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들어와서 이용하는 여관, 그 정체성이 서울을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경복궁 담벼락 옆, 오래된 여관건물 자리에 어느새 15년 간 35만명이 머무르다 떠났습니다. 아트 갤러리, 호텔 숙소, 책방, 찻집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서촌 대표 복합문화공간의 브랜드 스토리를 만나보세요.
“1936년 통의동 보안여관에 머무르다 김동리, 오장환, 함형수와 함께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경복궁 서편 영추문 앞,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여관 건물에 각 지역에서 상경한 청년들이 모여 예술활동에 몰두합니다. 뭔가 해내려 애썼던 흔적이 낡은 시집에 기록됐죠. 증언은 희미한 연필자국같았지만, 이곳에 머물렀던 젊은 예술가의 패기는 선명했습니다. 서울 어딘가에 복합문화공간을 구상하고 싶었던 아트 디렉터에게는 브랜드 콘셉트를 구체화시킬 영감으로 다가왔죠.
여관에서 발견한 아트 스페이스 콘셉트
출처 : 바이브랜드
2007년,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는 문화예술적 잠재력이 풍부한 동네를 수소문하다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분위기가 고즈넉했던 종로구 통인동에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를 세웠습니다.
‘1942’는 보안여관 천장을 수리하면서 발견한 ‘상량식 소화(昭和) 17년’이란 나무명패에서 비롯됐죠. 옛 여관건물이 1942년에 재건축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은 새 공간의 정체성을 다지는 주춧돌이 됐습니다.
출처 : 바이브랜드
90년대 초,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퐁피두 센터의 미술품 수집 정책을 석사논문으로 쓴 최 대표가 하던 일을 접고 나선 새로운 도전이었죠. ‘모두를 위한 문화’를 표방한 개가식 복합문화공간을 기획한겁니다.
오픈 당시만 해도 복합문화공간은 국내에서 생소한 개념이었는데요. ‘문화숙박업’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최 대표와 유능한 큐레이터들이 뭉쳐 제시한 콘텐츠는 조금씩 서촌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동네와 공존, 옛 건물과 조화
출처 : 바이브랜드
복합문화공간을 꾸미기 위해 재건축은 필연적이었는데요. 최성우 대표가 결정한 보안여관 리빌딩의 기본전제는 기존 동네와의 조화였습니다.
보안여관은 효자로 경복궁 맞은 편 대로변의 첫 건물입니다.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덩어리가 큰 건물이 들어서면, 서촌 전체에 스케일감을 해친다는 점을 고민했습니다. 건축설계면에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죠.
민현식 건축가와 긴밀히 논의한 끝에, 옛 여관 건물과 여관 옆 한옥과 양옥 두채를 추가로 매입해 새건물을 짓습니다. 구관과 신관을 구름다리로 연결하는 구조를 설계합니다.
출처 : BOAN1942
보안여관을 경복궁 담벼락 앞에서 바라보면, 옛 건물과 새 건물의 건물비례가 똑같은데요. 신관과 구관은 형제처럼 건축적으로 닮은 꼴이되, 신축공간은 옛 여관건물이 수행할 수 없는 기능을 맡을 수 있게끔 재설계됐습니다.
나무가 삐걱이는 옛건물은 전시공간으로 사용. 신관은 카페나 편집샵, 서점 등 상설상점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건물 파사드의 창문을 닮은 꼴로 내고, 벽돌을 최대한 같은 색과 재질로 골라 재현했습니다. 신관은 높이를 포기한 대신, 지하공간을 우물처럼 넓고 깊게 팠는데요. 덕분에 지하는 층고높은 공간 특유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36
근대문학 ‘시인부락’ 동인
통인동 보안여관 기거
1942
목조가옥으로 재건축
2007
복합문화공간 BOAN1942
운영시작
2018
커뮤니티형 카페
33MARKET
운영시작
2021.10
신관 4층 차실茶室, 몽재
운영시작
근대문학 '시인부락’ 동인
통인동 보안여관 기거
목조가옥으로 재건축
복합문화공간
BOAN1942
운영시작
커뮤니티형 카페
33MARKET
운영시작
신관 4층 차실茶室, 몽재
운영시작
保(지킬 보) 安(편안 안)
출처 : 바이브랜드
나무계단이 삐걱이는 옛 여관 건물은 이제 전시공간으로 쓰이지만, 옛 기능은 새 건물에서 맡아 더욱 업그레이드 된 시설로 손님을 맞이합니다. 서촌은 건축물 고도 제한이 걸려 있어 궁궐 담벼락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지극히 드문데요. 보안여관 신관 3,4층에 자리한 스테이룸에 들어가면 탁트인 통창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복궁 뷰가 손님을 맞이합니다.
