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재미 한 스푼을 더하니 귀가 몰립니다.
2016년 스푼라디오(이하 스푼)는 누구나 DJ가 될 수 있다고 외치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창업 3년 만에 시리즈C 투자(누적 675억 원)까지 유치했지만 작년엔 투자 업계가 동결되며 한차례 위기를 겪었죠. 불가피하게 직원의 약 50%를 내보낸 후 수익률 개선에 집중함으로써 올해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합니다.
내 목소리의 값어치는?
스푼라디오 라이브 실행 화면_출처 : 스푼
스푼 콘텐츠에 필요한 재료는 목소리 단 하나. DJ가 라이브 방송 및 녹음 파일을 등록하면 청취자가 후원하는 시스템입니다. 김형건 스푼 글로벌 사업부 리드에 따르면 “인기 창작자의 경우 팬 후원금이 수천만 원에 달해 개인 세무사까지 고용한다”고 합니다.
실제 사내에서도 DJ 활동을 장려한다고요. 출퇴근 시간에 방송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 직원은 월급의 2배가 넘는 후원금을 얻어 퇴사하기도 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유저가 팬덤을 확보한 후 DJ로 전업한 사례도 있죠. 세상 일은 역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스푼라디오 앱의 각종 기능 화면_출처 : 스푼
스푼의 지향점은 SNS형 라디오입니다. 음성 파일로 고민거리와 토론 주제를 공유하는 톡 기능에서 시작해 지금의 사업모델을 구축. 생각을 자유롭게 피력하는 것은 물론 ‘커버곡, 더빙, 도서 낭독, ASMR’ 등 취향에 따라 오디오를 즐길 수 있어 월평균 이용자 수가 100만 명에 달합니다. 청취자 100명 중 15명 꼴로 창작 활동에 나선다고 하네요.
플랫폼을 악용하려는 선정적인 DJ에 대해선 엄격히 관리합니다. 본사 차원의 실시간 모니터링 제도가 운영되지만 스푼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다는 커뮤니티 반응에 밀려 해당 채널이 이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작은 그들만의 시상식
스푼어워즈 공식 포스터_출처 : 스푼
스푼의 주요 수익원은 팬 후원금에 대한 수수료입니다. 투자 유치에 실패했던 작년엔 각 채널이 팬층을 넓히도록 지원해 매출 증진을 꾀했죠.
활약이 두드러진 DJ들을 사옥에 초청했던 2021 스푼어워즈가 대표적입니다. 유명 DJ들이 시상자 및 축하공연 게스트로 등장해 시상식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는데요. ‘신인상, 특별상, 콘텐츠 본상’ 등 분야별 시상 과정을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했습니다.
삼성역 광고판에 노출된 스푼의 DJ_출처 : 스푼
올해 스푼어워즈는 12월 16일 외부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며 스푼을 통해 소속사 계약 및 음원 정식 발매에 성공한 가수 피엘이 MC로 나선다고 합니다.
신규 청취자와의 접점이 될 삼성역 내부 옥외 광고판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팬들로부터 응원을 가장 많이 받은 이들에게 지원해 팬들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도 기여했죠. 인기 DJ들을 MBC 라디오에 데뷔시킨 프로모션에서도 응원 댓글이 잇따랐고요.
유익하진 않아도 재밌으니까
기자가 퇴근길에 즐겨 듣는 스푼의 더빙 및 ASMR 콘텐츠_출처 : 스푼
SNS형 라디오를 표방하는 스푼에게 정보성 콘텐츠가 없다는 점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2021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가 폐지된 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발 빠르게 사회 이슈들이 공유되듯 요즘 SNS는 지식의 창구로도 기능하니까요. 최근 틱톡 역시 ‘나를 위한 모든 쓸모’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꿀팁 영상이 가득하다는 점을 어필했습니다.
김 리드는 “유의미한 지식을 창출하진 않아도 소통 기반의 제작 방식이 강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시간으로 청취자의 고민을 들어주고 원하는 성대모사로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처럼요.
스푼 오리지널 콘텐츠인 가수 황광희의 분노의 칭찬봇_출처 : 스푼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소통형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방점을 찍었습니다. 2020년 피엘과 기획한 생방송 오디오 프로그램 ‘PL의 라라랜드’가 한 예입니다. 음악을 포함한 여러 소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매회 게스트를 초청해 실시간 라이브 연주도 선보이죠.
청취자의 사연을 듣고 무조건 칭찬만 해주는 가수 황광희의 ‘분노의 칭찬봇’도 인기 시리즈입니다. 스푼은 사옥 내부에 설치한 오픈 스튜디오를 활용해 앞으로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메인 무대가 된 일본
스푼 사옥의 오픈 스튜디오에는 각종 음향 장비가 갖춰져 있다_출처 : 스푼
스푼은 후원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젊은층이 확보된 20여 개국에도 진출했습니다. 국내의 경우 커버곡 및 음원이 강세지만 북미 지역에선 토론 주제를 선호하듯 국가마다 콘텐츠 트렌드가 상이하다고 합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중국’ 출신의 인재들을 확보해 현지화 경영에도 힘을 쏟고 있죠.
가장 이용자 수가 많은 곳은 일본. 성우 전담 소속사가 있을 정도로 유구한 오디오 콘텐츠 시장으로서 애니메이션 및 영화 더빙 채널의 수요도 상당합니다. 스푼이 현지 DJ들과 전속 계약 후 제작비를 지원하는 이유인데요. “일본 소비자들은 얼굴보다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익숙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고정 이미지를 설정하거나 스피커만 켜놓을 정도죠. 스푼이 소구하기에 최적화된 시장입니다.”
성우 시장이 활성화된 일본에서는 캐릭터 더빙 콘텐츠의 인기가 상당하다_출처 : 스푼
스푼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년 국내에서 유행했던 음성 채팅 참여 앱 ‘클럽하우스’가 연상됩니다. 빌게이츠와 일론 머스크까지 가입하며 이목을 끌었지만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고 말았죠.
일각에선 폐쇄성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분석합니다. 전문 지식을 다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데다 기존 사용자의 초대권을 받아야 입장 가능하니까요.
반대로 스푼의 성공 요인은 자율성입니다. 이용자로 하여금 언제든지 청취자와 창작자를 넘나들 수 있고 콘텐츠 주제도 무궁무진하죠. 이 라디오에 접속률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는 밤 10시~새벽 1시. 잠들기 전 홀로 스마트폰 세상을 즐길 때인데요. 스푼에서 듣고 말할 자유가 보장되는 한 방구석 토크쇼는 더 늘어날 것 같네요.
이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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