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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아세요? 연남동&익선동

숲길을 따라 상권이 형성된 연남동(좌)과 한옥 문화가 특징인 익선동(우)_출처 : 바이브랜드

현대식 단독 주택이 즐비한 연남동과 한옥의 정취가 묻어나는 익선동. 풍경만 보면 상이하지만 두 상권 사이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역사적 유산이 오늘날 골목의 부흥기를 이끌었다는 건데요. 단순히 거대 자본의 유입에서 발현된 인기가 아닌 세월의 흔적을 중심으로 켜켜이 쌓여 온 콘텐츠의 힘입니다.

브랜드가 된 연남동과 익선동의 이야기, 상권별 힙플레이스도 준비했으니 마음껏 즐겨주세요.

잠자는 숲 속의 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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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연남동 상권_출처 : 바이브랜드

“예전엔 동진시장이 전부였죠.” 상인들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까지 매주 플리마켓이 열리는 동진시장이 유명했을 뿐 대중에겐 연남동이란 지역명조차 생소했다고 합니다. 경의선 숲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분포된 연남동은 1973년 서대문구의 연희동 일부가 마포구로 편입되면서 신설됐습니다. 연희동에서 분리된 남쪽 지역이란 뜻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몇 안 되는 마포구 상권 중 하나였죠. ‘리틀 차이나’라고 불릴 정도로 유난히 중국 음식점이 많은 까닭도 1970년 서울의 차이나타운이 강제 철거되며 집값이 저렴한 동네를 찾던 화교 이주민들이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2011년 홍대입구역 공항철도가 개통되며 역세권이 됐음에도 상권은 활기를 띠지 않았습니다. 10년 전부터 연남동에서 활동한 어느 상인은 “구역마다 계 모임이 활성화될 정도로 다가구 주택이 지배적이었다”고 회상합니다.

1) 연남동 인근의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라인, 2) 산책로가 마련된 경의선 숲길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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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인근의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라인_출처 : 바이브랜드

연남동 숲길

산책로가 마련된 경의선 숲길_출처 : 바이브랜드

2015년 서울시가 연남동을 가로지르던 경의선 철길의 일부를 숲길로 조성하며 동네의 전성기가 도래합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모양새가 흡사해 연트럴파크로 불리기 시작했죠.

공실이던 주택에 맛집과 카페가 들어서며 하이브리드 상업 시설로 변모합니다. 연남동의 어느 10년 차 셰프는 “주택과 카페가 결합한 비주얼이 화제가 되며 하나의 업태로 자리매김했다”고 전합니다. 이색 콘텐츠는 홍대 젊음의 거리 속 프랜차이즈에 지친 30대를 사로잡기에도 주효했습니다. 실제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당시 연남동의 유동 인구 중 30대 비율(23.6%)이 가장 높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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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에선 단독 주택과 카페가 결합된 업태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_출처 : 바이브랜드

몽중식

: 그곳엔 양조위(?)가 숨쉰다

몽중식 내부 인테리어 및 메뉴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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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가 이야기를 전하는 몽중식의 내부 구조_출처 : 몽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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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작품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메뉴 구성_출처 : 몽중식

오픈 4년 차 몽중식은 연남동 중국집들 사이에선 업력이 짧지만 가장 이색적인 미식을 선사합니다. 스토리텔러에게 중국 영화의 줄거리를 들으며 각 장면의 어울리는 메뉴를 맛볼 수 있거든요. 몽중식을 창업하기 전부터 연남동에서 요식업을 펼친 정소진 대표가 경의선 숲길 개장 후 이색 맛집이 늘어나던 상권의 변화를 포착한 것이 계기였죠. “말레이시아와 태국 음식점이 들어서던 시기였어요, 지금이라면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죠.”

작가와 디자이너 및 셰프가 합심해 두 달마다 작품부터 메뉴와 식기까지 전면 교체합니다. 대표 흥행 테마는 중경삼림. 주인공 양조위의 여자친구가 애용하던 비행기 모형을 전시하고 메뉴판도 여권처럼 제작했습니다.

