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술과 함께 성장하는 주류 구독 서비스
‘술’은 각자에게 제각각 다른 그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누군가에게는 갓 20살이 되자마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던 순간을, 누군가에게는 고즈넉한 바에 앉아 혼자 코냑을 마시던 때를 떠올리게 하죠. 비 오는 날, 빗소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날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요즈음 술 좀(!) 마신다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공유하고 있을 기억 한 조각이 있습니다. 홈술에 대한 기억이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바깥에서 마시기도 겁나고, 거리 두기 제약으로 오래 있을 수도 없어서 집에서 혼자 또 같이 마시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식품의약안전처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주류 소비·섭취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음주 장소가 바뀌었다는 응답은 전체의 36.2%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집은 92.9%(중복응답), 지인의 집은 62.9%로 집계됐죠.
커져가는 홈술 문화를 등에 업고, 국내 주류 정기구독 시장도 활황입니다. 집 앞까지 배송해 주는 편리함은 물론이고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술을 맞춤 추천하고, 평소 접하기 어려운 독특한 술까지 알려줘 홈술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죠.
당신의 소울 와인을 찾아드려요
와인은 여전히 고급 취미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제 일상에 한발 더 가까워졌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11월 와인 수입액은 5억 617만달러(약 6065억 4400만원)로 전년 동기보다 76% 늘어났습니다. 홈술족이 늘어난 영향도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와인 정보가 널리 퍼지면서 와인 문화가 대중화된 것도 한몫했습니다.
출처 : 퍼플독
그럼에도 여전히 와인을 낯설고 어렵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퍼플독(Purpledong)은 그런 이들에게도 당신의 인생 와인을 찾아준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퍼플독은 2018년 국내에서 처음 와인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스타트업입니다. 퍼플(purple)은 고귀함, 독(dog)은 집사라는 뜻으로 고귀한 고객을 위해 와인을 정성껏 추천해 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죠.
고객들은 월 3만9000원(옐로 등급)부터 100만원(블랙 등급)까지 원하는 멤버십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멤버십에 따라 와인의 가격대가 달라지죠. 저렴한 멤버십이라고 해도 퍼플독은 자체적으로 구축한 인공지능(AI)으로 고객의 취향에 맞춰 와인을 추천합니다. 먼저, 처음 구독한 고객의 와인 취향을 알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보디감, 산미, 타닌(tannin) 정도부터 선호하거나 싫어하는 포도 품종도 고르고, 싫어하는 향도 걸러내고 나면 취향의 윤곽이 잡힙니다. 물론 취향 설문조사만으로는 완벽한 ‘내 취향’의 와인을 찾아내기는 어렵죠. 추천받은 와인을 마신 뒤 피드백을 통해 취향을 정교화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출처 : 퍼플독
출처 : 퍼플독
퍼플독은 취향의 와인을 찾아주는 데서 끝내지 않습니다. 와인과 함께 정보가 담긴 책자를 배송하고, QR코드를 통해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게 했죠. 와인을 눈, 코, 입으로 마시는 것에다가 더해 ‘알고’ 마실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책자에는 와인의 원산지부터 역사, 맛의 지표 등을 소개하면서 왜 이 와인을 보냈는지를 함께 설명합니다. 오디오 도슨트를 통해서는 와인 셀렉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취향을 섬세하게 다듬어주는 것을 넘어 지적 욕구까지 채워준 덕분일까요. 퍼플독의 구독 유지율은 94%에 달합니다.
K-술을 마셔보셨나요?
우리나라 주류 구독 서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통주 구독 서비스입니다. 소주, 맥주, 위스키 등 일반적인 술은 법률상 온라인 판매가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단, 정부가 2017년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해 전통주는 예외적으로 통신 판매를 허가했습니다. 미술관, 우리술한잔 등 많은 전통주 구독 서비스가 생겨난 이유죠.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는 대면 결제 후 배송, 혹은 비대면 결제 후 대면 배송 등의 방식으로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퍼플독
출처 : 술담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통주 구독 시장을 만들어간 곳은 ‘술담화’입니다. 술담화는 2018년 문을 열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약주, 청주, 증류주, 탁주 등 다양한 전통주를 ‘담화마켓’을 통해 직접 구입할 수도 있지만, 술담화의 핵심은 ‘담화박스’입니다. 담화박스는 약주, 청주, 증류주 등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를 큐레이션 해서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전통주는 소주, 맥주 등과 달리 시중에서 쉽게 만날 수 없어 낯설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술담화는 ‘복날에 치킨과 먹기 좋은’, ‘청량한 여름을 담은’ 등 친숙한 주제로 매월 2~4병의 전통주를 선별합니다. 전통주 종류가 2000개가 넘는 만큼 다양한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담화박스는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배송되는데, 배송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술이 올지 알 수 없습니다. 단, 산미, 단맛, 바디감, 씁쓸 등 맛의 지표를 힌트로 제공합니다. 구독료는 월 3만9000원입니다. 담화박스에는 큐레이션 카드가 포함됩니다. 카드에는 제품 설명뿐만 아니라 어울릴만한 안주도 함께 소개하고, 술에 얽힌 이야기도 풀어냅니다.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담화사전이라는 카드에는 음주법, 우리 술 역사 등 술과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들을 함께 전합니다.
출처 : 홈술닷컴
출처 : 홈술닷컴
‘느린마을 막걸리’로 유명한 배상면주가는 2021년 1월 온라인 주류 판매 플랫폼인 홈술닷컴을 열면서 전통주 정기구독 서비스 ‘월간홈술’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양조 전문가와 주류 전문 마케터로 이뤄진 큐레이터들이 다양한 한국술을 특징에 따라 분류해 매월 새로운 주제로 홈술컬렉션을 제공합니다. 1월의 추천 컬렉션은 ‘스파클링’입니다. 와인이나 맥주뿐만 아니라 우리 술에도 탄산이 있다는 것을 키워드로 잡아 소개합니다. 스파클링 전통주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해 단맛이 나는 음료를 위주로 큐레이팅 한 ‘종합세트 스파클링 음료술’부터 배상면주가에서 직접 제조한 스파클링 술들까지 다양하게 알려주죠.
해외에는 칵테일, 맥주, 위스키 등 보다 다양한 주종을 활용한 정기 구독 서비스들이 자리잡았습니다. 미국의 후치(Hooch)는 2015년 시작한 칵테일 정기구독 서비스로 한 달에 9.99달러(약 1만2000원)를 내면 하루 한 번 칵테일을 마실 수 있게 합니다. 일본 맥주 브랜드 기린은 2019년부터 생맥주 정기 배달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가정용 맥주 케그 제품인 ‘홈탭(HomeTap)’을 통해 집에서 신선한 생맥주를 내려 마실 수 있게 하죠. 한 달에 두 번, 1리터 용량의 홈탭을 집으로 배달합니다. 국내에서도 와인, 전통주 이외에 다양한 술을 집에서 구독해 마시는 날이 곧 찾아올까요? 점점 커지는 주류 구독 서비스의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조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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