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었습니다! 그 다음은요?
‘혁신’이 안 쓰이는 곳이 없습니다. 웬만한 새로운 시도는 모두 혁신으로 포장되는 가운데 정말 눈을 번쩍이게 하는 기업은 드문데요. 묵은 관습을 완전히 바꾼다는 혁신의 속뜻에 꼭 맞는 곳을 찾았습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도 수기로만 관리되던 음식물 폐기물 시장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끈 리코(Reco)입니다.
쓰레기, 어디까지 갔나?
수거된 용기는 고온, 고압으로 세척 후 돌려보내 청결을 유지합니다_출처 : 리코
520만 톤(t). 국내에서 1년 동안 쏟아지는 음식물 폐기량입니다. 연간 처리 비용이 8000억 원 규모의 시장인데도 소규모 영세 업체만 존재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었죠. 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해 상황이 낫습니다.
사업자들은 민간 처리 업체와 별도 계약을 맺는데 불투명성이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습니다. 배출량 무게나 수거 용기 수량에 따라 비용을 산정하는데 일단 수거 용기 규격이 제각각입니다. 프로세스도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다 보니 신뢰도도 떨어졌습니다. 폐기물이 불법 매립지로 갔다고 해도 알 방법이 없었죠.
폐기물 관리 스타트업 리코는 여기에 주목합니다. 배출부터 처리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통합관리 솔루션 ‘업박스’를 개발했죠. 먼저, 내부에 눈금이 적힌 규격화된 용기를 제공합니다. 배출량을 직접 확인할 수도 있고 수거 기사가 사진을 찍어 애플리케이션(앱)에 공유합니다. 전용 소프트웨어인 ‘업박스 클라우드’에서는 월별 배출량 증감은 물론 비용, 환경 개선 지수, 처리 과정까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업박스 앱을 통해 관련 데이터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_출처 : 리코
‘쓰레기 박사’로 정통한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이를 두고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비용을 청구해 폐기물 감량을 유도한다”면서 “기존에 전무하던 사업장별 음식물 폐기량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각 업장이 시계열 자료를 확보하면서 판매 전략을 세우는 게 용이해진다는 것이죠.
수거된 폐기물은 GPS가 탑재된 차량에 실려 처리장으로 옮겨집니다. 실시간으로 동선을 추적할 수 있어서 쓰레기 처리업자로 위장한 불법 매립자 때문에 골머리 앓던 기업들이 반겼죠. 평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믿을 만한 재활용 처리장도 계속해서 발굴해 갑니다. 현재 제휴를 맺은 곳은 20개. 배출자와 수거자, 처리자 간 정보 불균형을 줄이고 파트너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으로 도약한 모양새입니다.
지난 2020년 3월 업박스 출시 이후 현재까지 누적 기업 수 2500여 개를 돌파했습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와 같은 외식 사업자부터 식품공장, 기업형 급식 시설 등이 주 고객층인데요. 그간 폐기물 시장의 갈증을 여실히 보여주네요.
환경과 효율을 한 손에
출처 : 리코
업박스의 누적 수집 운반량은 약 3만 3582톤(2022년 1월 기준)으로 감축한 온실가스는 1만 3625MtCO2E(이산화탄소 환산 톤)입니다.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손을 내미는 기업이 늘고 있는데요. 이미지 개선을 위한 ‘무늬만’ 협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솔루션을 함께 개발해가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GS리테일이 슈퍼마켓 GS더프레시와 신선 먹거리 전용 공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퇴비로 만든 것이 대표적이죠. 거래처 농장에 무상 공급한 후 수확한 농작물을 다시 제품화해서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리코는 이를 계기로 신세계푸드, CJ푸드빌 등 대기업 고객사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죠.
음식물 폐기물로 시작했지만 올해 폐지, 폐합성수지 등 폐기물 23종에 대한 수집·운반 허가도 추가로 획득했습니다. 이제 쿠팡 등 물류기업부터 호텔, 복합시설까지 고객 범위로 넓혀가죠.
AI 물류업체 파스토와 제휴를 맺고 물류센터 내 전용 분리 배출장을 구축했습니다_출처 : 리코
이때도 음식물과 똑같은 솔루션을 적용합니다. 사진을 찍어 공유해 어떤 종류의 폐기물이 얼마만큼 배출된지 보여준 후 각각 최적의 재활용처로 운반하죠. 음식물처럼 단일종이 아니라 다양한 폐기물이 나오는 사업장에는 별도의 분리배출장인 업박스 스테이션도 함께 설치합니다.
기업이 업박스를 도입하는 이유는 친환경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김근호 리코 대표는 데이터를 통해 폐기량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급식 시설을 예로 들어볼까요. 일 식수량과 그에 따른 폐기물 배출량을 분석하면 메뉴와 인원에 따른 잔반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배급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배출량 절감을 위해 식단을 새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죠. 실제 업박스를 이용하는 사업자들의 처리 비용이 이전 대비 평균 15%는 줄었다고 하니 효과는 톡톡합니다.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12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2018.10
법인 설립
2019.01
파일럿 프로그램 론칭
2020.03
업박스 정식 론칭
2021.12
시리즈B 투자 유치
2022.09
업박스 이용 고객 2,000개 돌파
법인 설립
파일럿 프로그램 론칭
업박스 정식 론칭
시리즈B 투자 유치
업박스 이용 고객 2,000개 돌파
‘잘’ 쓰는 것보다 ‘덜’ 써야만
김근호 리코 대표_출처 : 리코
리코의 창업자인 김근호 대표는 원래 미국에서 주식 옵션 트레이더로 일했습니다. 병역 해결을 위해 귀국했는데 미국 거리와는 달리 폐기물 처리 브랜드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죠. 디지털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시장인 폐기물 시장,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2018년 10월 리코를 설립한 후 이듬해 3월 코엑스로부터 첫 수주를 따냅니다. 1년 동안은 기존 업체들과 같은 방식으로 음식물을 수거했습니다. 인력도 없어 김 대표가 직접 일손을 돕기도 했죠. 100군데 식당을 돌아다니며 하루 약 10톤 수준을 처리했습니다. 현장 경험을 통해 업장마다 악취나 비용 등으로 고민한다는 점을 포착하고 솔루션을 고안한 끝에 업박스 앱을 출시합니다. 목표는 명확합니다. 배출된 폐기물을 제대로 된 사용처로 전달해 ‘자원’이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죠.
수거한 모든 음식물은 퇴비, 사료, 바이오가스로 재활용합니다_출처 : 리코
음식물 폐기물의 자원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2005년 이래 시도 단위 지역 음식물류폐기물 직매립 금지를 시행하며 퇴비, 사료 등으로 재활용률이 100%에 이르지만 정작 수요가 없기 때문인데요. 홍 소장은 “가축 분뇨 퇴비에 비해 품질이 낮지만 음식물 폐기물을 조리 전/후를 분리해서 모을 수 있으면 고품질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사업장별로 음식물을 따로 수거하는 업박스가 음식물 폐기물 퇴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효율적인 재활용과 새활용(업사이클링)에 대한 기대가 높은 요즘, 김 대표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잘’ 활용하는 방법에 앞서 쓰레기 발생량 자체를 줄여가야 한다는 지적인데요. 낭비되는 자원을 최소화하겠다는 리코의 다짐이 퇴색되지 않게, 당장 오늘부터 쌀 한 톨도 안 남기로 박박 긁어먹어야겠습니다. 함께 해주실 거죠?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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