상으로 시작한 마복림 할머니는 고추장과 춘장을 배합한 비법양념으로 떡가래와 야채를 볶아 팔기 시작했어요. 떡을 씹을수록 달착지근해지는 고추장 떡볶이 특유의 맛은 신당동을 떡볶이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동네 맛집이 브랜드가 된 전형적 사례로 꼽힙니다.

비단 신당동 골목의 이슈는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손맛 좋은 전국 분식집 사장님의 성실한 노력이 학교 근처에서 빛을 내기 시작해요. 1990년 대 후반 가정 내 동전을 쓸어 모으며 말이죠. 비로소 떡볶이는 20세기를 풍미한 국민간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깔끔한 프랜차이즈가 좋아

2000년 대를 대표하는 사회 현상 중 하나인 웰빙 열풍은 떡볶이 시장을 흔듭니다. 학교 앞, 분식집의 식자재 품질, 길거리 노점이 챙기지 못한 위생 상태가 도마 위에 오르죠. 국가의 손길이 미친 것도 업계 변화를 부추겼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농림수산식품부가 한식 세계화를 명분으로 떡볶이 육성사업에 나섰거든요. 전문 프랜차이즈가 신흥 강자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출처 : 바이브랜드

1999년 대구에서 시작한 ‘신전떡볶이’가 대표적입니다. 쿨피스 없으면 참기 힘들 정도로 맵싸한 밀떡볶이와 볶음김치와 치즈로 속을 채운 김밥이 특징이죠. 고유 양념에 로제 소스를 결합해 배달음식 유행에 가담하는 등 트렌드를 선점하는 브랜드입니다. 주목할 점은 가맹점주를 겨냥한 전략. 2013년부터 매달 양념 위생검사 성적을 발표하며 본사가 떡볶이 맛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홍대 인근 떡볶이 노점상_출처 : 동아디지털아카이브

이외에도 단맛으로 큰 사랑 얻은 아딸과 국대떡볶이 등 전문점이 속속 등장했지만 떡볶이는 여전히 거리의 음식이었습니다. 2012년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점상 떡볶이보다 전문점 떡볶이가 낫다는 응답은 겨우 38.6%에 그쳤습니다. 전문점 떡볶이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42.3%나 됐죠. 배달-프랜차이즈 중심으로 변모한 요즘 떡볶이 판의 분위기와 참 다르지요.

엽떡 몇 단계 가능?

출처 : 바이브랜드

주요떡볶이매장
떡볶이

출처 : 바이브랜드

2015년에 이르러 떡볶이 시장 지형이 바뀝니다. 매장 수로 국내 1위를 찍은 죠스떡볶이를 비롯한 선두권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수가 줄어들었죠. 반면 강렬한 매운맛이 특징인 신전떡볶이, 동대문엽기떡볶이(이하 엽떡)가 세력을 확장합니다. 현재까지도 떡볶이 양대 산맥이라 불릴 정도죠.

한때 주 1회 엽떡은 필수였다는 김민아(회사원. 26세) 씨는 “오리지널 맛을 먹으면 혀가 얼얼해도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며 “맵지만, 자꾸 손이 가는 중독성이 있다”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는 “매운맛은 통각인데 인체는 통증을 이기게끔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을 내뿜는다. 시간이 지나면 통각은 사라지고 도파민의 효과만 남아 본능적으로 매운맛에 끌린다”고 설명합니다.

화끈하게 매운 떡볶이는 혜성처럼 등장한 게 아닙니다. 신전과 엽떡도 각각 1999년, 2002년 설립된 전통 전문점 떡볶이죠. 매운맛은 왜 뒤늦게 대중을 사로잡았을까요? 안병익 식신 대표는 “2010년대 중반은 정치·문화적으로 사회가 복잡해지며 매운맛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맵부심’이 유행처럼 퍼졌던 시기”라며 “소비 주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는 학업, 취업 등 스트레스로 인해 매운맛 음식을 찾게 됐다”고 분석합니다.

매운 떡볶이에 도전하는 영상이 인기를 얻었다_출처 : 유튜브 채널 ‘문복희’
떡볶이와 어울리는 토핑을 추천해주는 콘텐츠_출처 : 유튜브 채널 ‘떡볶퀸’

엽떡 유튜브

매운 떡볶이에 도전하는 영상이 인기를 얻었다_출처 : 유튜브 채널 ‘문복희’

신전떡볶이 유튜브

떡볶이와 어울리는 토핑을 추천해주는 콘텐츠_출처 : 유튜브 채널 ‘떡볶퀸’

그 인기를 유튜브가 거듭니다. 유튜브 검색란에 ‘엽떡’을 입력하면 조회 수 1000만 회가 넘는 영상이 9개 나옵니다. 매운 떡볶이가 먹방 유튜버 사이에서 유행하며 핫도그, 치킨 등과 함께 덜 맵게 먹는 꿀조합이 군침을 부릅니다.

