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은 때론 특정 집단을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이 됩니다. 기능에 충실한 신발은 다수의 지지를 얻어 시장의 주류가 되고, 신발에 담긴 특정 디테일은 다수가 추구하는 멋과 감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죠. 1966년, 캘리포니아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진 패션 브랜드가 탄생합니다. 스트리트 컬처의 아이콘, 스케이트보드화를 넘어 전 세계인의 운동화가 된 반스는 어떻게 세계를 휩쓴 스니커즈가 됐을까요? 알록달록 보드화의 절대강자, 반스 일대기를 소개합니다.
1966년 미국 캘리포니아, 신발회사 ‘랜디스(Randy’s)’에 다녔던 폴 반 도렌은 창업을 결심합니다. 실무 경험을 쌓으며 신발장사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죠. 당시 신발은 봉제가 잘 뜯어져 신발이 금방 망가지는 단점이 있었는데요. 폴은 제품 디자인 철학을 튼튼한 신발에 맞추기로 결정합니다.
반스? 당시 나온 운동화 중 최고였어요
출처 : VANS
폴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고무밑창 차별화였습니다. 와플 모양으로 구멍을 판 반스 운동화의 고무밑창은 당시에 나온 신발과 비교하면 두 가지가 뛰어났습니다. 미끄럼을 막아주는 접지력, 발에 전해지는 충격 흡수력이 뛰어났죠.
여기에 일반 캔버스 천보다 촘촘하고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덕 캔버스(Duck Canvas)’를 사용해 찢어짐 현상이 덜한 신발을 고안합니다. 단순히 ‘튼튼한 신발’에 그쳤던 반스 운동화에 브랜드로 인식되는 계기를 만든 건 창립자가 아닌 손님들이었는데요.
출처 : VANS
반스의 흥행은 미국 캘리포니아 청소년들이 사랑한 스케이트 보딩에서 시작됩니다. 반스의 고무밑창 운동화가 스케이트보더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거죠.
와플 모양의 고무밑창은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기 좋았고, 질긴 캔버스천은 길바닥에서 나뒹구는 스케이트보더의 격렬한 움직임을 견디며 찢어짐을 그럭저럭 잘 막아줬습니다. 반스만한 가성비 신발이 없다는 인식 아래, 보더들은 열띤 호응을 보냈고 반스는 어느새 스케이트보드를 상징하는 슈즈 브랜드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1966
폴 반 도렌 반스창립,
스타일44(어센틱) 모델 출시
1977
재즈 스프라이트 디자인 적용,
올드스쿨 모델 출시
1984
파산신청, 4년 후 채무상환완료
2000
포브스 선정,
‘아메리카 베스트 스몰 컴퍼니’
2020
VF 코퍼레이션 반스인수
폴 반 도렌 반스창립,
스타일44(어센틱) 모델 출시
재즈 스프라이트 디자인 적용
올드스쿨 모델 출시
파산신청, 4년 후 채무상환완료
포브스 선정
‘아메리카 베스트 스몰 컴퍼니’
VF 코퍼레이션 반스인수
스케이트 문화가 성장하면, 브랜드도 쑥쑥 자란다
출처 : VANS
태평양 연안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캘리포니아, 1950년대 들어 나무판에 바퀴를 달아 도로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서핑용 보드에 비하면 운반도 편하고 만들기도 쉬웠던 스케이트보드는 캘리포니아 청소년 사이에서 대유행합니다.
하지만 도로 한복판에 끼어드는 데다 바퀴에서 굉음을 만드는 스케이트 보더는 공공질서를 해치는 문제아로 낙인찍혔죠. 기성세대는 스케이트보딩을 질타했고, 마니아들은 이에 반발하는 자기만의 문화를 꾸려나갑니다. 이른바 스트리트 컬처의 탄생을 알렸죠.
