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MD 속 반전매력, 엔제리너스 반미
엔제리너스 반미 샌드위치 _출처 : 롯데GRS
노력 끝에 흥행시킨 킬러 콘텐츠는 브랜드를 기사회생시킵니다. 엔제리너스의 반미처럼요.
“오늘 점심은 반미(Bánh mì) 샌드위치 먹을까요? 이번 주는 반값이래요.” 지난 8월, 마감이 분주했던 바이브랜드 팀은 점심을 엔제리너스에서 해결합니다. 1주일 간 바게트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가 4000원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반값 프로모션이라니.
레디? or 오더?
‘… 나 반미 샌드위치(이하 반미) 좋아했네!’
기분 좋은 온기가 남아있는 바게트 특유의 씹는 맛과 빵의 풍미마저 훌륭합니다. 소스와 내용물이 고소한 빵과 어우러져 만족스러운 한 끼를 마칠 수 있었죠. 평소 샌드위치에 진심이던 기자는 여기서 중요한 디테일을 발견합니다. 바로 오븐의 존재인데요. 엔제리너스 반미는 주문 후 쿠킹을 시작, 오븐을 활용한 가열조리작업을 거치더군요.
유튜브 웹예능 네고왕2에 등장한 엔제리너스 반미 샌드위치 _출처 : 달라스튜디오
프랜차이즈 카페 샌드위치는 ‘레디 메이드(선제조)’가 상식입니다. 유통-조리가 간편한 냉장제품이 주류죠. 오븐을 구비해도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작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옵션선택이 많은 메뉴는 회전율이 떨어지고 수익향상에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요. 엔제리너스는 이례적으로 ‘오더 메이드(후제조)’를 선보입니다. 뜨끈한 샌드위치는 직영/가맹점까지 시스템을 혁신하지 않으면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메뉴였죠.
‘전매장 오븐 설치’ 라는 카페 인프라를 활용한 기획 MD는 엔제리너스의 네임벨류를 한 층 올립니다. 서울 독산동 롯데 GRS 본사에서 반미 기획자를 만나 엔제리너스의 묘수를 들었습니다.
한국 입맛은 역시 불고기
반미는 쌀가루를 섞은 프랑스식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향신 채소나 고기를 넣어 탄생한 베트남 퓨전요리죠. 정해진 공식이 없어 무한한 조합이 가능합니다. 대중적이면서도 맛있다고 느낄 조합을 찾아내는 게 선결과제였다는데요. 엔제리너스 상품개발팀은 전국의 식재료를 혼합한 레시피 디자인에 나섰습니다.
“베트남 대표 샌드위치라는 이국적인 콘셉트는 갖고 왔지만 맛 설계는 쉽지 않았어요. 꽁치나 고등어 같은 해산물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닭발이나 돼지껍데기 등의 재료를 조합했죠.” 엔제리너스 반미의 어머니로 불리는 상품개발2팀 김이슬 대리는 콘셉트(Concept)와 프로덕트(Product)의 조화가 상품개발팀의 숙제였다고 설명합니다.
판매량 1위, 오리지널 불고기 반미
판매량 2위, 에그 마요 반미
판매량 3위, 훈제 베이컨 에그 반미
출처 : 롯데 GRS
판매량 1위, 오리지널 불고기 반미
판매량 2위, 에그 마요 반미
판매량 3위, 훈제 베이컨 에그 반미
출처 : 롯데 GRS
그중 ‘오리지널 불고기’와 ‘에그 마요’는 내부 평가에서 맛과 대중성을 사로잡은 메뉴로 채택되며 정규 메뉴로 출시 됐는데요. 이 메뉴는 엔제리너스 매출 데이터 기준으로 반미 판매량의 50%를 견인하는 인기 제품이라는군요.
상품 최적화를 마치니 ‘운영 최적화’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릅니다. 요리 전문가가 포진한 상품개발팀과 달리 현장에서는 요리에 익숙지 않은 직원도 있으니까요. 가맹/직영점에서 번거롭지 않게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설계합니다. 핵심은 제조과정 매뉴얼화였는데요. ‘전자레인지 사용 절대 금지’, ‘오븐 이용 시 쿠킹 시간 2분 고정’ 같은 원칙을 전 매장에 전파했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수분이 증발해 빵과 속재료가 상하는 등 오히려 맛을 해친다는 겁니다. 차라리 오븐 쿠킹 후 차게 식은 반미를 먹는 게 낫다는 것이죠.