젊은 손님들이 고전작품을 그리워하는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기도 합니다. 런치 및 디너에 따라 총 4가지 파트로 운영, 메뉴 수가 가장 많은 디너 마지막 코스(9만 3천 원)의 경우 최소 두 달 전에 예약해야 웨이팅을 면할 수 있다고요. 12월 15일 뮤지컬 공연장 샤롯데씨어터에 신규점 몽드살롱이 오픈한다고 하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네요.

헬로인디북스

: 연남동 1세대 책방지기

헬로인디북스의 외관 및 여러 종류의 책으로 큐레이션된 내부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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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인디북스 외관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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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으로 큐레이션된 헬로인디북스 내부_출처 : 바이브랜드

독립서점 명소가 된 연남동에서 헬로인디북스는 1세대 주자로 유명합니다. 이보람 헬로인디북스 대표에 따르면 2014년 오픈 당시엔 현재 매장 인근의 카페들이 모두 주택가였습니다. 임대료가 저렴해 자본금이 넉넉하지 않은 독립서점에겐 최적이므로 여러 매장이 입점할 수 있었다고요. 홍대 인근의 인쇄소와 출판사들이 연남동으로 이전하며 독립책방 거리가 형성됐다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았죠.

10년 가까이 매장을 영위한 비결 역시 임대료를 꼽습니다. 종종 적자도 발생하지만 임대료가 인상되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는 현실적인 답변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인기 장르는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입체적인 종이 모형이 나타나는 팝업북이라고 합니다. 한산한 틈을 타 잠시 매장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새로운 도서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주말보단 평일에 방문해야 여유롭게 헬로인디북스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파인드파운드

: 잠시 취향 찾고 가세요

감각적인 큐레이션으로 구성된 파인드파운드 내부_출처 : 파인드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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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큐레이션을 자랑하는 파인드파운드_출처 : 파인드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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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드파운드에 진열된 제품들_출처 : 파인드파운드

골목마다 개성을 뽐내려는 창작자들의 편집숍도 늘었습니다. 2021년에 오픈한 파인드파운드는 패션 업계에서 10년 동안 쌓아 온 김도영 대표의 감각적인 큐레이션을 자랑합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1.3만 명을 구가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실용적이면서 이야기가 담긴 제품들로 취향을 찾는 재미를 선물하겠다고 하네요. 파인드파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용적인 아름다움’. 진열대마다 부착된 안내판과 운영자의 가이드를 통해 상품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입점 브랜드와 팝업 코너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파트너사에게 어울리는 오브제를 더해 색다른 공간을 연출하죠.

일본으로부터 지켜낸 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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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사이 좁은 골목으로 구성된 익선동 상권_출처 : 바이브랜드

“많은 조선인이 북촌에 살길 희망한다”며 익선동 개발에 나선 건축업자 정세권은 약 2500평의 누동궁 터를 매입한 뒤 ‘익선동 조선인 마을 건립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전통 한옥을 15평 미만의 도시형 한옥 주택으로 개량, 조선인 서민들이 모여 살 수 있게 했죠. 일본으로부터 지켜낸 상징적인 곳이지만 2004년부터 약 10년간 재개발 계획이 무산됐던 터라 종로구의 슬럼으로 잔류하고 맙니다.

2010년대 중반 청년 사업가들이 등장하며 변곡점을 맞습니다. 도시 기획 스타트업 익선다다는 종로구의 아픈 손가락을 일평균 약 2천 명의 유동 인구 수를 기록하는 핫플레이스로 탈바꿈시켰죠. 2015년부터 익선동에 선보인 브랜드만 약 60여 개. 인사동·북촌과는 차별화를 둔 한옥만의 특징을 살려 ‘뉴 아날로그’를 선포했는데요. 한옥의 기본 보와 서까래를 유지하고 타일 벽 등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상업적인 관점에서 골목을 채우기보다 익선거리가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죠.

