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그 곳, 피치스 도원이 힙플이 된 이유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레어카인드와 협업한 '가짜 문화'를 경고하는 캠페인에서 사용한 차를 도원 한 켠에 전시 중_출처 : 바이브랜드
도넛 가게 옆에 수십억 원대를 호가하는 슈퍼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옆에선 사람들이 옷을 삽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여기 저기에 앉아 쉬면서 LED 벽면 전체에서 나오는 자동차 영상을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듣기만 해선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상상이 잘 안 가는데요, 피치스 도원(D8NE)에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스트리트 컬처 브랜드의 퍼스트 펭귄, 피치스
도원은 힙스터들의 성지인 서울 성수동 내에서도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다고 자부합니다. 2021년 4월 문을 연 도원은 ‘피치스(Peaches)’가 오프라인으로 나오기 위한 시발탄입니다. 피치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출발한 스트리트 카 컬처(Street Car Culture) 기반의 자동차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스트리트 카 컬처는 차량 휠, 엠블럼을 바꾸는 등 개성있게 차를 꾸미는 문화입니다. 피치스라는 브랜드 이름도 미국 젊은 층이 튜닝한 자동차 뒷모습을 보고 복숭아라고 부르는 것에서 따왔죠.
피치스 여인택 대표는 수입차 브랜드 동호회에서 만난 김종권 감독과 2017년 피치스를 구상하고, 이듬해 6월 법인을 설립합니다. LA 기반의 스타트업이지만 크루원들은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된 토종 브랜드입니다.
피치스는 ‘우리가 좋아하는 자동차로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열망으로만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대개 사업을 하기 전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서 진입하는 것과는 다르죠. 스트리트 카 컬처라는 생소한 문화만큼이나 새로운 경영 문법입니다. 신용보증기금은 피치스를 창조적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보유해 미래 성장성이 기대되는 핵심 창업기업인 ‘퍼스트펭귄형 창업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피치스 도원에서 전시한 부가티 시론 110 ANS. 전 세계 20대 한정으로 부가티 시론 110주년 기념 모델_출처 : 바이브랜드
피치스는 자동차와 관련된 것이라면 영상-음악-패션 등 가리지 않고 모두 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합니다. 이들의 이름이 처음 알려진 건 영상 덕분이었습니다.
포르쉐 전문 튜닝업체인 RWB의 튜닝카를 입체적인 구도로 담아낸 영상이 2017년 유튜브에서 조회수 약 200만 회를 기록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나이키, BMW 등 글로벌 브랜드들과 영상을 제작하고 전시를 기획해 B2B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슈퍼카로 로고 스티커, 의류 등 판매하는 제품을 배송하는 이벤트는 피치스를 미국 차 덕후들에게 힙한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에서 파는 굿즈들은 빠르면 1분, 늦어도 하루 안에 완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제2의 슈프림? 피치스가 파는 ‘힙한’ 이미지
슈프림은 브랜드 로고를 넣은 평범한 빨간 벽돌도 완판시킵니다. 슈프림이 쌓아온 ‘힙한’ 이미지에 소비자들이 열광해서죠.
그만큼 브랜드의 이미지는 강력합니다. 자동차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 사이에서 피치스는 이미 힙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화 ‘분노의 질주’를 연상시키는 피치스의 감각적인 영상, 스트리트 카 컬처라는 이색적인 문화, 오직 ‘자동차’에 관한 것만 말한다는 자신있는 가치관. 이 모든 게 특별함을 추구하는 MZ세대의 가치관과도 결이 맞은 덕분이죠.
글로벌 브랜드들은 자사에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피치스에 러브콜을 보냅니다. 해외, 특히 미국에서 자동차 스타일링은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만큼 이 분야에서 가장 세련됐다고 평가받는 피치스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나이키는 2018년 피치스를 ‘주목해야 할 브랜드’로 선정하기도 했죠.
메르세데스 AMG를 비롯해 포르쉐, BMW와 같은 자동차 브랜들은 물론 나이키, 워너브라더스, 코카콜라처럼 다른 업종의 브랜드들까지 협업을 이어갑니다.
