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왜 트렌드가 됐을까
워싱턴포스트와 더 버지 등 미국의 유명 미디어를 퇴사한 후 독립 채널을 만드는 에디터들이 많아졌습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얻기 위함인데요. 마냥 무모해 보이진 않습니다. 매체보다 영향력이 높은 크리에이터들도 많아졌으니깐요. 예컨대 더 버지에서 애플 관련 특종 기사를 내며 유명해진 케이시 뉴턴도 퇴사 후 유료 뉴스레터 더 플래포머를 오픈할 당시 “내 기사에 대한 팬층을 확인한 후, 확신이 들어 회사를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고 부릅니다. 사용자가 창작자에게 직접 콘텐츠 비용을 지불해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도 창작자가 꾸준히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최근 뜨고 있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미국의 유명 IT 투자사 엔드리슨 호로위츠의 마크 안드레센 CEO는 “지금은 미디어 산업의 변곡점으로 인터넷의 제 3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첫 번째 물결에서는 온라인에서 아무도 돈을 벌거나 쓰지 않았고, 두 번째 물결에서는 광고를 통해 수익이 발생했으며 세 번째 물결에서는 크리에이터가 독자들과 직접 연결돼 수익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SNS에서 활동하던 창작자들도 합류하며 가속화됐습니다. SNS와 달리 수익 배분이 명확하고 뉴스레터, 패션, 게임 등 각 분야에 특화된 제작 툴이 많아진 점이 배경이 됐죠. 이에 따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안에서도 콘텐츠의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SNS에 뿔난 크리에이터들
일부 SNS가 창작자의 수익에 무관심했던 것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최근 들어 관련 기능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창작자들이 SNS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식이 제한적이었습니다. 플랫폼 영향력 덕에 인지도를 높일 수는 있었지만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죠.
영국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2021년 5월 사용자들이 올린 게시글 옆 공간을 광고 배너로 판매하며 연간 920억 달러(약 110조 3816억 원)를 벌었음에도 사용자에겐 그 어떤 보상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트위터도 3억 5000만 사용자들이 올린 트윗들 사이에 광고를 배치해 연간 34억 달러(약 4조 793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사용자에게 돌아간 혜택은 없었죠.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작자들을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 도구로만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채널 개설부터 관리까지 한 번에!
요즘에는 콘텐츠 제작부터 결제까지 지원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해, 누구나 쉽게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미국 서브스택이 대표적이죠. 2017년 창업한 이 뉴스레터 제작 툴은 콘텐츠 제작부터 발송, 성과분석 등 구독 서비스에 필요한 기능들을 지원합니다. 사용법이 간단해서, 디자인 지식이 없어도 손쉽게 자신만의 뉴스레터를 만들 수 있죠.
성공 사례도 많습니다. 미국의 환경 전문 잡지사 뉴퍼블릭의 기자였던 에밀리 아트킨은 회사를 나와 서브스택을 활용해 유료 뉴스레터 히티드를 개설했습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기후 위기 소식과 환경 정책에 대한 견해를 뉴스레터에 담고 있죠. 기자 시절부터 특집 기사로 팬덤을 쌓아온 그는 뉴스레터 구독자를 빠르게 모집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1월 기준 히티드의 구독자 수는 3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서브스택 및 HEATED 페이지_서브스택·HEATED
출처: 서브스택
뉴스레터 HEATED 페이지_출처: 서브스택·HEATED
패션 및 게임 콘텐츠에 특화된 툴도 있습니다. 2020년 3월 AR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가 선보인 제페토 스튜디오는 가상세계 전용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이용 방식은 간단합니다. 그래픽 툴을 다루지 못하는 크리에이터도 기본 템플릿을 활용해 2D 그래픽 이미지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아이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픽 툴 지식이 있는 경우, 기본 템플릿에 없는 아이템까지 자유롭게 만들 수 있죠. 아이템명과 가격도 크리에이터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완성된 아이템은 제페토 스튜디오의 심사를 거쳐 통과된 후 이용자들에게 노출됩니다.
제페토 스튜디오는 패션 아이템으로 아바타를 꾸미는 것을 넘어, 수익 창출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비스 론칭 한 달 만에 8억 원 이상의 매출을 발생시켰고, 약 6만 명의 크리에이터를 확보했죠. 이 중에는 월마다 수백만 원 이상의 수익을 달성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제페토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렌지는 2021년 기준 1500만 원 이상의 월평균 수익을 달성했습니다. 제페토 스튜디오의 출시 직후 크리에이터로 합류한 그는 지금까지 1000가지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며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했습니다.
제페토 스튜디오 제작 툴 및 로블록스 이미지_출처:제페토 스튜디오·로블록스
제페토 스튜디오 제작 툴_출처: 제페토 스튜디오
출처: 로블록스
로블록스는 직접 만든 게임을 판매하고 다른 창작자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게임판 유튜브라고 불리는 로블록스에 등록된 게임 수만 2021년 기준 4000만 개에 달합니다. 이용 방식은 간단합니다.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게임을 등록하면 사용자들이 로블록스 내 가상화폐인 ‘로벅스’로 게임을 결제 후 이용합니다. 창작자는 로벅스로 지급받은 이용료를 현금으로 전환해 자신의 계좌에 입금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1200여 명 게임 개발자가 2020년에 벌어들인 로벅스 금액만 평균 1만 달러(약 1200만 원)입니다. 그중 상위 300명은 10만 달러(약 1억 2000만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이처럼 누구나 전문성을 살려 콘텐츠를 만들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만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용자는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받고 창작자는 수익을 확보해 콘텐츠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지속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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