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택시에 타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목적지를 입력해 주세요.” 차 뒷좌석에 앉으면 기계음의 인사말이 들립니다. 조수석 헤드레스트 뒤편에 달린 태블릿 PC가 그 소리의 출처이죠. 승객은 거기에 음성이나 키보드, 터치 등의 방식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입력합니다. 물론, 이것도 배회 영업일 때의 얘기입니다.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은 게 아니라 스마트폰 실시간 호출로 이미 목적지를 선택해 호출했다면, 이마저도 필요 없습니다. 뒷좌석 승객은 필요시 그 태블릿 PC로 기사와 소통합니다. 승객이 기사에게 자주 요청하는 항목은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나머지 시간은? 승객은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서울 도심 속 스무 대의 고요한택시는 그렇게 달리고 있습니다. 고요한택시가 향하고 있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2017년 9월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던 송민표 코액터스 대표. 군 제대 이후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인액터스에 가입합니다. 대학교별로 모여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동아리 입니다. 송 대표 본인이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게 하나, 대학생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게 두 번째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액터스에서 진심을 다해 활동한 그는 1년간 회장직까지 맡게 됩니다. 그러면서 고민에 빠지죠. ‘당면한 사회 문제 중 그 누구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못했던 게 있었나.’ ‘해결하려고는 했지만, 혹시 그 방법이 진부해 풀지 못 한 숙제로 남은 게 있나.’
‘우리가 의사소통 솔루션만 제공한다면?’
고요한택시 내부 전경_출처 : 코액터스
여러 문제 중 장애인의 일자리 부족 문제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청각장애인. 국내 전체 장애인 수에서 청각장애인은 지체장애인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들의 당시 취업률은 40%대밖에 되질 않았죠. 해외에선 차량공유서비스 우버에 청각장애인 기사 6000명이, 싱가포르에선 그랩에 300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송 대표는 알게 됩니다. ‘한국에선 왜 없지?’
택시 시장의 인력 구조만 놓고 보면 기회는 충분한 것 같은데 이상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사의 고령화, 구인난 문제를 달고 있는 시장이 이곳입니다. 법인택시 입장에선 기사 한 명이 절실한 상황일 수밖에요. 그럼에도 청각장애인을 고용하길 꺼려 한다니...왜일까요.
고요한 택시의 의사소통용 태블릿 PC 모습_출처 : 코액터스
승객과의 의사소통 문제가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길에서 탑승하는, 배회영업 비율이 60%에 달했습니다. 승객이 차에 타서 처음 목적지를 설명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죠. 의사소통 솔루션만 제공한다면? 송 대표의 전공인 IT로 솔루션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반 환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무선 통신망은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있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었죠. 때마침 센터페시아와 조수석 헤드레스트에 태블릿 PC를 마련해 놓는 택시도 늘어나던 추세였습니다. 물론,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쓰거나 광고를 띄우는 용도였습니다. 이를 기사와 승객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되겠구나 했습니다. 인액터스에서 뜻이 맞는 팀원과 개발자를 모집해 ‘고요한택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처음, 달리다
SK텔레콤이 청각장애인 기사의 운전 보조용으로 제공한 ADAS_출처 : 코액터스
의사소통 애플리케이션(앱) ‘고요한’을 개발하면서 택시 기사를 모집하는 게 시급했습니다.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 끝에 농아인협회와 손을 잡게됩니다. 청각장애인의 택시운전자격증 취득을 도와주기로 한 것입니다. 15명의 지원자 중에서 두 명을 뽑아 시험 준비와 앱 사용법을 교육했습니다. 이 와중에 언더그라운드 피치대회에서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으로 뽑히기도 했죠. 그렇게 창업에 필요한 자금도 서비스도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았습니다.
2018년 법인 코액터스(CO: ACTUS)를 세웁니다. 모든 게 잘 풀릴 듯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때 막상 고용을 약속하던 택시 회사가 등을 돌립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급하게 다른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던 것이죠. 낙담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시기였습니다.
그때 구세주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경주 수화통역센터였습니다.
서울시 1호 청각장애인 기사_출처 :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 유튜브 영상 캡처
경주에서 한 달가량 운행한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를 소개받았습니다. 필담으로 승객들과 목적지 확인 등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던 기사였죠. 그 운명 같은 만남이 시작이었습니다. 그해 6월 그 기사는 1호 고요한 택시 기사가 됩니다. 고요한택시는 그렇게 경주에서 첫 발을 뗀다.