2030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도원을 즐기는 모습_출처 : 바이브랜드 / 도원 내에서 시샤, 와인 등을 판매하는 스모킹 타이거즈 전경_출처 : 바이브랜드
2030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도원을 즐기는 모습_출처 : 바이브랜드
도원 내에서 시샤, 와인 등을 판매하는 스모킹 타이거즈 전경_출처 : 바이브랜드
주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향이지만 피치스의 로고를 입혀 컬래버 상품을 제작하거나, 각종 전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피치스가 메르세데스 AMG와 진행한 ‘메르세데스 AMG GTS’ 프로젝트는 전세계 슈퍼카 튜닝 팬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자동차 스타일링에 관심많은 소수에게만 회자되던 피치스가 단번에 주목받은 것은 현대자동차 N과의 협업 덕분입니다. 현대차는 피치스와 함께 젊은층을 겨냥한 고성능 브랜드 벨로스터 N 광고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총 4개의 광고 영상은 유튜브에서 44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대중은 ‘광고를 만들라더니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피치스에 ‘엑소’ ‘에프엑스’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영상감독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죠. 콘텐츠의 힘을 아는 여 대표는 초기에 SNS의 작업물을 보고 일러스트레이터, 프로듀서들을 영입했습니다. 그들 또한 자동차를 좋아하는 ‘덕업일치러’였기에 창작물의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덕후’, 차알못’ 모두가 도원을 향하는 이유
온라인에만 머무르던 피치스는 4월 말 서울 성수동에 약 7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도원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오프라인에 나왔습니다. 피치스의 실질적인 본사 역할을 하면서도, ‘그래서 대체 피치스가 뭐하는 곳이야?’라고 궁금해하던 사람들에게 피치스의 문화적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데요. 도원은 ‘도원결의’에서 따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뭉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브랜드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 피치스가 도원을 연 것은 성공적인 도박이었습니다. 도원은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주말 일평균 방문객이 7000여 명이 넘어갈 만큼 힙플레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피치스 도원 내에 위치한 실제 차량을 스타일링 할 수 있는 공간인 개러지(Garage). 국내 유명 래퍼들이 주 고객층으로 한 달에 차 10대 정도가 튜닝을 진행합니다_출처 : 바이브랜드
도원이 뻔하지 않은 힙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것은 인테리어를 과감히 없앤 덕분입니다. 인테리어에 매몰된 공간은 결국 올드해지기 마련이라는 신념 아래 피치스는 LED, 조명, 오디오 등 ‘콘텐츠’로 공간을 채워갑니다. 단, 이 모든 것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할 패션, 음악, 영상 등 ‘자동차’라는 매개체로 연결돼있죠. 항상 콘텐츠를 바꿔가며 새로운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기에, 피치스는 절대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도원 내부 OLED 벽면에는 피치스가 참여한 힙한 브랜드 영상들이 계속 바뀌면서 흘러나오고, 전면 유리로 된 개러지(Garage)에서는 실제 고객들이 의뢰를 맡긴 차량을 스타일링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레이싱 대결을 즐길 수 있는 미니카 트랙 등 자동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있기에 차덕후들의 감성을 저격했죠.
‘차알못’들에게도 도원은 꼭 가보고 싶은 명소가 됐습니다. 이전까지 국내에 없던 생소한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피치스 크루원들이 타고 다니는 튜닝된 자동차들이 곳곳에 주차돼있습니다. 마치 전시처럼 보일 정도로 감성적이고 힙한 스타일링에 사람들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구경합니다.
노티드 도넛, 다운타너스 버거 등 최근 가장 트렌디한 F&B 브랜드들이 입점해있는 한편 그 옆에는 수십억 원대를 호가하는 슈퍼카가 전시돼있죠. SNS를 중심으로 힙스터라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알려지기도 하고, 도원 곳곳이 포토존 명소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레이싱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속에서 등장하는 가상 자동차 ‘N 2025 비전 m란 투리스모’. 실물로 제작해 도원에서 전시했습니다_출처 : 바이브랜드
하지만 서핑 덕후들이 만든 스투시, 스케이트보드 문화에서 시작한 슈프림과 같은 스트리트 컬처 기반 기업이 국내엔 아직 낯설어서일까요. 영상-패션-음악-튜닝 등 종횡무진하는 피치스를 두고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래서 뭐하는 곳이냐’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죠.
그렇지만 피치스는 대중이 받아들이는 대로 해석하는 것이 좋은 브랜딩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제 과거와 달리 ‘이 회사는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뚜렷한 브랜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 대표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자동차 문화를 바꿔가며 움직이는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자동차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주겠다”라고 강조합니다.
조지윤
info@buybrand.kr