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의 혈투,白山眼鏡店

싸게 사는 게 미덕인 세상에서 제대로 사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곳.

안경을 쓰고 벗고 반복하기를 여러 번, 시계는 어느새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안경을 가운데 두고 안경사와 기자 간의 핏을 맞추는 데만 30분가량 걸립니다. 배는 고프지만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하쿠산안경(白山眼鏡)과의 ‘인연’은 만족스럽게 시작됐으니까요.

白山의 정신이 서울에 닿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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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白山眼鏡店

평일 늦은 오후 찾은 가로수길. 2016년 이곳에 터를 잡은 하쿠산안경점(白山眼鏡店) 서울 매장은 188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안경점 역사 속 첫 해외 단독 오프라인 스토어입니다. 한국에선 '백산안경'으로 알려져 있죠. 신사동에 문을 열기까지 3년이 걸렸다는 한승민 하쿠산안경 서울점 대표. 그는 교류의 시간으로 회상합니다. 4대째 이어져 오는 브랜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다가갈 순 없었을 테니까요.

브랜드 론칭 제안에 생각보다 쿨하게 반응했다던 시라야마 마사미 하쿠산안경점 대표. 50년 가까이 안경점을 이끌어 온 그가 강조한 것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판매 전략과 예상되는 수익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내재화하는 소통을 요구했던 것이죠. 물건보단 정신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랐던 시라야마 대표. 현대적이고 세련된 풍경이 가득한 신사동에서 하쿠산안경점이 남다른 정경을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울점은 ‘페이크’입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남다른 정취를 자아내는 본점에 대한 겸공이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시부야 매장을 모티브로 기획된 이곳은 앤티크함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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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이브랜드

쨍하지 않은 조명 아래 고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가구와 소품. 하루가 멀다 하고 파격적으로 변하는 트렌드에선 마주할 수 없는 평온함이 몸을 감쌉니다.

이러한 평온함은 인테리어 연출에서만 비롯된다고 할 순 없습니다. 하쿠산안경은 ‘안경원(眼鏡院)’이 아닌 ‘안경점(眼鏡店)’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니까요. 하쿠산안경점은 1975년 전까지 일본에서 수입 안경을 판매하는 소매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직접 디자인한 안경을 선보이고 점(店)을 붙인 것은 시라야마 대표가 경영을 맡으면서부터입니다.

법원, 병원, 서원 등 ‘원(院)’이라는 글자에서 왠지 모를 어려움이 전해집니다. 반면에 백화점, 음식점, 주점은 어떤가요? 매일 가고 싶은 만큼 심리적 거리감이 멀지 않습니다. 하쿠산안경점도 동네 제과점처럼 언제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을 지향합니다.

일본에서도 매장은 다섯 곳뿐입니다. 최신의 것을 좇는 시대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만들어지는 정겨운 공간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여기선 주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안경에 존재 의미가 부여되니까요.

얼굴 안 보면 안 파는 안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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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오리지널 프레임 HANK_출처 : 白山眼鏡店

1mm의 미학. 한승민 대표에게 안경이 그렇습니다. 아세테이트 안경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물성 때문에 미세한 오차라도 첫 피팅 때 놓친다면 나중에 형태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코나 귀의 높이 등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얼굴 특성에 세밀하게 맞춰가는 과정을 강조하죠. 착용자의 편안함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요. 이는 오모테나시(환대)와 타쿠미(정교함) 등 일본의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하쿠산안경점의 원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쿠산안경점 울타리 안에선 안경은 새로운 인연의 시작점이자 관계를 이어나가는 구심점이니까요. 바다 건너에서도 편집숍이 아니라 단독 매장을 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프라인만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성을 쏟지 않는다면 완벽한 안경은 나올 수 없기에. 고객 접점을 무리하게 늘리긴 보다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 전략적 절제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컬래버레이션. 서울점 오픈 당시 한국을 찾았던 시라야마 대표는 한 국내 남성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협업 요청의 10%만 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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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erry_출처 : 白山眼鏡店, Loop Yahoo

그 10%에서도 ‘친분이 있는 브랜드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점 역시 협업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금도 충분한 교감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걸 잘 알기 때문이죠.

하쿠산안경점에 따르면 일본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 텐더로인과 함께 만든 ‘T-Jerry’는 가장 반응이 좋았던 협업 제품입니다. 2005년 공개됐던 이 제품은 ‘우주매물’로 분류되곤 합니다. 구하기 힘들뿐더러 가격도 착하지 않거든요. 협업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였던 디렉터 케이 해미가 텐더로인을 떠난 이상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것도 한몫하죠. 한 대표도 최애 모델로 꼽을 정도로 템플에 새겨진 더블 네임의 가치는 글자 그 이상입니다.