출처 : VANS
반스는 스니커즈 유행 이면에 있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브랜드였습니다. 창립자 폴의 아들 스티브는 이를 잘 간파한 반스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캘리포니아의 작은 회사를 쑥쑥 키워나갔죠.
스티브는 프로선수를 후원하고, 보더들에게 반스 신발을 제공하는 등,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팬덤을 다지기 시작합니다. 1978년, 발목 부상을 방지하는 보더 전용 에디션, 스케이트하이(Sk8-Hi)를 출시하는 등 제품을 통해 진심을 드러내기도 했죠.
파산선언과 리브랜딩
반스의 창립자 폴 반 도렌(Paul Van Doren)_출처 : VANS
80년대부터 승승장구하던 반스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가족기업 특유의 리스크인 엇갈린 의사결정 때문이었죠. 창립자 폴은 동생인 제임스와도 함께 사업을 했는데요. 제임스는 브랜드 유지 보수에 힘썼던 형과 달리 브랜드 확장에 열을 올렸습니다. 제임스가 노린 목표는 스포츠 업계의 메가브랜드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반스는 농구,야구,러닝 등 타 스포츠 신발제조까지 손을 뻗고 마는데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고 맙니다.
스케이트 보드화 매출은 순조로웠지만, 안타깝게도 반스가 새롭게 뛰어든 타 스포츠 분야에서의 흥행은 저조했습니다. 확장된 생산기반은 악성재고를 대량발생시켰고, 이는 회사 채무를 빠르게 늘렸습니다. 결국 1984년 반스는 파산선언을 하게 되죠.
반스 X 베이프 협업 에디션_출처 : VANS
일선에서 물러났던 폴이 다시 경영에 나서며 사태수습에 나섭니다. 파산 당시 반스는 제품 퀄리티 향상에 쓰이는 비용을 제외하고 회사의 모든 재원을 축소하게 됩니다. 비인기 제품 생산 중단, 전 직원 임금 동결 등 3년간 갖은 노력 끝에 회사가 진 빚을 털어내는데 성공했죠. 당시 반스가 청산한 빚은 1000만 달러(약 199억 8000만 원)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쓴 맛을 본 반스는 스트리트컬처와 스케이트보딩이라는 브랜드의 지지기반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먼저 브랜드를 격렬하며 활동적인 액션 스포츠 분야에 특화 시켰죠. 스노우보딩을 위한 전용 부츠라인을 출시했고, 보더를 위한 비디오를 만드는 등 액션 스포츠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며 리브랜딩을 마칩니다. 이 당시 정립된 반스의 브랜드 정체성은 지금까지 굳건하게 이어지고 있죠.
너의 자유와 개성을 응원해!
출처 : VANS
이렇게 반스가 반세기 내내 일관된 행동을 드러내며 얻은 독보적인 브랜드 이미지는 자유로움과 개성존중이라는 단어로 모이고 있습니다. 미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컬렉션으로 그 가치를 지켜내고 있는데요. 그 중 눈에 띄는 건 ‘커스텀 컬처 콘테스트(Custom Culture Contest)’입니다. 자유와 개성이란 브랜드 핵심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반스의 메가 이벤트죠.
해마다 미국 내 1000여 고등학교가 참여하는 미술대회인데요.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반스 신발을 수령해 나만의 감수성을 드러내는 커스터마이징 스니커즈를 제작합니다.
출처 : VANS
1등을 차지한 학교는 상금 5만 달러(약 5990만 원)를 얻게 됩니다. TOP 5에 든 학교는 반스의 후원에 힘입어 유명 아티스트의 멘토링 수업을 제공받죠. 또 대회에 참가한 졸업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반스는 이렇게 신제품 출시뿐만 아니라 반세기 가량 지속해온 브랜드 정체성에 부합하는 참여형 이벤트를 열고, 핵심 고객과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며 브랜드 가치에 ‘ONLY’라는 이미지를 더하고 있습니다.
김정년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