엔제리너스는 베이커리 메뉴를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_출처 : 롯데 GRS
일부 매장에서 번거로움을 호소했지만 사업팀의 후방지원으로 갈등은 해소됩니다. 예컨대 불편사항이 접수되면 담당직원이 전국 매장을 돌아다닙니다. 전자레인지와 오븐의 조리를 통해 확연하게 다른 차이를 현장에서 시연하는데요. 반미 퀄리티 중요성을 강조하며 비교 시식을 거치면 퀄리티 차이를 깨닫고 매뉴얼 준수에 적극 협조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본사 차원의 노력과 현장 인력의 적응을 거치며 반미는 꾸준히 안정적인 제품 퀄리티를 유지했는데요.
2020년 4월부터 출시된 반미 샌드위치는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50만 개를 돌파하며 효자상품으로 등극했습니다. 반미 흥행에 힘입어 주력 상품인 커피 매출도 늘릴 수 있었죠. 카페 업계에서 고전하던 엔제리너스는 반미라는 킬러 콘텐츠를 통해 반등을 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과제가 남았습니다. 바로 커피.
천사다방의 숨 고르기
2022년 엔제리너스 전국 매장수는 약 440개입니다. 2014년 927개로 정점을 찍었던 전성기에 비하면 점포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죠. 저가형 커피 프랜차이즈의 성장과 블루보틀같은 해외 커피 전문점의 직영점 운영은 앤제리너스의 반등을 어렵게 만드는데요. 이들이 어떤 부활 전략을 고민하는지 물었습니다. 옛 감성을 지녔지만 MZ세대에겐 어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자는 엔제리너스에게 부산역광장2호점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이곳은 기자의 부산출장 거점으로 2010년대 엔제리너스의 BI 로고나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가맹점인데요. 본사와 달리 매장 내 BI 혁신이 더딜 수밖에 없는 파트너를 어떻게 설득시키고 있는지 물었죠.
1) 홍대L7점의 실내 인테리어
2)BI교체를 반영한 롯데월드몰B1점 모습
출처 : 롯데 GRS
홍대L7점의 실내 인테리어_출처 : 롯데 GRS
BI교체를 반영한 롯데월드몰B1점 모습_출처 : 롯데 GRS
커피사업팀 김용석 팀장은 올해가 엔제리너스의 과도기라 전합니다. 점포 확장보다 내실을 기하는 시기라는 겁니다. 본사 직영점을 중심으로 특화매장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주력상품의 품질 강화에 힘쓰는 상황이란 설명입니다. 특히 본사 직영점이 가맹점이 따라갈 만한 모델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데요. 북유럽 휘게 디자인을 적용해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갖춘 홍대 L7 직영점이나 지역 핵심상권에 본사직영으로 입점시킨 신규점포가 차세대 리노베이션의 예시라는군요.
본사 직영 리노베이션 스토어가 가맹점주의 본보기가 되며 사업팀은 본사가 제시하는 새로운 변화를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점포 전환의 연착륙을 돕는데 힘쓰는 상황이라고 전하네요.
MD 강화가 살 길
“대중의 선호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퀄리티를 높이고 있어요. 예컨대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카페에서 아이스 음료를 많이 마셔요. 커피 맛은 너티한 견과류 향미를 선호하죠. 이런 수요를 고려해 품질관리가 되는 MD를 꾸준히 내면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엔제리너스 본사 담당자들은 ‘상품(MD)퀄리티 향상’이 최선의 브랜딩이라 강조합니다. 카페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카페라는 F&B 공간에서 나올 수 있는 콘셉트는 다 나왔다는 것이죠. 카페라는 공간에서 먹고 마시고 담소 나누는 일을 특별하게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내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리노베이션 점포의 고객 만족도가 45%가량 높게 나온다는군요.
유튜브 웹예능 <네고왕2>에 등장한 엔제리너스 반미 샌드위치 _출처 : 달라스튜디오
엔제리너스는 유튜브 웹 예능 <네고왕>을 통해서 중요한 피드백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모은 댓글과 감상평을 모니터링했을 때 본사에서는 ‘커피 맛이 좋아졌다’는 소비자 평가에 실무자들이 크게 기뻐했다고 전하네요. 느리더라도 우직하게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것이죠. 반미 신제품을 귀띔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차세대 라이프 스타일을 콘셉트로 잡고 프로덕트 퀄리티를 올린 시즌별 제품을 출시하겠다”라고 응답하는 엔제리너스였습니다. 잘하면 계절마다 전에 없던 반미를 즐길 수 있겠네요.
대구 수성못 아일랜드점 1층 내부_출처 : 롯데 GRS
로컬, 비건 등 사회적 가치 콘셉트의 MD도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대체육을 활용한 맛있는 반미를 연구하는 것이죠. 하나 더. 아메리치노(에스프레소 거품을 얹은 커피음료)같은 기존 시그니처 인기메뉴를 트렌디하게 재해석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기대감을 높였죠.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커피 시장에 반미라는 구원 투수를 기용한 롯데 엔제리너스의 드라마. 우선 오늘 저녁 반미 한 번 더 베어먹으며 생각해 보겠습니다.
김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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