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문구 회사들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동안 파버카스텔은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모두가 사양산업이라고 말하는 업종에서 200년이 넘게 버틸 수 있는 비결은 혁신입니다. ‘연필에 무슨 혁신이 있어?’ 싶을 겁니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 중 많은 게 파버카스텔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들은 혁신과 지속가능한 경영을 통해 계속 연필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파버카스텔의 역사=연필의 역사
출처 : 파버카스텔
“이 연필은 딱 알맞은 굵기에 목공용 연필보다 부드럽고 질이 좋아. 검은색이 아름답고 특히 큰 그림을 그릴 때 아주 좋더라고. 이 연필은 부드러운 삼나무를 사용하고 겉은 짙은 녹색으로 칠했는데 하나에 20센트야.”
1883년 빈센트 반 고흐가 친구이자 스승인 네덜란드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여기 묘사된 연필이 바로 파버카스텔 제품입니다. 반 고흐 뿐만 아니라 시인 괴테,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팰트, 노벨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 등 시대를 뛰어넘어 유명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처음 연필이 탄생한 건 1761년입니다. 캐비닛 제조업자였던 카스파르 파버(Kaspar Faber)는 넓적하고 얇은 나무 막대 두 개 사이에 흑연심을 끼워넣어 연필을 만들었습니다.
오틀리에 파버와 알렉산더 카스텔_출처 : 파버카스텔
4번째 회장인 로타르 폰 파버(Lothar von Faber)는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연필 형태를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뉴욕과 파리를 중심으로 세계 진출 발판을 마련하며 회사를 성장시키기도 했고요.
세계 최초 연필 브랜드 ‘파버’가 ‘파버카스텔’이 된 건 결혼의 영향입니다. 1898년, 파버 가문의 장녀 오틀리에는 독일의 또 다른 귀족 가문 출신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하우젠 (Alexander Castell-Rüdenhausen)과 혼인을 합니다.오틸리에 조부인 로타 폰 파버는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선 회사명은 물론 ‘파버’라는 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에 당시 왕의 승인 아래 두 가문의 성이 합쳐진 ‘폰 파버 카스텔’이란 새로운 귀족 가문이 탄생했습니다. 사명도 이때부터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익숙한 육각형 연필_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파버카스텔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비결은 한마디로 ‘차별화’입니다. 불편을 개선하고, 이 과정에서 실용적이면서도 의미있는 디자인적인 차별화 요소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디테일이지만, 이를 가장 먼저 착안한 회사로서 오리지널리티를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육각 형태와 굵기, 농도 표준화입니다.
연필이 둥글다면 어떨까요? 필기를 하다 잠시 내려놓을 때마다 책상 위를 구르다 바닥으로 낙하하고 말겁니다. 떨어지기만 하면 다행이죠. 연필심이 부러지면 다시 뾰족하게 깎아야 합니다.
대부분은 ‘불편하다’고 넘어갔지만, 파버카스텔은 육각형 몸체를 고안해냈습니다. 필기구가 굴러다니는 걸 방지할 뿐 아니라, 연필을 쉽게 돌려가며 쓸 수 있기 때문에 연필심 한 부분만 무뎌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손의 피로감도 덜 수 있고요.
파버카스텔의 8대 회장이 수성잉크 무해성 증명을 위해 잉크를 마시는 모습_출처: 파버카스텔
연필의 표준 규격 결정에도 파버카스텔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4B연필, 필기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HB연필. 여기서 사용되는 4B, HB, H 등의 구분은 연필의 경도(굳기)와 농도(진하기)를 기준으로 파버카스텔이 고안한 분류법입니다. 이전에는 연필심의 굳기와 진하기 모두 제각각이어서 소비자가 자신의 선호에 맞는 연필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소비자의 불편을 인지한 파버카스텔은 단단함을 나타내는 H(Hard)와 짙음(Black)을 나타내는 B를 조합해 총 18단계로 연필심의 종류를 나눴습니다. 높은 숫자의 H심은 더 단단하지만 흐리게 쓰이고, 높은 숫자의 B심은 더 무르나 진하게 쓰인다는 기준을 만든 거죠. 덕분에 소비자들은 자신의 기호나 상황에 맞게 연필을 골라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외에도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연필의 앞부분에 오돌토돌한 돌기를 넣고, 어린이용 제품에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사용하고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은 나무를 사용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소비자와 시대의 요구를 관찰을 통해서 정확히 읽어내고 제품에 반영하며 장수기업으로서 지속 성장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1761년
카스파르 파버
연필 공장 설립
1839년
A.W.Faber 상표등록.
필기구 최초 브랜드화
1898년
두 가문 결합으로
‘파버-카스텔’ 탄생
1905년
Castell 9000 첫 생산
1978년
메이크업용 펜슬 제작
1980년대
브라질 산림 재조성
프로젝트
카스파르 파버
연필 공장 설립
A.W.Faber 상표등록.
필기구 최초 브랜드화
두 가문 결합으로
‘파버-카스텔’ 탄생
Castell 9000 첫 생산
메이크업용 펜슬 제작
브라질 산림 재조성
프로젝트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
출처 : 파버카스텔
가족경영은 후손에 경영권만 물려주는 게 아닙니다. 브랜드의 전통과 가치가 이어지도록 책임을 지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음 세대까지 명맥이 유지되기 위해선 독자적 성장이 아닌, 사회와 함께 커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합니다.
근로자를 위해 만든 제도에서 이러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파버카스텔은 노동자 보호 개념이 희박했던 1840년대 직원들을 위한 사내 건강보험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연금제도도 도입했고, 임직원 자녀를 위한 유치원도 운영했습니다. 직원이 행복해야 함께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에 조성한 숲_출처 : 파버카스텔
80년대 들어선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 사바나 황무지 1만 헥타르를 사들여 숲을 조성했습니다. 여의도의 30배가 넘는 규모인데요, 생산하는 필기구의 약 80%가 여기서 자란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이 숲은 목재 수급의 역할과 더불어 멸종 위기 동물들의 안락한 서식지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노력 덕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시키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UNFCC(유엔기후변화협약)의 인증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파버카스텔의 생각은 안톤 볼프강 폰 파버카스텔 백작이 남긴 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업가로서 절대로 미래 세대의 비용을 사용하여 이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박은애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