전문점 떡볶이들도 이에 지지 않고 자체적으로 치즈, 튀김, 고기 등 각종 토핑 및 사이드 메뉴를 추가하고 있죠. 예컨대 엽떡에선 주먹밥, 신전에선 튀김오뎅이 필수가 됐죠. 마치 치킨과 피자의 사이드 메뉴로 자리 잡은 치즈볼, 스파게티처럼요. 떡볶이가 간식을 넘어 ‘요리’로서 입지를 다져간 배경입니다.

떡볶이 값 = 스테이크 값

전문점 떡볶이 전성시대의 일등공신으로 ‘배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배달 앱 성장과 함께 팬데믹 기간이 맞물려 최근 3년간 배달음식 수요가 대폭 늘었거든요. 떡볶이도 자연스레 배달 시장에 편입됐죠. 2020년 서울시가 조사한 코로나19 시대 ‘나를 위로하는 음식'으로 떡볶이가 1위에 선정될 정도입니다. 안 대표는 “식사 대용으로 훌륭한 떡볶이는 전 연령대에서 사랑받는 메뉴로 배달이 늘었다”면서 “건강을 생각하다 보니 기름기 많은 중식 보다는 떡볶이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같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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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이브랜드

배달 시장에서 떡볶이 세력은 강건합니다. 배떡 등 배달 전문 매장도 생겨났습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발행한 ‘배민트렌드 2022’에 따르면 떡볶이는 전 연령대 주문 수 5위 안에 꼽혔습니다. 심지어 10대는 매운 떡볶이, 치즈 떡볶이, 떡볶이 세 가지 모두를 순위에 올렸죠. 우아한형제들이 2019년 이래 3년 연속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를 개최하는 데 이유가 있는 셈이죠.

아쉽게도 떡볶이는 분식으로 분류돼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습니다. 분식 시장 추이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뿐이죠. 프랜차이즈파트너스에 따르면 분식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018년 7813개에서 2020년 1만 619개로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주식빼고 다 오릅니다.

고객 입장에선 마냥 좋은 일은 아닙니다. 배달 앱에서 배달가능 최소금액은 보통 1만 5000원 선입니다. 떡볶이도 예외는 아니죠 최소 2-3인분을 주문하고 각종 토핑을 추가해야만 겨우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출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기자는 한 브랜드의 떡볶이 세트를 주문했고 가격에 놀랐습니다. B세트(주먹밥)에 당면, 치즈 사리를 추가하고 배달비까지 더하니 2만 9000원(3인)이 나오더라고요. 최근 대두되고 있는 배달 음식 불매 운동에 수긍이 갑니다. 서민 음식에서 한 발 멀어진 걸까요?

미식과 괴식 사이

기자는 최근 배달 앱에서 ‘로제 소곱창 떡볶이’를 주문했습니다. 랭킹 상위권에 머무르는 신흥 프랜차이즈였죠. 맛에 대한 실망이 컸습니다. 로제소스와 소곱창 모두 느끼한 데다 맛을 잡아주는 디테일이 없었습니다. 떡과 곱창이 따로 노는 맛이었죠. ‘인기 식재료만 끌어 쓰면 다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흥행 배우만 줄줄이 출연한다고 천만 영화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디렉팅의 부재가 전해지는 아쉬운 한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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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주문한 배달떡볶이 메뉴_출처 : 바이브랜드

떡볶이 신(scene)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소곱창과 양대창을 집어넣는 브랜드도 인기랍니다. 크림과 로제 심지어 민트 초콜릿까지 쓰고 있죠. ‘주객이 전도된 떡볶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라는 의문. 이런 떡볶이는 SNS 인증용 괴식을 야기합니다. 떡볶이의 미래를 어떻게 점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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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철길 떡볶이_출처 : 바이브랜드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시 중구 충정로의 ‘철길 떡볶이’. “맛의 8할은 양념이다.”라는 사장님은 최근 가업을 전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차세대부터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길 바란다는군요. 이런 유서 깊은 매장도 프랜차이즈화를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죠.

출처 : 바이브랜드 / 동아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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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_이진석기자_2011년10월18일사회면_2

출처 : 바이브랜드 / 동아디지털아카이브​

트렌드에 영합한 반짝 메뉴나 로컬 노포가 당연하다는 듯 프랜차이즈화 되고 있습니다. 특정 브랜드의 맛이 널리 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소곱창이 인기라서 떡볶이에 넣는 게 아니라 소곱창이 떡볶이와 조화로운 맛을 내는 게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본질이 아닐까요.

‘괴식과 미식 사이’ 소신을 제시하는 브랜드를 기다립니다. 합리적인 가격과 기발한 맛으로 떡볶이 시장을 제패할.

제작 조지윤 김정년 그래픽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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