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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편의점 이라고 했‘었’을까

출처 : 나이스웨더

동네에 편의점 하나 더 생긴다고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아 또 생겼네’ 지나칠 뿐이죠. 그런데 이 두 편의점으로는 자꾸만 발길이 움직입니다. 신개념 편의점 ‘나이스웨더’와 감성 편의점 ‘고잉메리’는 근처에 있지 않은 데도 일부러 찾아가고 싶은 곳들입니다. 공간 구성을 하나씩 뜯어보면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올드해보일 수 있는 편의점을 전면에 내세운 게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나이스웨더 1호점은 2020년 2월 가로수길에 문을 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흰색과 고유의 파란색이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소품 하나까지도 톤앤매너를 유지했습니다. 장바구니마저도 색을 맞췄놓았죠. 계산대엔 대형스피커와 턴테이블이 놓여있었습니다.

파는 제품도 어딘가 특이합니다. 종잡을 수 없게 다양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못 보던 브랜드기도 하거든요. 잡지, 치약, 욕실용품, 잼, 냉동식품, 음료수, 패션소품에도 한남동의 명품 ‘올드페리 도넛’까지 다양한 걸 팔고 있습니다. 공통점 없어 보이는 이 물건들에도 공통점이 있긴 합니다. ‘쉽게 눈을 뗄 수 없다’는 겁니다. 나이스웨더만의 감각이 묻어나는 큐레이션 덕분에, 진열된 물건을 하나씩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죠. (그러다 결국 구매로 이어집니다.)

출처 : 나이스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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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이스웨더

정체가 뭘까 싶은데 홍보 영상이 명확히 답을 말해줍니다. 편.의.점. 내부 벽면에 투사해 반복되는 영상에선 나이스웨더와 편의점이란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아예 벽에 ‘편의점 淸陽’이라 써두기도 했고요.

나이스웨더는 아우어베이커리, 도산분식 등으로 유명한 CNP컴퍼니에서 만들었습니다. 탐험하듯 제품을 관찰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큐레이션과 콘셉트는 빠르게 MZ세대를 사로잡았습니다. 2021년엔 새로 문을 연 더현대 서울에 입점하기도 했죠.

현재는 나이스웨더 가로수길 지점은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개념 편의점’을 ‘신개념 백화점’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2021년 12월부터 영업을 종료했다고 하네요. 대신 더현대서울 외에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판교점, AK분당점 등에서 나이스웨더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감성 편의점’ 고잉메리

고잉메리는 요괴라면을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옥토끼프로젝트에서 만든 공간입니다. 옥토끼프로젝트에서 만든 제품들(요괴라면, 개념만두, 요괴밀크 등)과 고잉메리에서 선별 혹은 협업하고 있는 제품들을 팝니다. 오뚜기, 스타부르 등의 HMR 제품뿐 아니라, 한남동부첼리하우스와 콜라보한 스테이크(와 재료), 노량진 형제상회와 콜라보한 회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와인과 전통주, 생활용품 등도 있고요.

출처 : 고잉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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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잉메리 종각점 (현재 폐점)

고잉메리 판매 메뉴인 한돈 고기탑 부타동

고잉메리 메뉴 부타동_출처 : 고잉메리

제품보다 (또는 그 만큼) 더 관심이 쏠리는 건 음식 판매입니다. 편의점엔 당연히(?) 라면 먹는 자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긴 ‘요리’라 부를 만한 음식을 판다는 거죠. 라면, 볶음밥, 스테이크 등을 가성비 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퇴근 후엔 집에 가기 전 분위기 있게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고요.

종각점을 시작으로 안녕인사동점, 을지트윈타워점까지 빠르게 확장해왔는데, 코로나19 영향인지 종각점을 문을 닫고 나머지 두 지점은 현재 임시휴무 중입니다. 제주에 연 9.81파크점은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러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그들은 왜 편의점이라고 했‘었’을까

나이스웨더와 고잉메리 모두 문을 열 때부터 지켜보았습니다. 다녀온 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는데 ‘편의점’이라고 강조하기에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동차 회사, 패션회사, 가구회사, 서점 심지어 편의점도 모두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라고 하는 시대니까요.

