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멈춰! 프라이탁 F-CUT
출처 : 프라이탁
가만있어도 잘 나가는 프라이탁. 10년 전에 멈춘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다시 꺼낸 이유는?
네 멋대로 해라
유일무이한 것에 열심인 프라이탁. 트럭을 덮는 방수포를 모아 액세서리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깨끗이 씻어낸 방수포의 고유하고도 견고한 질감은 물건에 독특한 미감을 선사했죠. 이들이 1993년부터 만든 가방과 지갑은 여전히 세계인의 워너비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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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프라이탁 제품이 가득 담긴 V30 진열장을 열다 보면 가끔 생각에 잠깁니다. ‘아 이번에는 내 맘에 드는 방수포를 꼭 만나고 싶다.’ 그러다 심미안을 건드리는 물건과 만나 프라이탁과 사랑에 빠지죠.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마음에 드는 방수포를 직접 골라보는 건 어때?’
방수포 원단 한 장에 많아야 제품 서너 개 만드는 게 고작인데 원한다면 방수포를 손님 마음대로 고르라는 것이었죠. 이 발상은 1999년 프라이탁의 두 번째 매장인 스위스 다보스에서 시작됐습니다. 영상 캠을 설치해 인터넷에 접속한 고객이 원하는 가방을 선택주문하는 서비스였는데, 판을 키운 프라이탁이 ‘F-CUT’이라는 이름으로 고객이 직접 제품을 커스텀 할 수 있는 웹페이지 코너를 마련했었죠. 2011년까지 운영된 프라이탁의 커스터마이징 서비스였습니다.
2022년 5월, 새로운 웹 표준에 맞춰 진보된 인터페이스로 돌아왔습니다. 마우스나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방수포 원단을 어떻게 자르는 게 나을지 금방 알게 됩니다.
방수포 선택은 선착순
제작 가능 상품은 프라이탁의 1994년작 중형 메신저백 ‘F12 DRAGNET’입니다. 1993년 창립 당시 첫 제품이었던 ‘F13 TOP CAT’을 소폭 축소해 개량한 모델이죠. 적절한 수납공간 배치와 15인치 노트북이 쏙 담기는 사이즈로 호평받으며 수십 년 간 프라이탁 팬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스테디셀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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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UT으로 드라그넷 메신저백을 만들면 방수포 원단을 네 번 선택해야 합니다. 프라이탁 로고와 함께 가방의 얼굴이 될 ‘커버cover’와 원단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메인 파트main part’. 더 있습니다. 벨크로 테이프로 가방을 봉인할 ‘아우터 포켓outer pocket’과 가방 안 소지품과 맞닿는 ‘이너 포켓inner pocket’까지 고르면 우선 끝입니다. 이후 방수포 지정을 모두 마치면 3D 가상 이미지로 구현된 드라그넷 시안을 확인할 수 있죠.
마우스 휠로 이리저리 도면을 돌려가며 최종 시안을 확인합니다. 매주 20~50여 개 방수포가 업데이트된다는 데 경쟁이 치열합니다. F-CUT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보기 좋다 싶은 방수포는 원단이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남아있어요. 까다로운 과정만큼 얻는 게 크기에 인기가 높은 거겠죠.
10년 만에 부활, 왜?
프라이탁 홍보 실무자에게 F-CUT의 변화를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플랫폼으로의 변화’라 설명합니다. “지난 F-CUT이 이벤트성 서비스였다면, 현행 F-CUT은 꾸준한 개선할 프라이탁의 제조 시스템이다.”라고 보충 해설을 덧붙였죠.
F-CUT 제품은 ‘F712 DRAGNET’으로 분류된다_출처 : 프라이탁
F-CUT 제품은 ‘F712 DRAGNET’으로 분류된다_출처 : 프라이탁
수익화를 겨냥한 프라이탁의 신사업은 그들이 겨냥하는 비즈니스 트렌드에도 부합합니다. 첫째는 디지털 럭셔리인데요.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신선한 체험이 팬덤을 확장시킬 패션 브랜드의 넥스트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죠. 프라이탁은 디자이너의 손에 맡겨졌던 몫을 고객과 나눕니다. 자르고 조립하고 다듬는 ‘경험’을 온라인으로 이식해, 브랜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개인화 서비스의 확장.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는 더욱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구업계는 맞춤형 제품으로 고객을 만나는 상황이고 가전업계에서는 비스포크(냉장고)라는 이름으로 고객 수요를 반영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프라이탁 인기상품 자체가 개인의 취향을 많이 투영하는데다, 심지어 그들이 직접 제조과정을 총괄하는 브랜드라 개인화 서비스를 펼치기 유리한 입장이죠.
브랜드 가치 방어하는 묘수?
F-CUT의 부활은 중고시장 활성화를 억제하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마니아였다 자부하는 직장인 왕선미 씨는 “예쁜 제품이 있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구입한다”라고 프라이탁 팬의 심리를 설명합니다. 시장특성에 대해서는 “일본 옥션을 살피면 단종 제품의 가격대가 높고 한국은 프린트가 중요하다”는 의견입니다. 덧붙여 “한국은 올실버 올블랙 올화이트 같은 톤 다운된 물건 수요가 높다"라며 지역·문화권에 따른 수요 차이를 전했죠.
출처 : 프라이탁
실제로 국내중고 플랫폼에 ‘드라그넷’을 검색하니 패턴 없는 무채색 계열 제품이 가격대가 높았습니다. 상태가 좋은 중고품은 새 물건보다 높은 값에 거래되고 있었죠. 디자이너가 우연히 재단한 액세서리라는 프라이탁 제품 특성상, 문화권마다 선호되는 컬러는 더 큰 희소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미 ‘유일무이’한 물건에 우열이 나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인 것이죠.
F는 ‘P’erfect의 어머니
F-CUT의 모토는 Fault. 반품이 허락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실수조차 자신이 책임진다는 것이죠. 예상 밖 퀄리티가 나온 가방, 차선책으로 고른 원단도 인생 가방이 될 수 있다는 프라이탁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깨진 도자기를 송진이나 금을 이용해 수리하는 공예기술인 ‘킨츠키金繕い’를 닮았습니다. 대상이 지닌 불완전성을 허용하고 새로운 쓸모를 부여한 물건에서 특별한 미의식을 경험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F-CUT은 프라이탁의 브랜드 가치인 ‘우연’과 ‘유일’을 드러내는 효과적 캠페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왜? 디자이너의 몫을 소비자가 대신 하는데 가격이 조금 더 비싼건지.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출처 : 프라이탁
#DRAGNET을 인스타그램에 검색해 봅니다. 닭 모양이 그려진 방수포 프린팅을 잘라냈다고 자랑하는 유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프라이탁 팬으로 보이는 댓글 속 지인들이 ‘완벽한 커팅’이라며 손가락을 모아 칭찬 댓글을 남겼죠. 완벽Perfect을 향한 실수Fault. 마음에 쏙 드는 방수포를 얼른 골라 완벽하다고 느낄 커팅에 희열을 느끼는 것. 기쁨을 팬과 공유하는 것. 프라이탁 세계관에 푹 빠져든 사람만 누리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김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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