1년 뒤인 2019년 6월. 고요한택시를 소재로 현대차그룹이 만든 광고(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가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칸 국제 광고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합니다. SK텔레콤과도 협력 관계도 공고화하죠. SK텔레콤은 코액터스의 택시 호출 서비스 앱 ‘고요한 M’에 배차 승객에게 이 택시는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영하는 택시라는 사실을 팝업 메시지로 미리 안내하는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여기에 전방 차량 또는 보행자와의 추돌 위험이 있으면 이를 기사에게 촉각 신호로 보내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도 제공합니다. 2019년 7월 사회적 경제 박람회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고요한택시에 직접 탑승하며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2018년 4월
코액터스 설립
2018년 6월
경주서 1호 고요한택시 운행
2018년 11월
SK텔레콤과 협업 시작
2019년 6월
칸 국제광고제 은사자상
2020년 8월
'고요한 M(앱)' 서비스를 론칭
코액터스 설립
경주서 1호 고요한택시 운행
SK텔레콤과 협업 시작
고요한택시 소재 현대차 광고, 칸 국제광고제서 은사자상
'고요한 M(앱)' 서비스를 론칭
사업 모델의 확장
코액터스는 청각장애인 기사를 상시 모집하고 있다_출처 : 코액터스 홈페이지
기업 설립의 취지와 지향 가치가 사회 전반의 지지를 받을 만큼 워낙 좋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거기에 머무를 순 없습니다. 탄탄한 수익 모델을 마련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낼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사실 코액터스 초기만 해도 사업 형태는 지금처럼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청각장애인 기사는 엄연히 다른 법인택시 소속이었습니다. 당시 코액터스의 비즈니스모델(BM)은 의사소통 애플리케이션(앱)을 해당 택시회사에 납품하고 그 서비스 수수료를 월정액으로 받는 것이었죠. 문제는 이 모델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수익성이 그리 좋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높아지는 인지도 만큼이나 사업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야 했습니다.
'고요한M' 출시 이미지_출처 : SK텔레콤 홈페이지(뉴스룸)
2020년 8월 1일, 코액터스는 SK텔레콤과 함께 만든 ‘고요한 M(앱)’ 서비스를 개시합니다. 앞선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청각장애인 직영 운송 서비스로 코액터스가 직접 기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형태였습니다. 현행법과 사업 환경의 현실성을 따졌을 때 코액터스가 직접 택시회사를 차릴 수 없는 상황에 그 대안으로 ‘플랫폼운송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입니다.
어느덧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로 운영해온 1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고요한택시는 지금도 도심을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운송사업 면허 허가라는 관문은 아직 넘질 못했습니다. 스무 대뿐인 직영 고요한택시를 증차하고 사업을 확장하려고 해도 면허가 떨어져야 하니, 송 대표는 그때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
코액터스는 모빌리티 사업자로서 승객에게 좋은 이동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_출처 : 코액터스
잠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고요한택시는 그렇다고 청각장애인만 생각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언론이나 대외 메시지나 지금껏 코액터스 그리고 고요한택시를 논할 때 주로 생산자 입장의 사회적 가치만 다뤄왔습니다.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고요한택시는 결국, 넓게 봐서는 운수업 모빌리티 사업자 입니다. 이들이 승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도 당연히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코액터스는 직원의 30% 이상이 장애인인 ‘장애인표준사업장’입니다. 그렇다고 장애인만 100% 고용하진 않습니다. 코액터스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포용적인 운수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요한택시가 승객에게 제공할 서비스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송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데플림픽 농인 탁구 동메달리스트였던 박광은 고요한 택시 기사_출처 : 코액터스
“코액터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공합니다. 택시에 탑승했을 때 기대하는 바는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됐으면 하는 것입니다. 승객은 그런 기본적인 것에서 대접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창문을 내리고 싶을 때 내릴 수 있는 권리, 탑승했을 때 담배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될 권리 등등.
또한 코액터스는 꼭 말을 걸지 않는 게 좋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흔히 일본의 NK 택시를 친절함의 대명사라고 합니다. 그런 친절함, 대접 받는다는 서비스 정신,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통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목적지로!?
출처 : 코액터스 홈페이지
또 하나, 송 대표는 ‘업무택시’라는 B2B 시장이 고요한택시가 섭렵해 나갈 좋은 무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요즘 직원이 야근을 할 때나 외부 미팅이 있을 때 택시비를 지원하는 한 방식으로, 택시 회사와 계약을 맺고 후불제로 결제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야 하는 기업(100인 이상 기업 기준 장애인 의무 고용률 30% 이상을 맞추지 못한)이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코액터스의 서비스(고요한택시)를 이용하면 지원금을 받아 그 비용의 최대 50%를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올해 초 개시한 B2B 업무 택시 서비스는 지금 한 두 군데에서 시범적으로 도입됐다고 합니다. BM만 놓고 봐도 충분히 성장 가능하다는 송 대표의 판단입니다.
2021년 12월6일 서울 강남 청년창업허브 코액터스 사무실에서 송민표 대표_출처 : 바이브랜드
“감사합니다.” 송 대표는 두 손을 잡고 고맙다는 진심을 전하는 고요한택시 기사들을 만날 때마다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라는 다짐합니다. 그러려면 회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일궈내야 합니다. 승객을 만족시키고, 회사 고객이 만족해야 하는 것이죠.
2030 청각장애인의 교육 수준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그 위 연령대의 청각장애인은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 상당수가 공장에서 일하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청각장애인이니깐, 시끄러운 공장에서 일하는 게 괜찮겠지?” 그런 소음에 더 취약한 것이 청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택시 기사는 이에 비해 일자리로서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송 대표가 그리고 코액터스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승객과 장애인과 사회가 모두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곳인 듯합니다.
김재형
info@buybran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