편의점 콘셉트로 주목받았던 두 곳이, 론칭 2~3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두 편의점이란 수식어를 떼어내고 있습니다. 나이스웨더는 ‘신개념 백화점’으로 확장하고, 고잉메리는 ‘융복합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작 단계에서부터 편의점은 발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편의점을 앞세웠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편의점을 재해석했길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질문의 답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편의점은 일상에 가장 맞닿아 있는 리테일 매장입니다. 집 근처에 대부분 있고 (요즘은 아니지만) 24시간 영업을 하기에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죠. 제품과 서비스도 다양해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라고 대중에게 다가왔다면 의미가 한번에 와 닿지 않았을 겁니다. 반면, 편의점은 누구나 아는 익숙한 공간이기에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익숙함은 그대로 가져오면서 편의점을 재정의해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했습니다.

출처 : 나이스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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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내 중고거래 중개 서비스 나이스마켓_출처 : 나이스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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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 내 나이스웨더 매장_출처 : 나이스웨더

‘신개념’이란 수식어를 붙인 나이스웨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나이스웨더는 ‘편의’라는 편의점의 본질에 의문을 던집니다. ‘지금의 편의점이 제대로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들의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현 젊은 세대는 문화적 소비를 원하는데 기존의 편의점은 단순한 소비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나이스웨더에서 파는 물건은 그래서 다릅니다.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과 더불어 그림과 포스터 등 예술 작품도 판매합니다. 또, 중고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 역할도 자처합니다. (가로수길 지점엔 ‘나이스 마켓’이란 이름으로 있었습니다.) 택배보단 중고거래 기능이 요즘 세대에게 더 필요한 기능이라는 설명과 함께요.

‘신개념 백화점’으로 확장해도 이 정의는 그대로 가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기존 백화점이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MZ세대의 니즈를 반영한 공간을 만들겠다, 정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출처 : 고잉메리

고잉메리 을지타워점 매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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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잉메리

고잉메리 역시 편의점 재정의에서 시작했습니다. 여인호 옥토끼프로젝트 대표는 “고객의 기능적 발전 욕구에 대한 솔루션 제공에 집중하는 기존 편의점에서 한 발 나아가 정서적 측면에서 고객 발전 욕구 해결을 위한 본질적인 가치 제안을 맥락 안에 녹여 넣으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고잉메리 홈페이지 참조) 정서적 측면을 강조해 ‘감성’이란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광고 플랫폼’이란 본체를 재해석된 편의점을 통해 잘 구현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어떻게 광고 플랫폼이 되냐고요? 사실 편의점에도 온갖 광고들이 난무합니다. 여기 저기 붙은 광고 스티커와 포스터 그리고 상품이 진열된 순서까지도 사실은 모두 광고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고잉메리는 광고를 다양한 방식으로 은근히(?) 진행합니다. 공간 구성부터가 그렇습니다. 고잉메리에는 옥토끼프로젝트 제품 외에 광고주의 제품도 팝니다. 위트 있는 멘트와 함께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 잘 진열해두었죠. 식당에서 파는 음식도 광고의 일부입니다. 광고주의 제품으로 메뉴를 개발해 판매합니다. 또 하나, 식사하는 곳에 마련된 광고 패널들에선 판매 중인 요리를 만드는 법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것들 모두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합니다.

앞으로는 두 곳을 편의점이라 부르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스스로 편의점의 색깔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편의점 재정의에서 공간 구성을 시작했다는 점만큼은 담아두고 싶습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익숙한 것을 재정의해 ‘익숙한 새로움’을 만들어냈으니까요.

박은애

박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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