판매보단 구매 희망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는 T-Jerry는 100만 원을 호가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최근 국내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올라온 T-Jerry는 총 4개. 그중 하나는 55만 원에 판매됐고 나머지는 72~97만 원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T-Jerry를 검색하면 빅뱅의 탑이 빠지지 않습니다. T-Jerry를 비롯해 하쿠산안경의 여러 제품을 자주 착용하며 국내에서 브랜드를 널리 알린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 이전엔 존 레논이 있었고요.

1883

하쿠산안경점 시작

1960

우에노 본점 리뉴얼

1975

첫 번째 오리지널 프레임
HANK 출시

1989

사라야마 마사미
대표이사 취임

2016

하쿠산안경 서울점 오픈

하쿠산안경점 시작

우에노 본점 리뉴얼

첫 번째 오리지널 프레임
HANK 출시

시라야마 마사미
대표이사 취임

하쿠산안경 서울점 오픈

감정이 사라진 곳에 낭만을 불어넣다

메이페어를 착용한 존 레논_출처 : 白山眼鏡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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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재발매되는 메이페어_출처 : 바이브랜드

1979년 총선에서 승리한 마거릿 대처를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맞이했던 다우닝가 10번지. 같은 해 여름, 도쿄의 하쿠산안경점도 특별한 손님을 맞이합니다. 바로 존 레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었던 그의 눈에 메이페어가 들어온 것이죠. 메이페어는 1975년부터 직접 디자인을 시작한 시라야마 대표의 네 번째 오리지널 프레임입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대담에서 시라야마 대표는 당시 15개의 안경테를 가지고 존 레논을 만나러 갔다고 말했습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두 남자는 서로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며 안경을 골랐다고 합니다. 최종 선택은 안경점에서 마주했던 메이페어.

메이페어는 존 레논이 총격으로 쓰러진 순간까지 함께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귀한 인연에 대한 존중으로 시라야마 대표는 메이페어 제작을 중단합니다. 그의 죽음을 제품 판매에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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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시작된 하쿠산안경점 매거진 SQUINT_출처 : 바이브랜드

효율성과 합리성이 강조되는 비즈니스에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죠. 그러나 팬덤에선 이를 낭만이라 부릅니다. 비틀즈의 열렬한 팬, 한 대표가 3년에 걸친 교류의 시간을 버틸 만큼 하쿠산안경에 푹 빠진 계기도 이 지점입니다.

“국내와 해외 발신 메시지 비율이 비슷합니다.” 대리점(?)에 불과한 곳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품 문의가 끊이지 않아 매번 놀란다는 한승민 대표. 특히 지난 2020년, 유럽과 북미에서도 40년 만에 복각된 메이페어 구매에 대한 연락이 많았다고 합니다. 외부 자본 개입 없이 경영을 이어가는 브랜드이기에 팬덤이 꾸준히 유지되나 봅니다.

디자인부터 사후 서비스까지 모든 과정엔 시라야마 대표가 있습니다. 한 대표가 그를 ‘혼연일체’라고 표현하는 이유죠. 게다가 그는 안경뿐만 아니라 굿즈부터 매거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남다른 감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해집니다.

간결한 디자인, 선명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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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프레임 라인업_출처 : 白山眼鏡店

하쿠산안경 본점이 있는 우에노는 이태원 같은 곳입니다. 해외, 특히 미국 문화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였거든요. 여기서 태어난 시라야마 대표는 당시 일본 백화점에서 볼 수 없었던 리바이스나 디키즈 등 여러 브랜드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안경 제작에 뛰어들기 전엔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며 전통을 지켜나가는 다양한 숍들을 접하기도 했고요.

이를 통해 한 분야에서 기준으로 자리매김한 것들로부터 불필요함을 덜어내는 지혜를 배우지 않았을까요? 하쿠산안경의 디자인 핵심은 ‘Less is more’, 심플함입니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에서 얼굴과의 조화를 찾습니다. 시라야마 대표가 보그 재팬을 통해 아름다움은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할 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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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白山眼鏡店

자칭 ‘안경 덕후’라는 한 대표가 바라본 하쿠산안경의 선은 단순하고 부드럽습니다. 서양의 안경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자 하쿠산안경만의 동양적 매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죠. 한 명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선이라 독창성과 일관성도 충만합니다. 게다가 모든 제품은 ‘Made in Japan’.

제품의 유명세 때문에 특별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쿠산안경은 트렌드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파는 곳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신 제대로 만들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정신이 선명하죠.

원(院)이 아닌 점(店)을 지향하지만 원(圓)을 찾는 이들이 모이는 하쿠산안경점. 작은 역설 속에 내재된 의미를 3천만을 향해 가는 안경 인구에게 바칩니다.

이순민

이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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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랜드 22.10.23 승인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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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이어져 온 안경점의 첫 해외 단독 매장
세심하고 책임감 있는 'Made in Japan'
일관된 디자인에서 발현되는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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