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률 24%. 발달장애인 가운데 취업한 사람은 10명 중 3명도 되지 않습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0)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과 비교해 특히 낮은 편입니다. 근속 기간도 짧습니다.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들이 잘 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맡은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는데도 말이죠.
기업의 방식으로 해답 찾아가는 동구밭
초기 동구밭 텃밭 프로그램_출처 : 동구밭
2014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동구밭 노순호 대표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 발달장애인들은 오래 일하지 못할까.’ 질문에 대한 답을 기업의 방식으로 풀어 보기로 했습니다. 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회 적응력 부족에 있다고 보고, 적응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도시 텃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농작물을 키우면 함께 사회성도 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노 대표는 “관계를 맺는 것도 작물을 키워내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둘이 닮은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출처 : 동구밭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매칭해주는 서비스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제일 많을 땐 30곳에서 텃밭 프로그램이 운영됐습니다. 매년 250~300명이 참여했고요. 하지만 곧 존폐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결과적으론 망한 거죠. 매출이 잘 안 나오니까 유지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무엇보다도 프로그램 취지가 사람들이 채용되도록 돕는 건데, 일을 잘한다고 아무리 추천을 해도 데려가겠단 회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고용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10명을 채용하더라도 이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생각했죠.”
고용 위해 경쟁력 있는 비누 제조
출처 : 동구밭
직접 고용을 위해 고체 화장품(이하 비누) 제조로 사업 모델을 변경했습니다. 화장품을 대신할 수 있는 고급 비누를 만들기로 한 거죠. 액체 화장품을 고체 비누 형태로 바꾼 겁니다. 비누 제조업이 정체되어 있었기에 노 대표는 조금만 다른 특징을 내세워도 금방 눈에 띌 수 있을 거라 자신했습니다.
초기에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제조업, 거기다 사양 산업인 비누라니. 화장품을 고체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늘 “왜?”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튜브 용기에 든 세안제가 제품력도 좋고 편하고 심지어 더 싼데 왜 굳이 고체로 만드냐는 거였죠. 빨리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표는 계획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2016년 말, 공장 세팅을 마치고 본격 비누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생산한 건 저온숙성(CP)비누. 고급 오일을 추가하는 등 기존 비누와 다른 방식으로 제작해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화장품 회사에서 고체 화장품을 만든다면 동구밭을 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략이 통했습니다. 바로 제작 의뢰가 왔습니다.
출처 : 동구밭
계약을 따냈지만 첫 납품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비누 공장과 공방들을 다니며 비누 만들기엔 성공했는데, 대량 생산에서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수백 장을 만드는 것과 수 천장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만들고 다음 날 상태를 확인하면 기준에 차지 않아 모두 버리길 수개월. 몸으로 부딪쳐가며 노하우를 쌓아 2017년 3월에 첫 납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의미만 좋은 제품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해 제품력에 특히 신경 썼습니다. 세정력과 보습력이 기존 제품에 뒤지지 않게 만들었고, 모든 제품에 대해 프랑스 이브비건 인증과 미국 농무부 USDA 유기농 인증도 받았습니다. 제품군도 설거지 워싱바, 고체 샴푸, 고체 린스 등으로 넓혔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동구밭에 오히려 기회가 됐습니다. 환경 이슈가 불거지면서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변화에 맞게 기업들은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구밭에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많은 회사들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주문자개발생산(ODM)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2013
장애인-비장애인 매칭
동구밭 프로젝트 시작
2015.1
법인 설립
2017
저온숙성 비누 제조&납품
2018
사회적기업 인증
2019
미국 USDA 유기농 제조사 인증
2021
연매출 120억 달성
장애인-비장애인 매칭 동구밭 프로젝트 시작
법인 설립
저온숙성 비누
제조&납품
사회적기업 인증
미국 USDA 유기농
제조사 인증
연매출 120억 달성
‘지속가능한 일상을 제안합니다’
자체 브랜드 영향력 확대
주방세제 대신 쓰는 설거지 워싱바_출처 : 동구밭
동구밭은 OEM/ODM 외에도 자체 브랜드를 키워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있습니다. 제조업 회사가 자사 브랜드를 키우긴 쉽지 않습니다. 브랜딩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고객사와 이해관계가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박상재 부대표의 합류는 동구밭이 자사 브랜드 확장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 부대표 합류 전에도 자체 제품은 있었습니다. 처음엔 고객사에 샘플을 보여주기 전에 제작했습니다. 그러다 ‘기왕 만든 거 팔아볼까?’란 생각에 판매를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러한 제품이 없다 보니 잘 팔렸습니다. 유통 채널에서 입점 제안도 많이 왔고요.
출처 : 동구밭
자체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첫번째는 고객 설득. 고체 샴푸라는 개념이 낯설기 때문에 ‘이 제품이 왜 비누가 아니고 샴푸(또는 세제)인지’ ‘비누를 쓰면 환경에 어떤 긍정적 영향이 있는지’ 등을 알리는 데 주목했습니다.
더불어 친환경 브랜드를 떠올리면 동구밭이 먼저 생각날 수 있도록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이란 회사 초기 미션에 ‘지속가능한 일상’이란 메시지가 덧붙여진거죠.
‘동구밭 고용모델’ 확산 꿈꾸다
출처 : 동구밭
동구밭은 친환경 기업으로 유명해지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 대표는 “성장보다 중요한 건 발달장애인 고용”이라고 강조합니다.
2021년 말 현재 약 8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 가량이 발달장애 사원입니다. 전체 직원의 50%를 발달장애인으로 채용하는 것을 내부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노 대표는 동구밭의 성장만을 꿈꾸지 않습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선 수익이 늘어야 하지만, 동구밭이 채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구밭과 같은 고용 모델(발달장애인 50% 이상 고용)을 가진 회사가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출처 : 동구밭
가령 기업이 낸 장애인고용부담금을 기금으로 쌓는 대신,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지원에 쓰는 방식을 도입하자고 주장합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르면 월 평균 상시 1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고용인원의 3.1%를 장애인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불이행 시 채용하지 못한 인원에 부담기초액(고용의무이행기준에 따라 다름)을 곱해 부담금을 내야 합니다. 2020년 말 기준 장애인고용기금 규모는 1조원이 넘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책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회가 변화하려면 민간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동구밭이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인식 변화에 일조했던 것처럼, 장애인 고용 인식 개선에도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해봅니다.
박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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