출처 : 바이브랜드
3개의 숙박공간을 제안하는 보안스테이는 2021년 기준, 일일 숙박비용 11만원에서 최대 25만원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36년부터 여관이었고, 2004년까지도 여관이었던 공간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체험형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문화숙박업’이라는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태도가 사람을 모으고, 태도가 소비를 만든다
출처 : 바이브랜드
문화공간으로서 보안여관은 어떤 목적을 갖고 운영되고 있을까요? 최성우 대표는 ‘태도’를 힘주어 말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브랜드는 어떤 공간의 가상적 이미지라 생각해요. 공간이나 시간과 얽힌 팩트가 있어야하고, 여기에 기반한 콘텐츠가 누적되며 새로운 인상이 만들어지는 거죠.”
출처 : 바이브랜드
“백년 전 청년들이 이 자리에서 시인부락이라는 클럽을 만든 것 자체보다 거기서 느껴지는 태도가 중요했어요. 자기가 문학가가 될지 난봉꾼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 맞는 청년들이랑 동가식 서가숙하면서 합맞춰서 으쌰으쌰 했던 태도말이죠. 저는 그게 지금 동시대 예술가들의 태도와 맞닿는다고 봐요.”
손님과 함께 만드는 미학적 체험
출처 : BOAN1942
그런 영향인지 이제 보안여관은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원한다면 대관신청에 나설 수 있죠.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쳐지는데요. 실제예시를 찾아보니 커뮤니티형 디너 이벤트가 인상적입니다.
옛건물 외벽타일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뜯어낸 구관 뒷뜰에서 흥미로운 저녁행사가 열렸습니다. 수십년 경력 F&B 디렉터가 지휘하는 저녁만찬 행사였는데요. 기다란 나무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내추럴와인과 어울리는 캠핑요리를 즐기는 시간입니다.
일일호스트가 남도여행에 나서며 직접 차려먹었다는 캠핑요리로부터 우리가 어떤 감각을 얻을 수 있는지 체험하고 각자의 감흥을 교환하게 된 겁니다.
출처 : 바이브랜드
호스트가 초대한 손님과 보안여관에서 신청접수를 받은 손님이 각자 참가비를 내고 참여하는 커뮤니티 이벤트였죠.
좀처럼 구하기 힘든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술, 그것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소셜 네트워킹, 하나의 창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전하고 창작물로부터 우리가 어떤 감각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 보안여관은 그런 감흥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예술창작거점으로서의 보안여관
출처 : BOAN1942
예술창작거점으로서의 보안여관은 어떨까요? 보안여관은 대중성과 전위성을 모두 존중하는 하이브리드형 아트 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년 단위로 운영되는 전시행사와 타임테이블을 보면,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총체적인 예술행사가 열리고 있죠.
미술품 설치전시도 하고, 공연처럼 즐길 수 있는 퍼포먼스도 진행됩니다.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 즐길 수 있는 행사와 예술관련 배경지식을 갖춰야 읽을 수 있는 컨템포러리 아트까지 다양하게 포괄하고 있습니다.
출처 : 바이브랜드
15년이 넘는 세월간 서촌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며, 어느새 35만 명이 다녀간 보안여관. 지나가다 휙 들러 사진찍고 지나가는 것보다 좀 더 깊은 이해를 갖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획을 준비중이라고 하는데요. 작년부터 ‘보안손님’이라는 멤버십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회비를 낸 회원에게는 시설이용에 관한 혜택을 제공하고 보안손님 전용 도슨트와 티타임을 제안하는 등, 보안여관을 아끼는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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