한옥으로 이뤄진 익선동 거리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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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위에서 바라본 한옥 밀집 구역, 익선동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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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으로 이뤄진 익선동 거리_출처 : 바이브랜드

2018년 익선동이 한옥보전지구로 지정되며 상쾌한 바람이 붑니다. 최고 층수를 5층으로 제한하고 한옥 수리 비용을 1억 8천만 원까지 지원해 청년 창업가들의 상상이 현실이 됐거든요. 프랜차이즈의 입점을 제한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도 기여했고요. 유현준 건축가(홍익대 교수)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1층 건물이 유지돼 하늘을 볼 수 있고 잠시만 걸어도 구경 거리가 바뀌는 점을 이곳의 부흥 요소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카페 식물

: 공백의 미를 노린 한 잔

전통 자개 테이블과 현대식 소파로 구성된 카페 식물 내부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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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개 테이블과 현대식 소파로 구성된 카페 식물 내부_출처 :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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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개 테이블과 현대식 소파로 구성된 카페 식물 내부_출처 : 바이브랜드

“Amazing!” 익선동을 방문한 외국인도 감탄합니다. 종로 3가라는 서울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한옥마을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죠. 이런 곳에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식물’은 익선동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카페입니다. 무려 100년 된 벽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시간을 먹고 자라는 익선동, 식물’이라고 적혀 있죠.

천진호 카페 식물 대표는 “너무 오래된 것만 있으면 불편해요, 손님들이 편안했으면 좋겠거든요”라고 전합니다. 식물에서 옛 소품과 현대식 가구를 한데 모아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빈티지한 요소만 가득하면 불편할 수 있어 간간이 세련된 요소를 대입합니다. 카페가 하나의 식음료 매장을 넘어 여러 세대가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게 식물의 방향성입니다.

메뉴도 재밌습니다. ‘소년’, ‘소녀’라는 음료인데요. 처음 온 손님들이 옛 소품들을 발견하며 마치 ‘할머니 집’에 있던 가구를 떠올린다는 감수성에서 출발한 메뉴라고 합니다. 여기서 팁, 한적한 시간대에 방문하면 재밌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는 것.

루프스테이션

: 영수증 말고 다른 걸 드릴게요

1) 익선동 한옥 거리에 위치한 루프스테이션 익선, 2) 루프스테이션 익선에서 전시 중인 디올 팝업스토어_출처 : ⓒKyungsub Shin, 바이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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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한옥 거리에 위치한 루프스테이션 익선_출처 : ⓒKyungsub Shin

모자이크 완료 사진.

루프스테이션 익선에서 전시 중인 디올 팝업스토어_출처 : 바이브랜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익선동 상권의 약 62%가 외식업입니다.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네오벨류는 F&B의 활성화만으로는 지역의 활기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루프스테이션 익선을 선보였습니다. ‘리테일을 위한 작은 실험실’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대기업의 브랜드부터 수익성은 낮더라도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콘텐츠까지 선보였거든요. 상품을 판매하진 않지만 다양한 브랜드와 문화에 대한 경험을 소비할 수 있는 창구로 만든 거죠.

이를테면 12월 한 달간 디올 뷰티의 ‘꿈의 아틀리에’ 팝업 스토어가 진행됩니다. 익선동에선 경험하지 못할 것 같은 명품 브랜드의 매력을 향유하는 거죠. 이외에도 ‘디즈니 플러스, 롯데리아, LG전자’까지 대입하며 결과값에 따라 변하는 함수처럼 루프스테이션은 다채로운 색을 뽐냅니다.

서울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O리단길. 상권이 급격히 활성화되면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만 몰리는 천편일률적인 변화가 적용될 때도 있습니다. 공간 기획 브랜드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는 “상권이 톤앤매너를 유지하며 성장하려면 시간을 가지고 자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팔리는 상품들의 복제성을 띤 동네밖에 될 수 없다고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연남동과 익선동이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최 대표의 말마따나 앞으로도 시간을 가진 성장이 필요할겁니다.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보기 전에 우선 즐겨보자고요.

제작 이한규·강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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